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왓슨’이 의료영역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하며, 이로 인해 우려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보호, 의료사고시 책임 소재, 인증제도 등과 관련해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규범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위원장 박상은)는 지난 21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인공지능(AI)의 의료적 활용과 생명윤리’를 주제로 ‘제1회 국가생명윤리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과학계, 의료계, 산업계, 윤리계, 정부 등 각 계 다양한 전문가들이 논의를 진행했다.

딥 러닝 기술을 이용해 의료테이터를 가공하는 벤처기업 뷰노코리아를 운영하는 이예하 대표는 딥 러닝의 적용을 통한 인공지능의 의료적 활용 및 산업 발전 전망에 대해 공유했다.

이언 교수
이언 교수

이어 인공지능 의료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진료에 적용하고 있는 가천대학교 길병원 정밀의료추진단장 이언 교수가 진료현장에서의 인공지능 활용과 향후 전망에 대해 발표했다.

이 교수는 “왓슨은 밤낮 없이 끊임없이 일하며 의사들이 소위 말하는 ‘글자 노가다’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왓슨이 문헌과 에비던스를 찾아주고, 의사는 그 시간에 다른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왓슨과 의사는 협업 관계다. 앞으로 왓슨이 없으면 의료가 어려울 단계까지 갈 것이다.”라며, “그 동안 암이 이세돌 정도의 실력이었다면 인간은 9급 정도로 대결이 안됐는데, 이제는 왓슨 덕분에 맞대결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서는 “IBM이 수집된 환자정보를 상업적 용도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계약에 명시했다.”라며, “우리가 지금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할 때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빅5 병원의 환자쏠림현상이 심하고, 난민 신세의 환자도 많다면서, 환자가 제일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의료 민주화’를 이루는데 왓슨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발제에 나선 윤혜선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학적 관점에서 의료현장의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법적ㆍ정책적 쟁점에 대해 발표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관련 법률은 63개에 이른다.”면서, “인공지능의 의료적 활용과 관련해 잠재적으로 법적 쟁점이 내재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발전 단계적 관점에서 인공지능의 의료적 활용에 관한 법적ㆍ정책적 쟁점으로 ▲데이터 확보ㆍ처리ㆍ관리ㆍ이전ㆍ보호ㆍ보안 문제 ▲사생활 보호 ▲의료기기 등 신고ㆍ허가 ▲의료수가 인정 또는 비급여 인정 ▲의료행위 규제 ▲오작동 및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등을 꼽았다.

윤 교수는 특히 오작동 및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과 관련해 인공지능의 안정성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 인공지능 기기의 품질인증제도 및 안전 관리감독제도의 도입을 강구할 것을 제언했다.

또, 제조물책임법의 정비, 보안 및 관리 강화를 위한 민형사상 책임제도 강화, 행정형벌제도 정비 등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각 계를 대표해 참석한 토론자들도 왓슨의 도입이 가져올 다양한 윤리적 쟁점에 대해 지적하며,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산업계 패널인 이강윤 가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국내 지능정보 사회에서 헬스케어의 혁신은 ‘4P 의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이다. ‘4P 의료’는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법을 제공하는 예측(Predictive), 예방(Preventive), 개인맞춤형(Personalized), 참여형(Participatory) 의료 패러다임을 의미한다.”라며, “이러한 혁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능 정보 지식 기반의 의료정보 기반을 구축하고, 정밀의료를 위한 개인정보 자원 연계 플랫폼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능정보의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지원하고 이 변화에 대응하려면 먼저 헬스케어의 지식 기반을 만들고 상호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 지능정보 기반의 의료 정보체제를 준비해야 한다.”라며, “이제는 환자도 이러한 의료 지식 정보인 근거(Evidence)를 기반으로 어떤 진료가 본인에게 맞는 진료인지를 본인이 결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빅데이터와 ICT 기술을 바탕으로 지식서비스와 융합해 의료서비스의 핵심기능이 ‘사후적 질병치료’에서 예방적 ‘개인맞춤형 건강향상’으로 이동되고 있다면서, 정밀의료 시행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와 개인 건강정보에 대한 공유 및 플랫폼 구축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의료기관의 진료결정지원시스템의 경우, 환자 진료 정보와 영상의료의 분석 정보, 환자정보 자연어 처리 기반의 의료 지식 기반이 융합돼 진료를 결정하는 통합시스템의 구성을 동시에 요구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의 관리와 기술의 사용에 관한 법적 책임, 의무 등의 제도가 함께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계 패널로 참석한 김형회 부산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데이터의 질을 높이고, 의료진 및 의대생을 대상으로 개인정보와 의료윤리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동경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교수(삼성서울병원)도 “인공지능 자체가 대단하다기 보다는 분석의 틀로 보는게 맞다. 그 안의 데이터의 질이 더 중요하다.”라며, “인공지능의 성과는 현재까지 우리가 만들어둔 의료의 성과를 넘어설 순 없다. 그걸 정리해서 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이어 “왓슨이 제법 좋은 진단적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다양한 질환에 적용하기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면서, 개발에 파트너로 참여한 엠디앤더슨의 경우 왓슨을 실전용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미 인간의 지식을 통해서도 충분하므로 오히려 왓슨을 사용하는 것이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물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왓슨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하지만 왓슨이 범용적으로 사용되려면 아직도 정복해야 할 질환이 너무 많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법조계 패널로 참석한 정채연 포항공과대학 인문사회학부 대우조교수는 의사와 인공지능 간의 협업체계를 위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의료인의 면허에 상응하는 자격으로써 의료 인공지능의 기준을 평가하기 위한 인증제도를 제시했다.

