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에게 국내 의료인 및 약사 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ㆍ약계의 입장차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설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3일 북한 또는 외국에서 의과대학, 간호대학 등 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의료인 면허를 받아 활동하던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학력 인정 및 자격 인정을 받아 의료인 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의료법 개정안’ 및 북한 또는 외국에서 관련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약사 또는 한약사 면허를 받아 활동하던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학력 인정 및 자격 인정을 받아 약사국가시험 또는 한약사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4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설훈 의원은 “현행법에는 북한이탈주민이 학력 인정과 자격 인정을 통해 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라고 지적하며, “개정안을 통해 전문 자격을 갖춘 북한이탈주민이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 편입되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정부는 면허취득 절차규정 마련의 필요성이 있다며 수용 의사를 밝힌 반면, 의료계와 약계는 북한 교육의 질적 수준을 담보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의료인 면허 취득 절차
북한이탈주민의 의료인 면허 취득 절차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보건복지부는 ‘수정수용’ 의견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의료인 면허취득 절차규정을 마련할 필요성은 인정된다.”라며, “다만, 북한이탈주민도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므로 특례조항보다는 일반조항에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전했다.

통일부도 ‘수용’ 의사를 밝히며, “현행법 하에서도 북한에서 취득한 보건의료자격이 있는 경우 관계기관의 심사를 거쳐 국가시험에의 응시자격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탈북민의 보건의료분야 진출과 관련해 ‘의료법’에 명시적 규정을 두어 탈북민과 업무관계자의 이해 및 전문직 탈북민 사회진출 제도의 이행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단, 통일부 역시 일반국민과 동일하게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므로 특례조항보다는 일반조항으로 규정하는 방안 검토를 제안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북한 의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담보할 수 없어 내국인과 동일한 시험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한간호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도 각각 “교육부장관이 북한이나 외국에서 이수한 학력을 인정하는 방식으로는 의료인의 질을 담보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것”, “북한의 보건의료분야의 대학교육과 면허제도 및 의료환경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동등 이상인지 여부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적 차원에서 확인하기 어려움”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의료인 면허 취득 절차
북한이탈주민의 의료인 면허 취득 절차

같은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 역시 복지부는 ‘일부수용’ 의견을 냈지만,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약사회 반대의견을 전했다.

복지부는 “‘북한이탈주민법’ 제14조에 따라 약사ㆍ한약사 면허취득 관련 규정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다만, 북한이탈주민도 일반국민과 동일하게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므로 특례조항보다는 일반조항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약사회는 “국내 약학대학의 평가ㆍ인증 의무화 제도 및 약사예비시험제도 도입 등 약사면허에 대한 자격 인정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약제사 등에 대해 그 자격을 인정하고 약사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라며, 반대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약품 전문가로서 약사 면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북한 약제사 등이 국내 약사 면허를 취득하고자 할 경우 임상능력을 갖춘 의약품 전문가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한한약사회 역시 “아직까지 북한의 국가보건직군에 관해 우리나라의 보건직군과 업무연계성이 명확하지 않으며, 그 학제 과정에 관하여도 명확한 자료가 없다.”면서 반대의사를 명확히 한 후, “한약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학제와 교과과정이수 등 이와 동등한 학력을 이수했다는 증명이 필요한 바,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이와 같은 인정여부가 명확히 선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가시험 응시 현황(~2016)(단위: 명, %)
국가시험 응시 현황(~2016)(단위: 명, %)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은 법체계의 완결성 측면에서 입법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료계와 약계의 지적을 감안해 객관적 기준 마련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석영환 수석전문위원은 “현행 ‘북한이탈주민법’ 제14조제1항이 보호대상자는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북한 등에서 취득한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사항에 맞춰 법체계의 완결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입법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북한체제의 폐쇄적인 특성상 북한의 보건의료 관련 대학교육 수준이 국내 대학과 비교하여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지 여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사협회의 지적과, 북한의 약사자격은 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 연한이 국내 약학대학의 6년에 비해 부족하고, 북한체제의 폐쇄적인 특성상 약학교육 이수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약사회의 지적이 있는 만큼,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학력 및 자격 인정에 있어 철저를 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또, 현행법은 외국대학을 졸업하여 외국 면허를 가진 사람이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 면허를 받기 위해서는 예비시험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가 되려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예비시험을 치르도록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이탈주민 약사 및 한약사 자격인정 및 국가시험 합격 현황(2016년 12월말, 단위: 명)
북한이탈주민 약사 및 한약사 자격인정 및 국가시험 합격 현황(2016년 12월말, 단위: 명)

한편, 현재 북한에서 의료인으로 활동한 북한이탈주민이 국내에서 의료인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교육부장관으로부터 학력인정을 받고, 복지부장관으로부터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인정받아 의료인 국가시험에 합격해 면허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중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국가시험의 응시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북한이탈주민법’ 제14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28조에 근거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내 ‘북한이탈주민 응시자격 인정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북한이탈주민 응시자격 인정심사위원회는 교육부의 학력인증서 및 경력인정에 관한 서면심사와 북한에서의 의료활동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구술면접을 거쳐 자격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의료인 응시자격 인정현황 및 국가시험 합격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1998년부터 총 128명(재신청 포함, 7개 직종)이 응시자격을 신청해 총 66명(51.6%)이 응시자격을 인정받았으며, 이중 32명이 최종적으로 국가시험에 합격한 바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약사 및 한약사의 경우 지난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약사는 총 8명이 자격을 신청해 4명이 자격인정(50%)을 받았으며, 이 중 1명이 최종적으로 약사국가시험에 합격(25%)했다. 한약사의 경우 총 1명이 자격신청을 해 자격인정을 받았으나 합격자는 아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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