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과정에서 태아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형사 처분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환자생명을 위협하는 방어진료를 막기 위한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동석)는 29일 서울역광장에서 전국산부인과의사 긴급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의사 1,000여명이 자궁 내 태아사망을 사유로 분만의사를 금고형에 처한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고, 의사의 소신진료를 보장하는 보호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앞서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6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에게 금고 8개월 형을 선고했다.
 
A씨는 2014년 11월 25일 독일인 산모 B씨가 분만 과정에서 태아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졌지만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태아를 심정지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동석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장
김동석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장

대회를 주최한 김동석 회장은 인사말에서 “인천지방법원의 이번 판결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고 산부인과의사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궁 내 태아사망에 대해 의사를 살인범으로 낙인찍어 교도소에 구속한 사건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제왕절개를 하면 제왕절개율이 높은 병원으로 낙인찍어 마치 나쁜 병원으로 몰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이제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기만 하면 의학적 판단은 필요없이 곧바로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김 회장은 “하지만 의사의 양심에 따른 소신 진료권을 포기할 수 없다.”라며, “이제는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할 때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더 이상 산부인과 의사들이 과도한 배상과 이해할 수 없는 판결로 인해 병원을 폐쇄하며 전과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출산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라며, “환자생명 위협하는 방어진료를 막고 소진진료를 보장하는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의료계 인사들도 격려사를 통해 김동석 회장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추무진 의협회장, 임수흠 의협의장, 노만희 대개협회장(좌로부터)
추무진 의협회장, 임수흠 의협의장, 노만희 대개협회장(좌로부터)

추무진 의사협회장은 “의사들이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의업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료사고를 내려고 진료하는 의사가 어디 있겠나. 의료사고는 의료와 개연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상기시켰다.

추 회장은 “진료행위를 하는 의사도, 진료받는 환자도 안심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국회와 정부가 기필코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임수흠 의협 대의원의장은 “분만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부분까지도 의사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억 소리 나오는 배상액과 금고형까지 내리는 현실에 어느 의사가 분만실을 유지하겠나.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사고는 의사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임 의장은 “의료분쟁조정법이 조장법에서 벗어나도록 의사와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법으로 개정돼야 한다. 특히, 이번 판결과 같이 중재원의 감정 결과를 민형사 재판에 원용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소신진료를 보장하는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노만희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열악한 고시 수가만 받으라는 현실에서 의사는 공무원이나 다름없는데 사고가 나면 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의사가 번 돈으로 배상하고 감옥도 가라고 한다.”라고 개탄했다.

노 회장은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중재원의 중립적이지 않은 행위다. 이번 사건도 판결문을 보면 증거 자료에 중재원 감정서가 들어갔고, 판사는 그 감정서를 보고 판결을 내렸다.”라며, 모든 의사에게 “중재원장이 사퇴할 때까지 중재절차에 협조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이제 중증환자를 보려면 우리는 예비 살인자라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해서든 살리려고 하지 죽이려고 하겠는가?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환자는 살리고 싶은 게 의사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회장은 “의료인프라, 분만 인프라에 대한 피해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라며, “진료행위와 관련된 모은 의료사고 분쟁 때 형사처벌 자제해야 한다.”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다른 인사들도 연대사를 통해 이번 기회에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동훈 전공의회장, 최대집 전의총 상임대표, 좌훈정 전 의협감사(좌로부터)
기동훈 전공의회장, 최대집 전의총 상임대표, 좌훈정 전 의협감사(좌로부터)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오늘 조의를 표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왔다. 사망한 태아에게 조의를 표하고,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에 조의를 표하고, 대한민국 의료에 대해 조의를 표한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기 회장은 “의사들은 우리에게 순간이 환자에게 영원이라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는데도 모성사망률은 높아지고, 분만을 할 수 있는 취약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라며, “분만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나. 전공의들은 의료계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 여러 선배, 동료들과 함께하겠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최대집 전국의사총연합 상임대표는 “전례없는 전국의사총파업을 반드시 의료계의 힘으로 해내야 정당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 의료계 인사 10명~20명이 제도권에 들어간다면 의사들의 정당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라며, “제도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의료계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좌훈정 의협 전 감사는  “이 자리에 오신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의료계 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 대체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자살하고 감옥을 가야 이 부당한 현실을 깨뜨리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라고 따졌다.

좌 전 감사는 “여기 잠시 얼굴비추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지금 당장 전면 투쟁을 선포하고, 삭발이든 단식이든 뭐라도 좀 해보라.”라고 촉구했다.

이 자리를 찾은 국회의원들은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좌로부터)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좌로부터)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우리 당은 이번 대선에서 국가 지원을 통해 분만 취약지역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고, 난임치료 지원, 국민행복카드 지원 등 임신 및 출산에 대해 어느 당보다 많은 약속을 드렸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의사들이 진료현장에서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지 않고 보람과 가치를 느끼도록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 의료계 목소리를 잘 듣고 진료 환경을 개선하는데 노력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은 “이런 불행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빅 의원은 “이 사건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살펴보고 최선을 다해 무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 불가항력 의료사고 분담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런 악법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의료현장에 있어야할 의사들이 아스팔트 위에 앉아있다. 내 마음이 무겁고, 정치권에 몸담은 입장에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라고 안타까워했다.

전 의원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가면서 산부인과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를 더 우대하고 소신진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다. 분만 담당 의원이 50%로 줄어드는 참담한 의료현실에서 얼마나 힘든지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라고 말한 뒤, “선거가 끝난 뒤 의료계와 소통하고 귀를 기울여 존중받는 의료환경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주최 측은 산부인과의사들이 직접 이번 자궁 내 태아사망 사건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산부인과의사들이 직접 자궁 내 태아사망 사건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
산부인과의사들이 직접 자궁 내 태아사망 사건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

또,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최영렬 부회장이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을 김동석 회장에게 반납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최영렬 부회장은 “산부인과의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렵다.”라며, “우리에게 부여해준 전문의 자격증을 반납하고 싶다. 김동석 회장은 우리의 뜻을 잘 살펴서 결단을 내려 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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