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의료인이 아동학대범죄, 노인학대범죄, 장애인학대범죄 등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 최대 6개월까지 면허를 정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국민의당)이 의료인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아동학대범죄, 노인학대범죄, 장애인학대범죄 등을 알게 됐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수사기관 등에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6개월까지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의료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의료인은 환자를 직접적으로 대면해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직무수행 과정에서 다양한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

특히 의료인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에서, 직무수행 과정에서 아동학대범죄, 노인학대범죄, 장애인학대범죄 등을 알게 된 경우 수사기관에 알리고 신고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부과대상이 될 뿐이어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안을 발의한 최도자 의원의 설명이다.

개정안을 통해 범죄에 대한 신고를 유도하고, 의료인의 업무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과태료 처분 없었다고 신고안했다는 단정이 옳은가
아동학대 신고 건수를 보면, 최도자 의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4년 1만 7,791건, 2015년 1만 9,214건, 2016년 2만 9,669건이다.

반면, 신고의무자의 신고 건수는 2014년 4,358건, 2015년 4,900건, 2016년 8,302건이다.

신고의무자의 신고 증가율이 전체 신고 증가율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3년간 아동학대 신고 건수
최근 3년간 아동학대 신고 건수

최도자 의원이 학대범죄 예방을 위해 의료인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황당하가까지 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신고의무자의 미신고로 인한 과태료 부과 건은 아동 학대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4건, 노인학대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0건이었다.

진료 및 치료과정에서 학대 징후를 파악할 수 있는 의료인 등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한 건도 없었다.

최도자 의원은 학대범죄 예방을 위해 학대범죄 신고를 활성화해야 하며, 의료인 등 신고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의 설명은 달랐다. 김 대변인은 “학대하는 부모는 의료기관에 아동을 데려오는 경우가 드물다. 또, 진료중에 명확하게 학대 징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과태료 부과처분이 없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최도자 의원의 주장에 대해 김 대변인은 “의사라는 직종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의사가 몰라서 신고를 안할 수는 있어도, 알면서 신고를 안하지는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실제로 의사들의 신고가 많은 것으로 안다. 학대징후를 알면서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진료ㆍ치료과정에서 과태료 처분이 없다는 것은 의사들이 신고를 잘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아동학대 미신고 의사 면허정지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학대 미신고 의사의 면허를 정지하는 것은 의료계의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의사들은 우려한다.

의사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먼저, 아동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진료중에 멍 자국을 발견했다고 무작정 신고할 수는 없다. 아이의 상처가 낙상이거나 동급생과의 다툼으로 생긴 상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학대 징후를 사전에 인지했는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학대아동이 발견됐다고 가정해 보자. 아동의 진료내역을 확인해서 그동안 진료한 병원의 의사들을 전부 처벌할텐가?

신고를 했는데 오인 신고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가족이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면 의사가 받게되는 고통은 상당하다.

게다가 학대한 가해자보다 의사에 대한 처벌이 더 무거운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6개월 면허정지는 의사에게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것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까지 안긴다. 또, 그동안 쌓아온 명예를 한순간에 날릴 수 도 있다.

진료 과실에 의한 처분이라면 모를까, 학대아동을 발견하지 못한 대가로는 너무 가혹하다.

아동학대는 누가 알더라도 신고하는게 맞다. 굳이 의료인에 한정해서 법적으로 제정하는건 법의 형평성 차원에도 있다.

결국, 최도자 의원의 법안은 아동학대를 막으려고 의사를 학대하는 셈이 되는 게 아닐까. 진료에 매진해야 할 의사들이 환자가 아동일 경우 학대 흔적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하니 말이다. 그것도 부모가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무엇보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대를 미연에 방지하는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의료인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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