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백신 부족의 원인을 두고 의료계와 보건당국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가들은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도입 후 정부가 기존 가격에서 단가를 ‘후려쳐’ 제약사들이 백신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에 백신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질병관리본부는 소아백신의 특성상 글로벌 제약사가 비용만으로 그런 판단을 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또한 최근 접종수가가 책정돼 오는 5월부터 도입 예정인 혼합백신 펜탁심(DTaP+IPV+HIB)과 관련해서도 소청과와 질본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소청과는 애초부터 낮게 설정된 접종비도 문제인데, 더욱 낮은 수가로 새로운 펜탁심을 도입하려고 한다며 보이콧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해 혼란이 예상된다.

▽2009년부터 시행…올해 지원백신은 16종
‘어린이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예방접종 서비스를 가까운 병ㆍ의원에서도 비용부담 없이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예방접종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국 보건소 및 가까운 지정의료기관에서 무료접종이 가능하다.

국회는 지난 2006년 8월 보건소 뿐 아니라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무료로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전염병예방법의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당초 2007년 7월 시행 예정이었던 사업은 2009년 3월에서야 시작됐다.

당시 ‘필수예방접종 국가부담사업’으로 국가필수예방접종(만 12세 이하, 8종, 22회)에 대해 위탁 지정된 병ㆍ의원 접종 시 30%를 지원하고, 70%는 개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후 지원대상 백신과 지원액이 확대돼 올해의 경우 만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16종의 백신에 대해 예방접종비용 전액이 지원된다.

무료접종 대상 백신은 ▲BCG(피내용) ▲B형간염 ▲DTaP(디프테리아ㆍ파상풍ㆍ백일해) ▲IPV(폴리오) ▲DTaP-IPV(디프테리아ㆍ파상풍ㆍ백일해ㆍ폴리오) ▲MMR(홍역ㆍ유행성이하선염ㆍ풍진) ▲수두 ▲일본뇌염(불활성화백신) ▲일본뇌염(약독화생백신) ▲Td(파상풍ㆍ디프테리아) ▲Tdap(파상풍ㆍ디프테리아ㆍ백일해) ▲HIB(B형 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 ▲폐렴구균 ▲A형간염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 ▲Flu(인플루엔자) 등, 16종이다.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지 않은 예방접종인 BCG(경피용), 로타바이러스 등의 접종 비용은 전액 본인 부담이다.

▽소아백신 부족사태 원인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만 5세 미만 영유아 대상 무료 독감예방접종 사업은 백신 부족으로 대상 인원이 대폭 축소된 바 있다.

당시 추경예산에 만 5세 미만 소아독감 백신 무료접종 예산까지 확보했으나, 보건당국은 52만명분의 독감백신 공급량이 부족해 무료접종 대상자를 한정해야 했다.

결국 질병관리본부는 소아독감 백신 무료접종 대상을 생후 6~59개월로 정해놓고도 지난해에는 생후 6~12개월 미만 영아만을 대상으로 무료접종을 실시했다.

질본은 올해 하반기 생후 6∼59개월 접종을 지원하는 등 무료접종 대상 영유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독감백신 부족 뿐 아니라 종종 발생하는 소아백신 부족 사태와 관련해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단가 후려치기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민간 의료기관에서 접종할 때는 백신이 부족한 적이 없었는데, NIP 도입 후 너무 낮은 백신 단가와 접종비 때문에 제약사들이 생산을 꺼린다는 주장이다.

임현택 회장
임현택 회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갑질에 능한 정부는 무조건 후려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약사가 우리에게 하소연할 정도다.”라고 비판했다.

임 회장은 “백신은 휴대폰처럼 잘 팔린다고 라인을 더 깔아 만들어낼 수 있는게 아니다. 전세계에서 1년에 필요한 백신량은 수급이 한정돼 있고, 대륙별, 국가별 소요량, 우선사업순위 등에 따라 배분하는 건데, 우리 정부는 무조건 가격 후려치기만 하니 글로벌 백신사 입장에서는 들어올 필요가 없어 다 철수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백신사가 아프리카 등 제3세계국에는 특별가격으로 공급하는데, 우리 정부도 그 가격에 들어오라고 한다고 들었다.”라며,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소청과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NIP의 경우 글로벌 백신회사도 그렇게 접근하진 않는다.”라며, “물론 백신사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아이들이 꼭 맞아야 하는 백신을 두고 가격만 따지진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경쟁사가 있을 경우 그런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독점 공급하는 곳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그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그 장사만 하는게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청과의 주장대로라면 글로벌 백신사가 목 내놓고 일하는 것과 똑같다.”라며, “독점 공급인데 가격이 낮다고 못 들어가겠다고 판단하는 글로벌 백신사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DTP-IPV-Hib 혼합백신 도입 두고도 갑론을박
오는 5월 도입 예정인 혼합백신 펜탁심(DTaP-IPV-HIB)의 접종수가를 두고도 소청과와 질본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앞서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지난해 12월 ‘DTaP-IPV-HIB’ 백신 국가 예방접종사업 도입을 의결한 바 있다.

