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재정 중기재정추계 결과를 두고 ‘공포마케팅’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오는 2023년 건보재정이 소진된다는 추계는 의도적 결과물이며,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7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 제4차 회의를 열어 ▲2016~2025 8대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 결과 ▲2016 자산운용실적 등, 2개 안건을 논의했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7일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4차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주재,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7일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4차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주재,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 8대 사회보험 관련 이사장들과 관계부처 공무원이 참석했다.

정부는 저출산ㆍ고령화 등에 따른 재정위험 완화를 위해 사회보험의 중장기 재정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ㆍ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해 3월 협의회에서 추계시기ㆍ방법을 통일해 상호비교 가능한 ‘사회보험 통합 추계 관리체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재 연금ㆍ보험별로 재정추계 시기나 전제 등이 상이해 사회보험 전체 재정상황 파악이나 진단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7일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4차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주재,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7일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4차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주재,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이날 발표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한 노인 진료비 증가 등으로 건강보험 지출은 연평균 8.7% 증가해 2016년 52조 6,000억원에서 오는 2024년 100조원을 돌파하고, 2025년 111조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장성 확대와 노인의료비 증가 등으로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1인당 급여비는 2016년 95만원에서 2025년 180만원으로 약 2배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보험별 재정수지(단위: 조원)
사회보험별 재정수지(단위: 조원)

이에 따라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 증가 등으로 오는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2017년 21조원)도 2023년경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10년 동안 당기 수입ㆍ지출 비율, 적립배율 등 재정안정화 지표 분석 결과, 건강보험은 재정흑자에서 적자 상태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됐다. 수입지출비율이 건강보험의 경우 2016년 1.1배에서 2025년 0.8배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회보험별 재정수지(단위: 조원)
사회보험별 재정수지(단위: 조원)

정부는 중장기 재정안정화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추계기간내 재정위험 상태에 직면하는 건강보험ㆍ장기요양ㆍ고용보험의 경우 5월 중으로 해당 부처ㆍ기관별로 보완적인 중기재정추계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중기 수지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보험료 체계, 급여 지출효율화 방안 등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ㆍ장기요양보험의 경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간 합리적 역할분담, 재가서비스 비중 확대, 사무장병원 등 부정수급 방지책이 그 예다.

송언석 기재부 2차관은 모두 발언을 통해 “건강보험ㆍ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화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추계기간 중 당기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고, 누적적립금도 올해(23조원)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돼 오는 2023년경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이들 보험에 대해서는 해당 기금관리 기관별로 보다 면밀한 중기재정추계 보완작업을 바로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중기 수지균형을 확보 할 수 있는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발표는 ‘공포마케팅’ 논란을 불러오며, 의도적 결과물이자 신뢰성에 의문이 간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개별적으로 담당 부처가 챙기고 있는 사회보험을 모아 ‘적자’를 다시 강조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자칫 제도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장기보험인 공적연금과 1년짜리 단기보험인 건강보험을 같은 잣대로 취급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시민단체도 추계 결과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번 발표는 보험료 인상과 급여축소, 공적재원 투자활성화 강화를 목적으로 한 의도된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는 지난 10일 논평을 통해 “정부의 추계 결과대로라면 사실상 건강보험의 재정 파탄을 선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라며, “막대한 재정지출이 발생할 만한 급격한 정책변화 등 예기치 못한 ’외부 쇼크‘ 가 있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추계는 지나치며 상식적으로도 신뢰하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건세는 정부 추계에 근거한 급여비 2배 확대 및 1인당 노인진료비 증가 추이는 매우 과도한 것으로, 재정추계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같은 정부의 과도한 지출 추계 행태는 이미 국회예산정책처를 통해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건강보험 회계연도 결산분석을 한 결과 지출총액을 실제보다 높계 예측하고 보험료율도 필요수준 이상으로 높게 설정하는 그릇된 추계 방식이 국민부담을 가중시킨 것이다.”라며, “더욱이 중ㆍ장기 재정추계라면 오차범위는 보다 확대되는 것으로, 이 같은 방식의 사회보험 재정추계는 다른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사회보험에 대한 정부의 의무지출 비중은 축소하면서 보험료 인상과 급여 혜택 축소(적정부담-적정급여 프레임)를 위한 의도된 근거 산출이라는 것이다.

건세는 “정부는 건강보험의 단기균형 원리를 파괴한 주범이며, 누적된 공적재원의 잉여분을 국민건강 증진에 투자하기 보다는 금융시장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자산운영에 있어 국내주식을 넘어 수익률이 높은 해외ㆍ대체 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라며, “정부의 재정추계는 보험료 인상과 급여축소, 공적재원 투자활성화 강화를 목적으로 한 의도된 결과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책집행에 있어 근거의 편향성은 배제돼야 하며, 정부 스스로 이를 주도하고 있다면 중차대한 문제다.”라며, “정부는 이번 중기재정추계의 근거와 산출방법, 신뢰범위 등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편, 기재부가 노인 의료비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며 가장 강하게 경고한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 복지부가 “건보는 단기보험이므로 적정 적립금 규모 등을 감안하면서 매년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게 보험료율을 조정하고 있다. 단기보험 성격상 중장기 추계의 적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반박한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건강보험 중기 재정추계는 급속한 고령화, 지속적인 보장성 확대 등으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의 조건이 지속될 경우 중장기 재정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부담을 적정 수준으로 하면서 지출 효율화를 통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라며, 추계 필요성을 인정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