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3일 의료인의 면허신고 요건을 강화하고,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처벌을 강화하는 등 의료인 면허관리제도 개선안을 담은 의료법 관계 시행령 및 시행규칙, 행정처분관계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복지부가 지난 3월 8일 의료인 면허관리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 데 이은 후속 조치이다. 의료계는 면허관리제도 개선안이 다양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복지부는 지난 3월 8일 진료행위 중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면허를 취소하고, 동료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등 의료인 면허 관리제도를 대폭 강화하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복지부는 단기적으로 추진가능한 사항은 상반기 중으로 의료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하반기부터 시행하고, 면허취소사유 신설과 자격정지명령제도 도입 등 추가로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입법절차를 3월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관련 법안인 일회용주사기 재사용 금지법이 지난 5월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13개 법률안과 통합ㆍ조정돼 의료법 개정안으로 통과됐다.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 사건으로 마련된 이 법은, 의료인에 대해 일회용 주사 관련 의료용품을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의료기관 개설자의 준수사항에 의료기관의 위생관리 및 의약품과 일회용 주사 관련 의료용품의 사용에 관한 내용 등을 추가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아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의료기관의 영업정지, 개설허가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명령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는 9월 23일 의료인 면허관리제도 개선안을 담은 의료법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기간은 11월 2일까지 40일간이다.

▽의료계에 행정 권한 위탁은 없다
의료계는 면허관리제도 개선안이 의료인의 전문가로서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의협은 정부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규제할 게 아니라, 행정권한을 위탁해 의료계 차원의 자율규제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동안 세차례 공청회를 비롯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온 의사협회는 비도덕적 진료행위 범위를 구분하고, 행정처분 기준을 정해 복지부에 전달했다. 또, 처분권자를 복지부와 의료인단체 윤리위원회로 이원화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행저처분 권한을 의료인단체 윤리위원회에 이양하는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윤리위원회에서 의뢰한 행정처분 안을 가능하면 수용하기로 했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복지부가 의료계의 자율규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윤리위원회가 행정처분 조치와 자격정지 기간을 정해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하면 복지부는 요청한 내용대로 행정처분을 실시하기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처분 대상자가 처분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의견을 제출할 경우, 복지부는 이를 검토해 최종처분을 내리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비도덕적 진료행위 구분한 것 맞나?
이번 개선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유형이다.

복지부는 지난 3월 8일 면허제도관리 개선안을 발표할 때,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복지부는 ▲의학적 타당성 등 구체적 사유없이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등을 사용한 경우 ▲음주로 인해 진료행위에 영향을 받는 경우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으로 국민건강상 위해를 끼친 경우 ▲의료인이 마약ㆍ대마ㆍ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요한 상태에서 진료한 경우 ▲환자 대상 향정신성 의약품을 고의로 초과투여한 경우 ▲고의로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 사용 등 6개 항목을 발표했다.

의협은 내부 의견수렴 후 비도덕적 진료행위 구분이 불분명 하다며 13개 항목을 제안했다.

의협이 제안한 항목은 ▲진료중 수면 유도 또는 마취를 이용한 성범죄로 인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단, 법원 최종 판결 선고시까지 ▲면허대여 행위(면허대여 행위 관련 내부고발자는 면책) ▲진료행위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만성적이고 회복불가능한 육체ㆍ정신적 질환이 있는 경우 ▲학문적 또는 임상적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기대할 수 없는 진료행위를 한 경우 ▲의료인이 본인치료 외의 목적으로 면허취소의 기준을 초과하는 마약ㆍ대마향정신성 의약품을 상습적으로 투여한 상태에서 적절한 진료에 지장을 초래한 경우 ▲치료행위와 무관하게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마약을 고의로 투요한 경우 ▲고의로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상습 사용한 경우 ▲환자를 유인하기 위한 상시적인 본인부담금 면제 또는 할인 행위 ▲문자ㆍ전화ㆍ편지ㆍ차량 등을 이용한 조직적인 건강검진 유인행위 ▲불필요한 검사ㆍ투약ㆍ수술 등 과잉진료를 한 경우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요구한 경우 ▲전공의 선발 등 직무와 관련해 부당하게 금품을 수수한 경우 ▲기타 의사회 중앙윤리위원회에서 비도덕적 의료행위라고 인정하는 경우 등이다.