NIP의 접종수가는 ‘접종 당’ 가격으로 산정되며, 기본 시행비는 1만 8,200원이다.

혼합백신인 ‘DTaP-IPV’의 경우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와 폴리오(소아마비)를 따로 접종하면 1+1로 3만 6,400원인데, 혼합백신을 도입하면서 시행비를 1+0.5로 책정해 2만 7,300원(1만 8,200원+9,100원)이 됐다.

이번에 도입하는 혼합백신은 여기에 뇌수막염(HIB)이 추가된 것인데, 예방접종비용심의위원회는 접종비를 1+0.5+0.5인 3만 6,400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소청과의사회는 접종수가가 낮게 책정됐다고 반발하며 보이콧까지 불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미 소청과의사회는 지난해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DTaP, 소아마비 등 백신이 부족하니 수급대책을 세워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질본은 노인독감과 소아 인플루엔자 사업으로 정신이 없으니 끝나면 논의하자고 했다.”라면서, “지금 수입하면 식약처가 국가검정을 시행하는데 최소 90일이 걸리는데, 5월 1일부터 도입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임 회장은 지난 2009년 NIP 도입 당시 질본이 소청과 의료기관이 정상적인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는 저수가에서 시작하며, 사업 시행중 병원 운영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임 회장은 “소청과 전문의들은 질본의 약속을 믿고 오랜 세월 동안 막대한 손해를 감내해왔는데, 질본의 주관 하에 여러 차례 진행한 연구용역의 결과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초기의 시행비 수준을 십 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DTaP-IPV-HIB’ 혼합백신을 도입하면서 기존의 시행비에서 오히려 더 삭감된 시행비를 지급한다는 것이 소청과의사회의 지적이다.

그는 “기존의 접종비가 터무니 없이 낮은데 어떻게 거기서 더 뺄 수가 있나.”라고 반문하며, “질본 말만 믿고 손해를 보면서도 소아 건강을 위해 국가사업에 나선 소청과의사들에 대한 대가가 병원을 운영할 수 없는 수가를 주겠다는 것인가.”라고 일침했다.

아울러 임 회장은 ‘예방접종비용심의위원회’의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실련 등의 소비자단체가 왜 들어오는지 모르겠다면서, 건정심과 비슷한 구조 하에서 ‘날치기’로 안건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우리는 늘 건정심에서도 이렇게 당해오지 않았나.”라며, “내가 제시한 안은 내가 손을 든다고 해서 통과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기권하고 나와버렸다. 알아서 수급도 하고 잘 해보라고 던져주고 왔으니 이제 알아서 잘 해야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소청과의사회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NIP에서 전면 철수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질본 측은 혼합백신을 도입한다고 해서 접종비가 줄어든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질본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이번 혼합백신 도입 건의 경우 질본이 최종적으로 결정은 하지만 비용심의위원회에서 소청과를 포함해 의료계, 학계 등 여러 위원이 안건을 갖고 논의한 결과다.”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소청과는 접종비가 줄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는 줄기 않았기 때문에 별도로 대응하진 않았다.”라며, “소청과는 접종횟수가 줄어든 만큼 수입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데, 질본 입장에서 보면 병원에 덜 오는 것은 모두에게 다 혜택이다.”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는 효과가 동일하다면 병원에 한 번 덜 가도 되는 혜택이 있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접종환자가 덜 오면 그만큼 다른 환자를 더 볼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질본도 소청과가 제기한 지나치게 낮은 초기 접종비 세팅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수가 타당성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소청과는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도 혼합백신이기 때문에 접종비를 1로 할 것이 아니라 D 1, T 1, aP 1로 각각 디자인했어야 한다며 근본적인 주장을 했다.”라며, “이번에 위원회에서 혼합백신 룰 세팅을 하면서 전체적인 예산을 늘리거나 하는 부분은 재정당국의 상황과 외국 사례 등 연구를 통해 제안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접종비를 50% 추가로 결정하지만, 근본적 제도 개편 등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 위원회에서 그렇게 의결한 것이다.”라며, “향후 연구용역 등을 통해 혼합백신 접종비 인상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예방접종의 실시기준 및 방법,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의 지정 또는 지정의 취소,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 관리에 관한 퇴치계획 등에 대해 심의하는 전문위원회로, 위원장 1인 및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1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백신허가ㆍ심사를 담당하는 고위공무원 ▲질병관리본부에서 예방접종 관리를 담당하는 고위공무원 ▲관련 학회, 단체 또는 감염병관리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 ▲예방접종 실시 경험이 풍부한 임상의사(소아청소년과, 내과 등)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예방접종 관련 전문가 ▲예방의학, 보건학 등 분야의 전문가 ▲예방접종 대상인 감염병 분야의 전문가 ▲예방접종과 관련된 면역학 분야의 전문가 ▲예방접종과 관련된 미생물학 분야의 전문가 ▲예방접종과 관련된 보건경제학 분야의 전문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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