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낙태)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고 처벌을 강화하기로 하자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번 조치를 강행할 경우 낙태 시술을 중단하겠다고 초강수를 뒀고, 복지부는 의견수렴 후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지난 9일 열린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궐기대회 모습
지난 9일 열린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궐기대회 모습

복지부는 9월 23일부터 11월 2일까지 입법예고 중인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령안’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8가지 구체적 유형으로 세분화하고,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문제는 8가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가 포함되며 불거졌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미 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형법 및 의료법에 의해,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 형사처벌 및 면허의 결격사유 처벌 규정이 있다.”라며, “선고유예 이하를 받은 경우까지 처벌범위를 확장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산의회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해선 선진국의 대부분이 일정 임신주수까지는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은 사회경제적인 사유까지도 허용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인공임신중절의 적법한 사유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라며, “비현실적인 국내 법률을 기준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로 치부하고 처벌까지 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현재 모자보건법 허용사유 이외에 여성에서 생길 수 있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임신중절에 대한 규정에 대해 OECD 수준으로 법제정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을 용납할 수 없다며, 사회적 합의 후에 현실적인 의료법 개정안을 도출하라고 촉구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태아가 무뇌아 같은 기형이라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기준이 없는 모순이 있으며,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사유만 정했고 허용 사유를 제외한 수술의 경우에는 처벌규정이 없어 형법이 적용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직선제 산의회는 우리나라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여성의 대부분은 ‘원하지 않는 임신’ 등 법에서 허용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며, 그 동안 인구 과잉에 따른 인구 조절정책으로 정부를 포함 낙태를 묵인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모자보건법이 사문화되다시피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열린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궐기대회 모습
지난 9일 열린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궐기대회 모습

실제로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험이 있으며 가장 큰 이유는 ‘원하지 않은 임신이어서(43.2%)’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가 불법인 셈이다.

직선제 산의회는 “이런 현실에서 입법의 미비를 해결하지 않고 의사만을 처벌하겠다고 모두 비윤리적 행위로 입법예고한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묵과한 채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떠넘겨 버리고, 정부는 적당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책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오는 11월 2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 정부안대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이 시작될 경우 모든 산부인과의사들의 낙태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할 것이다.”라고 경고하며, 입법예고안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관련 언론보도도 잇따르자 복지부는 지난 11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현행법상 유전적 장애,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5가지를 제외한 임신중절수술에 대해서는 형법(제269조, 270조)에 의거, 형사처벌 대상이다.”라고 해명했다.

최근 5년간 16건의 행정처분을 실시하는 등, 현재도 불법 임심중절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기존의 의료법에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1개월 이내 자격정지 처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번 처벌기준 상향 조정 예고에 대해서는 “현재 비도덕적 진료행위시 자격정지 1개월에 불과해 처벌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고려하고, 의료계의 자율징계 권한 강화를 위해 실시하는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련 법령은 입법예고 중으로,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 및 자격정지의 기간 등은 입법예고 기간 중에 전문가 및 국민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의사협회는 복지부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의료계의 지적을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난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9일 복지부와 관련 논의를 했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의견수렴 후 결정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한 달만 수술하지 하겠다고 하면 과거 중국에서 수술 받다가 사망한 사건처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라며, “마치 마녀사냥식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복지부는 현행법상으로도 불법인데 왜 반발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법이 있다고 해서 그걸 다시 처벌기준에 넣어 버리면 안 된다.”라며, “기존법대로 하면 되지, 처벌 강화를 위해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을 포함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의료계 뿐 아니라 여성계 일각에서도 외국처럼 관련 법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사회ㆍ경제적 이유’로도 낙태가 가능하며, 폴란드의 경우 최근 낙태금지법을 제정하려다가 여성 10만명이 검은 옷을 입고 항의 시위를 벌여 결국 폐지되기도 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지난 12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의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모자보건법과 형법의 낙태죄 등 현행법은 임신 여성들의 권리에 대한 고려 없이 인공임신중절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복지부의 개정안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여성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현행법 체계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범죄로 규정하거나 배우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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