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할 경우 처벌을 상향 조정하고, 설명 의무를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최종 확정되자 이번엔 아동ㆍ성보호에 관한 법률 입부개정법률안(이하 아청법 개정안)으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성범죄자의 취업제한을 최대 30년까지 확대하는 아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사협회는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청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과 개선방안을 밝혔다. 진화하는 아청법에 의료계는 답답하기만 하다.

▽청소년 보호법의 아청법 변화 과정
아청법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중이던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초다.

아청법은 이 법률에 아동도 이 법의 보호대상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아동을 포함시켜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바꾸는 개정안이 2009년 4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아청법은 2010년 1월 1일 시행됐다.

이에 앞서 성범죄자 취업제한제도가 도입됐다. 성범죄자 취업제한제도는 아동ㆍ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기관ㆍ시설에서 성범죄 전력자가 아동ㆍ청소년에게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지난 2006년 6월 30일 도입한 제도다. 2008년 2월 4일부터 취업제한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했다.

2010년 4월 15일부터는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 외에 성인대상 성범죄자를 추가해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이후 아청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011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2012년 2월 1일 공포된 후, 같은 해 8월 2일부터 시행되면서 취업제한 대상에 의료인이 포함됐다.

이때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범위가 확대됐고, 13세 미만 여자 및 장애인 여성 대상 강간ㆍ준강간죄의 경우 공소시효 적용이 배제됐으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은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변경됐다.

특히,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대상 직군에 의료인 및 학습지 교사가 추가했다. 이로 인해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도 10년 동안 의원을 개설하거나 취업이 제한됐다.

취업이 제한되는 아동ㆍ청소년 관련 기관으로는 의료기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 등 전국적으로 52만여 개소가 있다.

▽여가부, 아청법 취업제한 30년까지 연장 추진
최근 여성가족부는 성범죄자의 아동ㆍ청소년 관련기관에 대한 취업제한 기간을 최대 30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아청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으며, 3일 뒤인 11일 국회에 제출됐다.

개정안은 법원이 범죄의 경중과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취업제한 기간을 선고 형량에 따라 30년을 상한으로 차등 선고하도록 규정했다.

법원은 재범 위험성 판단을 위해 관할 보호관찰소를 통해 대상자의 심리적 상태, 정신성적 발달과정, 성장배경 등에 관한 판결 전 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외부전문가의 의견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죄질이 나쁘거나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최고 30년간 아동ㆍ청소년 관련기관에 취업을 제한할 수 있다.

취업제한 기간은 성범죄로 3년을 초과하는 징역 또는 금고형 선고시 30년이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이나 치료감호를 선고하는 경우 15년,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 6년의 범위 내에서 법원이 선고하도록 했다.

▽아청법 개정 근거된 헌재 판결…환영 입장 낸 의협
여가부가 아청법 개정에 나선 것은 올해 3월 31일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아청법의 의료기관 개설금지 및 취업제한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성범죄로 형을 선고 받아 확정된 자의 형 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10년 동안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한 구 아청법 제44조제1항제13호가 헌법에 위반되며, 아청법 제56조제1항제12호 중 ‘성인대상 성범죄로 형을 선고 받아 확정된 자’에 관한 부분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라 하더라도 개별 범죄의 경중에는 차이가 있고, 이는 재범의 위험성도 마찬가지이므로 10년 동안 일률적인 취업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제한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게 헌재의 결정이다.

헌재는 10년이라는 현행 취업제한기간을 기간의 상한으로 두고 법관이 대상자의 취업제한기간을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방식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리하면, 헌재의 선고는 성인대상의 성범죄라 하더라도 취업제한 자체가 위헌이라는 취지는 아니며, 일률적인 취업제한기간을 경중을 가려 합리적으로 구분하라는 취지다.

지난 3월 31일 헌법재판소에서 아청법 10년 취업제한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지자 의사협회가 제작한 UCC
지난 3월 31일 헌법재판소에서 아청법 10년 취업제한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지자 의사협회가 제작한 UCC

2010년 4월부터 아청법에 성인대상 성범죄자도 추가해 취업을 제한하자 의협 집행부는 아청법의 목적이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대상 성범죄자까지 10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아청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그런데 헌재 판결의 취지가 ‘성인대상의 성범죄라 하더라도 취업제한 자체는 위헌이 아니다’는 내용 임에도 추무진 집행부는 선고 당일 ‘당연한 결정이며 환영한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의협의 입장표명으로 ‘아청법에 성인대상의 성범죄자까지 10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아청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해 온 과거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아청법 개정안,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의협 추무진 회장은 지난달 23일 의협회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청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의협은 사람의 신체를 접촉하고 다루는 의료인이라는 특수성 즉, 환자에게 언제든지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아동ㆍ청소년에 대한 접촉 차단이라는 이법의 주요 입법취지에 맞게 의료기관의 취업제한 대상을 아동ㆍ청소년을 진료하는 기관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장소적 제한이 어려울 경우, 행위 제한으로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즉, 아동과 청소년을 진료하지 않거나 직접 대면진료를 하지 않는 의료기관에는 취업제한규정에서 예외를 둬야한다는 주장이다.

의협의 요구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여가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의료인이라는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에는, 오히려 일반인 입장에서는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거부해 왔다.

또, 아동과 청소년을 진료하지 않는 의료기관은 취업제한 규정에서 예외를 둬야한다는 주장에는 아청법은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성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환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진료행위가 성추행으로 인정돼 선의의 피해를 보는 의료인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성추행 등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 입장에서도 수치심을 느낄만한 행위였는지 객관적으로 평가되며 법원의 객관적 판단에 따르게 된다며 반박한다.

의사들도 구체적인 통계를 수집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역의사회 한 임원은 “우선, 의협에서 통계부터 수집해야 한다. 성범죄자 재범률이 어느 정도인지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을 받은 경우 재범률 통계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일반 성범죄자가 아동성범죄를 일으키는 통계도 확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임원은 “취업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재범률이 높고, 재발 방지 교육으로 성범죄를 낮출 수 없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현행 법률은 과도한 처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계적 접근과 함께 전문가 의견을 제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구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의료계 인사도 “아동과 청소년 성범죄를 통계로 보면, 가족과 친척, 동네사람이 80%에 이른다. 의료기관에서의 성범죄는 극히 미미하다.”라며 통계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이 인사는 “진료실에서 문제가 되면 엄청나게 이슈가 될텐데, 이슈가 된 적이 있나? 아이가 혼자 진료실에 들어오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라면서, “아청법은 정교하게 접근한 게 아니라 성범죄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관련 사항을 추가했다. 정비가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인사는 헌재 판결 취지를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헌재 판결은 10년이라는 현행 취업제한기간을 상한으로 두고 법관이 대상자의 취업제한기간을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라며, “30년이 아니라 10년 내에서 죄의 경중을 가려 취업제한 기간을 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샤프롱제도가 아청법의 대응방안이 될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샤프롱 제도는 의사가 여성이나 미성년 환자를 진료할 경우, 보호자나 간호사 등 제3자를 진료실에 배석시키는 제도다.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은 “현재 개정중인 의사윤리지침에 샤프롱제도가 포함됐다. 샤프롱제도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이점이 있다. 성추행ㆍ성범죄 등 불미스러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환자가 의료인을 고발하는 경우 샤프롱제도를 통해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의료인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대 범죄자는 의협에서 먼저 법보다 강한 제재로 잘라내야 한다. 반면, 의사의 억울한 부분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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