서비스산업 활성화 명목으로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이하 서비스법)’의 운명에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 18대ㆍ19대 국회에서 정부가 발의한 이 법은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과 청와대가 일자리 창출 등 경제활성화법 명목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야당과 의료계,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자유한국당이 재발의했고, 대통령 선거 이후 야당으로 입장이 바뀐 최근에도 연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며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6월 임시국회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추가경정 예산안과 상호 연계 처리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에서 새로 임명된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비스법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쳐 주목된다.

▽서비스법, 어떤 내용 담고 있나?
정부는 18대ㆍ19대 국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들며 공식석상에서 서비스법 통과를 몇 차례나 강조했지만, 야당과 의료계,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대를 넘지 못했다.

이후 20대 국회 개원 첫 날인 지난해 5월 30일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 등 122인은 19대 국회와 동일한 내용의 서비스법을 발의했다.

이명수 의원은 “서비스산업은 내수기반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견인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산업 분야이나,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이나 국내 제조업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다.”라고 지적하며, “서비스산업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5년마다 서비스산업의 발전에 관한 중ㆍ장기 정책목표 및 기본방향을 정하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립하도록 했다.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며, 그 추진상황을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점검하도록 했다.

서비스산업 발전에 관한 주요 정책과 계획을 심의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장관과 민간 위촉위원이 공동으로 맡도록 하며, 위원회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실무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서비스산업 연구개발 활성화 및 투자도 확대한다.

기존의 제조업 중심의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서비스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서비스산업 연구개발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 성과를 정부가 인증하고 자금지원, 세제지원 등 연구개발 성과의 상용화 촉진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정부는 정보통신 관련 기술 및 서비스를 서비스산업 분야에 적극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ㆍ시행하고, 우수 활용 사례를 발굴ㆍ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정부는 중점 육성 서비스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창업에 필요한 자금ㆍ인력 지원 및 조세감면 등의 지원 근거를 마련하며,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산업에 불리한 지원제도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개선해 나가도록 했다.

정부는 서비스산업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ㆍ추진하고, 서비스산업 특성화 기관ㆍ단체, 고등학교ㆍ대학 등 교육기관을 서비스산업 특성화 교육기관으로 지정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기획재정부장관은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서비스산업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조사, 연구 및 정책적 제언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연구센터를 지정하여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서비스법 제정 필요vs개별법으로 해야
서비스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서비스법은 기획재정부에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설치해 불필요한 규제를 일괄적으로 혁신하고 서비스산업 지원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며,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기획재정위 전문위원실은 금융, 보건ㆍ의료, 정보통신, 교육분야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분야에 대한 진입 규제로 인해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 발전 기반이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2014년 기준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현황을 보면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에 적용되는 규제는 각각 1,073개, 4,336개이며, 두 산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제를 제외할 경우 서비스산업에만 적용되는 규제는 3,601개로 제조업 규제 338개에 비해 10배나 많다.

그러나 서비스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 주무부처의 반대로 인해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금융 부문의 핀테크 산업은 금융서비스와 정보통신서비스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전통적 금융규제와 IT 산업규제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규제가 중첩 적용돼 국내시장에서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의료 부문의 경우에도 해외에서 원격의료 등 신기술과 결합된 다양한 의료서비스 모델이 개발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규제로 인해 적극적으로 융복합 기술을 이용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재에도 ‘의료법’, ‘관광진흥법’, ‘금융지주회사법’, ‘정보통신산업 진흥법’ 등 개별 법률을 통해 지원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서비스산업의 범주가 광범위하고 업종별 특성과 발전전략이 상이하므로 개별 법률에 따라 업종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특히 골목상권 등 유통업은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심의 전략이, 사양산업 업종은 직업훈련, 창업 등 전직지원이, 통신산업은 신시장 창출을 위한 대-중소기업 협력강화 정책이, 의료ㆍ교육 부문은 공공성 강화가, 여객ㆍ운송 부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서비스법 규정 대부분이 선언적이어서 구속력있는 정책이 추진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비스산업 발전과 보건ㆍ의료 산업 조항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서비스산업에 보건ㆍ의료 분야가 포함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비스법 제2조(정의)는 서비스산업의 범위를 ‘통계법 제22조제1항에 따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의한 서비스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통계청고시 한국표준산업분류 기준 서비스업 중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Q)’에 보건ㆍ의료가 포함된다.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의한 서비스업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의한 서비스업

18대 및 19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서는 서비스산업의 범위를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으로 규정한 것보다는 구체적이다.

포괄적 위임 금지원칙에 위배되며 대통령령으로 서비스산업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부처 간 의견차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19대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제기돼 20대 국회 제출법안에서는 서비스산업의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대 국회에 제출된 서비스법 역시 서비스산업 범위에 보건ㆍ의료 서비스가 포함되므로 18대 및 19대 국회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보건ㆍ의료 영리화 문제가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19대 국회 법안심사과정에서는 서비스법에 따라 서비스산업의 규제가 완화될 경우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 2008년 발표된 서비스산업 발전방안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검토,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사 원격의료 허용 등이 포함됐으나, 시민단체 및 국회의 반대로 ‘의료법’ 등 개별 법률의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추진되지 못했다.

