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분을 사전 통지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집행한 보건복지부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지난 13일 의사 5명이 복지부를 상대로 ‘자격정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의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들은 K제약 리베이트와 관련해 지난 2012년 1월과 2월 복지부로부터 ‘자격정지 2개월’ 처분을 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받았고, 그 해 2월과 3월 ‘처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했다.

복지부는 약 3년 반이 지난 2015년 9월과 10월에서야 원고들에게 사전통보한 내용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원고들은 복지부의 이러한 늑장처분에 대해 ‘행정절차법 제22조제5항을 위반했으며, 처분 사유와 근거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처분을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행정절차법 제22조에는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할 때 청문을 하거나(제1항) 공청회를 개최(제2항)하는 경우 외에는 당사자 등에게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제3항). 행정청은 청문ㆍ공청회 또는 의견제출을 거쳤을 때는 신속히 처분해 해당 처분이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제5항).’라고 명시돼 있다.

재판부는 “행정절차법은 침해적 처분의 상대방에게 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견제출의 기회 등을 부여하고, 행정청은 이를 통해 처분과 관련된 문제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적정한 처분을 내리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절차를 거친 후 행정청에는 해당 처분을 지연하지 않도록 하는 의무가 부과된다. 이는 상대방의 정당한 법적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처분을 둘러싼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고 분쟁의 조기 해결, 행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행정절차법의 목적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을 경우 의견조회 후 곧바로 해당 처분을 해야 한다며, 복지부의 늑장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행정청은 의견제출 등을 거친 후 법률상ㆍ사실상의 장애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곧바로 처분해야 하고, 그 의무를 위반한 결과 해당 처분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방의 정당한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다면 그 처분은 취소 사유에 이를 정도의 절차상 하자가 존재한다. 이 사건의 각 처분은 행정절차법 제22조제5항을 위반했다.”라고 판시했다.

의사들이 의견을 제출한 후 행정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데 대해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기대했을 가능성이 크며, 곧바로 처분할 수 없는 법률상ㆍ사실상 장애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의견제출 절차를 거친 후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곧바로 처분을 하지 않다가 약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은 원고들의 정당한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이 사건 처분은 절차상 하자가 있으므로 처분 사유 및 근거 부존재 등에 대해 살펴볼 필요 없이 위법하다.”라고 설명했다.

원고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광장의 이종석 변호사는 복지부의 늑장대응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이종석 변호사는 “복지부가 (의사들에게) 의견제출을 다 받고 장기간 방치하다 뒤늦게 처분한 사례가 몇 차례 있다. 그때는 법원이 복지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했다. 이는 변호사들이 행정절차법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처음으로 행정절차법을 지적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의료사건에서 나온 판결이지만, 행정절차법의 중요성이 강조됐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다.”라며, “이번 판결은 복지부의 늑장대응에 경종을 울린 판결로, 앞으로 복지부가 장기간 사건처리를 방치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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