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이름에 ‘의료’를 포함하고 있는 의료관련 법률은 4월 24일 현재 63개에 달한다. 헌법, 형법, 민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의료교육 관련 법령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법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매우 촘촘한 법률 및 규제체계를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의사들이야말로 이러한 평가에 적극 공감할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이른바 ‘의료악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에 만연한 법률 만능주의를 보면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배경과 원인을 알아보고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법률을 통한 규제로 해결하려고 한다. 행정입법도 마찬가지로, 보건복지부 역시 법률 만능주의에 빠져있는 듯 하다.

물론 법을 통한 규제가 꼭 필요할 때도 있고, 특히 보건의료 영역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다른 영역에 비해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의 필요성도 인정된다. 하지만 쏟아지는 의료 관련법 내용을 보고 있자면 의사들의 분통이 터질만도 하다.

의료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윤리적으로 다스릴 일을 법률로 정하거나, 사회적 여론에 떠밀려 졸속입법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미 통과돼 시행 중인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을 보자. 이 법은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다가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을 계기로 의료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논의에 탄력을 받았다.

결국 야당의 찬성과 강력한 여론의 힘으로 지난해 5월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가결돼 같은 해 11월 30일부터 시행 중이다.

의사들은 이 법을 ‘중환자기피법’이라고 부르며 결국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경고는 사회적 여론에 밀려 반영되지 못했다.

일명 ‘개목걸이법’으로 불리는 의료인 명찰패용 의무화법은 유령수술 사건을 계기로 마련돼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상식이나 규정으로 해결할 일을 법률로 정하고 위반시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잉입법이자 지나친 규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역시 유령수술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설명의무법’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법 규정으로는 진료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전부 대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결국 지난해 12월 통과됐다.

설명의무 조항이 입법화 될 경우 해당 조항이 의료소송 남발의 단초로 악용돼 의료인과 환자간의 신뢰관계가 허물어 질 것이라는 의료계의 반발도 소용 없었다.

물론 의사가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이를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의료인이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지난해 1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히 의료인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시 처벌을 현행 2년 이하의 징역에서 3년 이하 징역으로 상향 조정해 긴급체포법 요건을 갖추게 됐다.

리베이트 사건의 상당수가 ‘배달사고’라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혐의만으로 긴급체포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잉입법이자,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나온다.

20대 국회에 계류중인 법률안 중에서도 의사들이 걱정할 만한 내용이 많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병원 내 감염예방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며 지난해 7월 발의된 일명 ‘가운착용 의무화법’이나 중증소아환자 사망사건이 이어지자 마련된 ‘응급환자 전원금지법’, 고 백남기 씨 논란을 계기로 발의된 ‘최상위책임자 진단서작성법’ 등이 그것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규제를 담은 법률안 마련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환자 뿐 아니라 의료인을 위한 법은 무엇인지, 정말 시급한 법은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때 국회의 가장 큰 권력인 입법권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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