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치료물질을 신약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혹은 허가를 획득하고 실제 환자에게 처방하는 상황에서 허가 적응증(효과) 외의 효과가 발견된다. 이런 경우에는 추가 연구를 통해 유효성 및 안전성을 입증해 적응증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별도의 허가과정 없이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오프라벨(off-label)로 처방되기도 한다. 2016년 10월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돔페리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도 돔페리돈이 모유촉진제로 오프라벨 처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허가당국의 허가사항이 절대적 진리는 아니며, 돔페리돈 외에 많은 성분이 오프라벨로 처방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촉발된 돔페리돈 논란
2016년 국정감사에서 촉발된 돔페리돈 부작용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월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와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산부인과에서의 부작용 발생이 우려되는 돔페리돈이 모유촉진제로 처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식약처는 수유부가 돔페리돈을 투약한 후 모유수유 시 산모와 신생아에게 부작용 특히, 심장 문제 발생 위험이 있다며, 허가사항을 변경하고 임부 및 수유부에 대한 투여 주의를 경고했다. 그러나 전국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에서는 돔페리돈이 버젓이 처방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전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산부인과에서의 돔페리돈 처방건수는 2015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 7만 8,361건이었다. 소아청소년과에서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16개월 동안 돔페리돈이 병용금기 약과 함께 15만 6,000건 처방됐다.

이어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돔페리돈을 모유촉진제로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불법 처방을 합법인 양 선전해 돔페리돈 복용환자로부터 면피하려고 국민을 악의적으로 속이고 있다. 더욱이 돔페리돈 정제든 돔페리돈 말레산염이든 모두 식약처가 임부금기 성분으로 지정했으며, 심평원의 DUR은 임부금기를 경고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의료계는 임부금기 약물은 돔페리돈 말레산염이지 돔페리돈 정제가 아니라며, 산부인과나 소청과에서 모유촉진제로 처방하는 약물은 돔페리돈 정제라고 반박했다. 의료계는 오히려 전 의원이 돔페리돈의 안전성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11일 성명서를 통해 “외국에서 문제가 있던 사례들은 국내 상용용량인 30mg의 돔페리돈을 경구로 복용해 발생한 것이 아닌, 암환자 치료 중 발생한 오심, 구토 증상 조절을 위해 정맥으로 돔페리돈 성분을 주사했을 때 발생한 것이다.”라며,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지금도 30mg 안팎의 저용량으로 소화기 증상 치료제 및 모유촉진제로 처방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돔페리돈이 정말 위험한 약이라면 전 의원이 조사한 기간에 부작용 사례 보고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부작용 발생확률이 7만 8,0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약을 위험한 약이라고 할 수 있나? 전 의원의 자료는 오히려 돔페리돈의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한모유수유의사회(회장 김화중)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돔페리돈과 심장 부작용 간의 연관성에 대한 몇몇 연구가 있기는 하나, 이는 대부분 연령이 60세 이상이거나 하루에 30mg 이상을 복용했을 때였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돔페리돈은 대부분 10mg 제형이며, 일반적으로 하루 30mg 이하로 처방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돔페리돈 처방을 금지하는 나라보다 저용량으로 처방하는 나라가 훨씬 더 많다면서, 미국 FDA의 권고사항이 의학의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현재 국내에서 돔페리돈 처방과 관련해 부정맥이나 심장관련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가 없다.”라며, “돔페리돈의 심장 관련 부작용에 대한 정밀한 배경지식 없어 발생한 논란이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국회발 돔페리돈 논란은 법정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이 지난 14일 전혜숙 의원을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도를 지나친 사실왜곡과 모유수유부의 공포심을 극대화한 작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어 고소를 단행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나와서 사실관계를 밝혀라.”라고 비판했다.

전혜숙 의원 역시 12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임 회장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해 민ㆍ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법적 조차를 다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도대체 오프라벨이 뭐길래…
의료계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돔페리돈을 모유촉진제로 오프라벨(off-label; 허가 외 사용) 처방하고 있으며, 이는 모두 전문가인 의사의 판단에 따른 합법적인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프라벨이 무엇일까?

오프라벨이란 ▲허가 외 용량이나 투여경로로 처방 ▲허가 외의 환자에게 처방 ▲허가 받지 않은 적응증으로 처방 등을 모두 일컫는 의미다. 즉, 적응증에 맞는 적절한 약이 없어서 처방하거나 환자의 특이적 상태를 보고 처방하는 등 허가당국으로부터 허가 받은 범위에서 벗어난 모든 경우의 처방을 말한다.

오프라벨 처방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허가 받은 대로만 처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모든 경우에 대해 허가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약이 실제 환자에 처방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보고될 수 있는데, 다양한 변수를 라벨에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임상에서는 환자사례가 있을 때 약을 처방할 수 있으며, 이는 불법(혹은 위법)이 아니다.

더욱이 새 적응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을 허가 받은 제약사 등에서 별도의 연구를 진행해 추가 적응증에 대한 유효성 및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며, 그에 대한 허가당국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만약 새로 발견된 효능ㆍ효과를 추가해 발생하는 이익이 많지 않다면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제약사 입장에서 허가를 받기 위한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에서 오프라벨 처방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리보트릴은 클로나제팜 성분의 항경련제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하지불안증후군 및 램수면행동장애, 주기성 다리떨림 등과 같은 불안증상을 치료할 때 더 많이 처방되고 있다.

리브감마는 사람면역글로불린G를 성분의 저 및 무감마글로불린혈증을 주요 적응증으로 하는 혈액제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습관성 유산이나 반복착상 실패를 겪는 산모에게 오프라벨로 리브감마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타가메트도 위 및 십이지장 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 치료를 적응증으로 하는 시메티딘 성분의 소화성궤양 치료제지만, 세포매개성 면역증강효과가 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사마귀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한편,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개발된 프로페시아(피나스테리드)는 전립선비대증 치료 중 발모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경구용 남성형 탈모치료제로 허가를 획득했다. 허가 이전까지는 오프라벨로 탈모 치료에 처방됐다.

▽꼬일 대로 꼬인 돔페리돈, 해법은?
의료계는 오프라벨 처방 논란으로까지 번진 돔페리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이드라인 마련 및 과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일반약 판매금지 조치를 촉구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동석)는 17일 “돔페리돈은 메스꺼움, 구토 증상의 완화를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약제지만 수유부의 젖양을 늘리는 모유촉진제로도 사용되고 있다. 여러 임상연구에서 돔페리돈이 유선조직에서 젖이 생산되도록 하는 프로락틴을 증가시켜 유즙분비를 촉진한다는 점이 확인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유가 적게 나와 고민인 수유부에게 모유촉진제로 사용할 수 없는 다른 약물이 없는 현실에서, 그 동안 안전하게 처방돼 왔던 약을 허가 외 사항이라는 이유로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충분한 안전성 검토를 통해 모유촉진제로서의 돔페리돈 사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전문가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처방이 아닌, 과용 가능성이 높은 일반약 판매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소청과의사회는 “돔페리돈 과용량을 복용할 경우 심장에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돔페리돈 제제를 약국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한 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돔페리돈 일반약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를 취하고 약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일반약들도 DUR 대상에 포함시키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돔페리돈은 물론, 오프라벨 처방이 이뤄지는 약물에 대한 실태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보건당국이) 오프라벨로 처방되는 주요 약물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한 후, 해당 약물의 처방현황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며, “모든 비급여를 DUR에 편입시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처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검토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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