또, 인공지능의 오작동 등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귀속과 관련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복잡성으로 인해 오작동 여부 혹은 원인 파악에 있어 한계가 있으며, 이로 인해 제조물책임 법리에만 의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의료사고 책임에서 비전문가인 환자에 대해 입증부담의 전환 등,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중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도 윤리적 관점에서 ▲책임과 책무 ▲프라이버시 ▲왓슨의 상업화와 디지털 격차 등의 문제를 우려했다.

박상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상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혜경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역시 차별 가능성 및 격차의 문제를 지적했다.

박 교수는 “왓슨의 등장으로 인간의 몸에 대한 양화ㆍ수치화ㆍ등급화와 차별 가능성이 있다.”라며, “진료시점을 기준으로 산출되는 몸에 대한 수치화는 특정 신체에 대한 정확하고 정밀한 진단이라는 측면과 동시에 변화무쌍한 몸의 가소 가능성이라는 예외를 배제한다. 개인의 의지, 노력, 의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드라마틱한 신체 상황의 반전을 용인하지 않는 허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몸에 대한 수치화 작업은 정신의학 분야나 특발성(비정형성) 질환과 같이 데이터에 기반해 규명하기 어려운 질환에 대해 과도한 수치 환원적 규정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분야에서 중요시되는 임상경험, 직관력 등과 같은 경험치의 판단가치를 저평가하고, 의료인력의 탈숙련화를 부추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진료 경험이 과도해지면 환자들이 원로의사나 권위 있는 의사보다 인공지능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인공지능의 의료적 활용 과정에서 의료인의 전인적 역할을 어떤 수준에서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데이터에 기반한 몸의 수치화는 무엇보다 몸의 품질에 대한 등급화, 나아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라며, “‘건강한 몸-불건강한 몸-병든 몸’ 등으로 몸의 질서가 위계화되면 개인에게 부여된 신체등급의 부정적 라벨은 학업, 취업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차별 근거로 활용되거나 보험료 할증과 같은 형태로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킬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의료적 활용은 높은 정확ㆍ정밀도에 힘입어 건강수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로부터 크게 선호될 것으로 보이지만, 고가의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뚜렷한 수혜의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의료 수혜의 격차는 이른바 무허가, 비인가 의료기기의 활용이나 가짜 데이터의 가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관련한 유사 의료행위, 불법 의료행위, 자가 의료행위 등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가능성은 더 높다.”라며, “의료 전문가와 병ㆍ의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진단-치료 시스템이 생의학적 모형에 대한 비판적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이미 급속히 변모되는 과정에 있다. 의료의 법적 범주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새로운 논쟁들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또한 이러한 의료 수혜의 격차를 복지적 차원에서 줄여나가고자 한다면 국가의 재정적 부담, 수혜 대상자에 대한 선별 문제 등, 복지정책 전반의 논의들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를 둘러싸고 발생하게 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합의와 그에 뒤따르는 법적 근거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왓슨을 둘러싼 다양한 윤리적 이슈에 공감하며, 참여자의 동의와 객관적 평가라는 윤리문제 해결의 핵심을 제시했다.

황의수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현재의 왓슨이나 딥러닝 정도라면 많은 윤리적 이슈가 발생하진 않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초강력 인공지능이 나타나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제도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황 과장은 왓슨이 많이 도입되면 의료기기 여부나 어떤 방식으로 인증, 인ㆍ허가, 평가할지에 대한 논의가 나올 것이며, 보완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인공지능이 점점 대체 수준으로 진일보될 경우 독점 문제도 이슈로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은 클라우딩 서비스로 의료기관에서 하고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스마트폰으로도 들어올 수 있으며, 인공지능 의사를 의료기관에만 가서 만나야 하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물론 지금 단계에서 논의하기는 시기상조이지만, 언젠가는 도전에 직면할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가 문제 등과 관련해 인공지능이 대체 수준까지 갈 경우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며, 어느 시점에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도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데이터 활용을 어디까지 하게 해줄지, 이를 위해서는 10개도 넘는 개인정보 관련법을 모두 개정해야 하는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과장은 생명윤리정책과장으로서 윤리적 이슈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은데, 윤리문제를 푸는데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하나의 기준은 참여자의 동의와 객관적 평가라고 말했다.

특히 연구에서 IRB가 수행하는 기능인 ‘피어리뷰’ 등의 예를 들며, 인공지능 도입 역시 해당병원에서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 리뷰보드를 구성해 사업계획과 윤리적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 같은 진행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적어도 의료현장에서는 인공지능과 관련해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우리나라도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할 때 뭐든지 다 해보겠다는 것보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고, 객관적으로 검증ㆍ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가생명윤리포럼’은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주관으로 연 2~3회 생명윤리정책 관련 주요 이슈에 대해 다양한 사회적 담론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개최된다.

이날 논의된 의견은 지난 3월 발족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생명윤리 제도개선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 제안 및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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