하지만 복지부가 9월 22일 발표한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유형에는 의협의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 세부유형으로 ▲의학적 타당성 등 구체적 사유 없이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등을 사용하는 경우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진료 목적외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거나 투약한 경우 ▲진료 중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제1항 각 호에 열거된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수술 예정 의사가 환자의 동의 등 특별한 사유 없이 다른 의사, 한의사 또는 치과의사로 하여금 대리하여 수술을 하게한 경우 ▲변질ㆍ변패(變敗)ㆍ오염ㆍ손상되었거나 유효기한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마약ㆍ대마ㆍ향정신성의약품 외의 약물 등으로 인하여 진료행위에 영향을 받은 경우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등 8개항을 제시했다.

특히,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 의료계는 경악하고 있다

‘그 밖의’라는 표현으로 인해 비도덕적이라는 기준이 엿가락 늘어나듯이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성종호 경기도의사회 부회장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범위가 의견수렴이 안됐다. 이대로라면 매우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성종호 부회장은 “특히 ‘그 밖의’라는 표현은 문제가 크다. 의료법에서 의료인의 품위손상문제를 리베이트 수령에 대한 처벌로 몰아갔듯이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며, “비도덕적 진료행위는 추후 추가되더라도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기술된 행위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적발 및 처벌 위주…모호한 규정 손봐야
의료계는 면허관리 규제는 의료인 적발 및 처벌보다는 예방과 질향상을 목표로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번 면허관리 개선안은 처벌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이미 지난 5월 의료법 개정으로 일회용 주사 의료용품을 재사용해 보건위생상 중대한 위해를 입힌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됐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료인에게 자격정지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확대했다.

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의료인의 면허신고시 신체적ㆍ정신적 질환을 신고를 의무화한 만큼,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면허제도와 관련된 개인정보 유출시 처벌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 밖에, 전문가 평가단 시범사업도 행정절차 여부를 명확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평가단 만으로 조사가 어려울 때 복지부 및 보건소와 공동으로 조사하도록 규정했는데, 이때 적발사유에 해당돌 경우, 행정절차가 정식으로 진행되는 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 의료계 의견 수렴 한 것 맞나?
의협은 지난 3월 면허제도관리 개선안이 공개된 직후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해 복지부에 개선사항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의협회관 3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면허관리제도개선 및 자율징계권 확보를 위한 공청회’ 모습
지난 1일 의협회관 3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면허관리제도개선 및 자율징계권 확보를 위한 공청회’ 모습

의협은 약 6개월 동안 세차례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면허제도개선 및 자율규제 확보방안(안)’을 마련했고, 이 개선안을 지난 9월 21일 상임이사회에서 의결했다.

복지부는 전문가평가단 구성 및 운영방식을 받아들였지만, 의료계의 행정권한 위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범위도 대부분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협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것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복지부의 태도다.

의협은 개선안을 상임이사회에서 의결한 직후, 즉 21일 복지부에 제안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하루 만인 22일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복지부는 보도자료에서 ‘의사협회가 3차에 걸친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중앙 및 지역의사회의 역할 및 자율규제 강화를 포함한 시범사업 실시계획을 마련해 복지부에 제안했고, 복지부도 면허관리제도 개선 및 자율규제 강화 취지에 공감해 의협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의협이 개선안을 제안한 지 불과 몇시간 만에 준비해 둔 보도자료를 배포해 놓고, 마치 의협이 제출한 안을 반영한 것 같은 행태를 취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진행된 공청회에 복지부도 참여해 온 만큼 사전협의가 됐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보도자료를 하루 만에 배포한 것은 정부가 보여야 할 태도가 아니다.”라며, “이 부분에 대해 내부에서 굉장히 불괘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김 대변인은 “면허제도 관리 개선안에 포함된 ‘비도덕적 진료행위 처벌강화’와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으로 나눠 자료를 배포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복지부에 항의했다.”라며, “이번 사안으로 인해 복지부와 일정기간 냉각기를 겪을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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