이후 서비스법 제정시 안 제5조(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의 수립ㆍ시행), 안 제13조(서비스산업 규제 개선), 안 제22조(서비스산업 국외진출 지원) 등에 근거해 의료의 공공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정책의 추진이 가능해진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법’ 등 개별법의 규정이 서비스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며, 보건ㆍ의료 부문을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세제ㆍ연구개발ㆍ해외진출 지원 등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의 추진이 어려워진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서비스법 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등)는 ‘서비스산업에 관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20대 국회서도 강공
자유한국당은 20대 국회 들어서도 서비스법의 통과 필요성을 주장하며 연일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추경관련 시정연설을 언급하며, “일자리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도 같은 생각이다. 문제는 해법인데, 박근혜 정부가 4년 내내 줄기차게 추진한 서비스산법, 규제프리존특별법, 규제개혁특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무작정 반대해 왔다.”라고 비판했다.

정 권한대행은 “더불어민주당이 진정으로 자유한국당에 협력을 구하려면 불과 수 개월 전까지도 그렇게 반대만 하던 행태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서비스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현재 정책위의장도 지난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국당이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발표한 서비스법, 규제프리존법,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등을 조속히 정부와 민주당에서 나서서 처리하면 지속가능한 민간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면서,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이종배 정책위부의장 역시 지난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진정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면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법, 규제프리존법 등 통과에 동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지난 5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6월 임시국회를 ‘민생실천국회’로 규정하고, ‘10대 민생입법과제’를 선정해서 28개 세부 법안을 최우선 통과법안으로 선정한 바 있다.

10대 민생입법과제에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행정규제 기본법, 서비스법, 규제프리존특별법, 경력단절여성들의 경제활동 촉진법 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강력 통과를 주장하는 법안들과 6월 임시국회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추경 예산안의 상호 연계 처리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다만,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 서비스법 수정 가능성을 언급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련해 “법 제정은 필요하지만,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의료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이러한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국회 입법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되도록 하겠다.”라고 전한 바 있다.

▽의료계ㆍ시민단체 “의료영리화 우려”
18대ㆍ19대 국회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서비스법 통과를 막는데 앞장선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20대 국회서도 같은 법이 발의되자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법안 발의 직후인 지난해 6월 “의료영리화 관련 법안들은 영리병원 도입을 가속화해 대형병원 쏠림현상으로 일차의료를 고사시키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을 이유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희생시킬 악법 중의 악법이다.”라며, “서비스산업발전이 국가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보건ㆍ의료 분야는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예외적으로 제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여당이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곧 개혁이고 성장이며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검증된 바도 없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의료비 증가를 담보한 청년층 일자리 창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의협은 지적했다.

의협은 특히 “국민 대다수가 서발법에 보건의료를 포함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라면서 지난 3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가까운 48%가 ‘보건의료가 영리를 우선시하게 되므로 반대한다’고 답한 반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는 의견(38%)보다 우세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의협은 “보건의료서비스 분야는 수익성 극대화보다 보편적 국민건강이 우선시돼야 하며, 투자한다고 해서 매출 상승과 일자리 창출효과가 발생하는 분야가 아니다.”라고 상기시키고, “현재 국내 보건의료기관 수는 거의 포화상태에 직면해 있으며, 보건의료인력과 보건의료분야 시장 규모의 적정성이 유지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국민과 정부에 전가된다.”라고 경고했다.

규제프리존 법에 대해서도 의협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대한민국 의료계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악법이다.”라고 규정하고, “의료계에 필요한 실질적 규제개선이 아닌 국부 및 일자리 창출 목적의 맹목적 규제 완화는 보건의료의 왜곡현상을 초래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에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보건의료가 경제 상업적 논리에 매몰되면 의료의 본질과 가치가 훼손될 뿐만 아니라 비의료인에 의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라며, “정부의 잘못된 의료제도와 정책은 의사들의 진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의료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국민의 건강 증진과 보건 향상에 역행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소위 ‘재벌 소원수리법’으로 불리는 친기업적 정책들을 수정해 기업의 체력을 개선시킬 수 있는 범국민적 정책을 새롭게 추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는 서비스법과 규제프리존법은이 ‘박근혜-최순실-전경련’의 합작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무상의료운동본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의 단체는 지난해 11월 1일과 2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설립 과정에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총 774억원을 입금했고, 바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서비스법과 규제프리존법이 핵심내용인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특별 주문했다.”라며, 20대 국회서도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외국 입법례 살펴보니…
한편, 서비스산업과 관련한 외국의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부처간 조정기구만 존재하고, 서비스산업 진흥을 위해 개별 분야가 아닌 서비스산업 전체를 관할하는 입법례는 없다.

기재위 전문위원실은 영미계 국가에서는 예산(안) 자체가 법률적 성격으로 굳이 총합적 성격의 성문법을 만들 실익이 적은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 역시 서비스산업 일반을 규율하는 단일한 법은 없다.

다만, 지난 2007년 ‘경제통상산업성(METI, Ministry of Economy, Trade and Industry)’은 서비스산업 현황 및 개선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경제통상산업성은 서비스산업 개선방향으로 ▲Creating a cross-sectional framework to encourage private sector initiative ▲경험과 직감에 의존하던 서비스 지식의 과학ㆍ공학화 ▲서비스 생산자-소비자의 연결 ▲인적 자원 개발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일본은 또, 부처간 개선방향 실천기구인 ‘Service Productivity and Innovation for Growth(SPRING)’를 설치했다.

여기서는 다양한 해결책과 아이디어를 이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경제통상산업성과 다른 정부 부처들이 그 활동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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