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의장 임수흠)는 지난 3일 오후 4시 의협회관 3층 대회의실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임총에서는 ▲2015년도 회무 재감사를 위한 특별감사의 특별감사보고서 보고 ▲김세헌 감사 불신임 발의 따른 처리의 건 ▲대의원회 운영규정 일부 개정의 건 등 3개 안건을 다뤘다. 안건은 모두 가결됐지만, 대의원회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 장면들을 모아봤다.

▽“요점만 발표하라”
특별감사단 이용진 감사가 감사결과를 발표하던 중 장내에서 “요점만 발표하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용진 감사는 “30분을 부여받았다. 시간 안에 끝내겠다.”라고 답하고 감사보고를 이어갔다.

이철호 특별감사단장이 감사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이철호 특별감사단장이 감사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이날 특감보고에 할애된 시간은 한시간이었다. 하지만 장내에서 고함이 나온 시간은 이 감사가 보고를 시작한 지 13분이 지날 무렵이었다.

앞서 이철호 단장이 총괄보고를 하는데 소요된 6분까지 포함하면 19분째 발표를 하고 있을 때 짧게하라는 지적이 나온 셈이다.

대의원들이 지난 4월 24일 68차 정기총회에서 ‘회무 재감사를 위한 특별감사’를 결의함에 따라 특감이 진행된 것을 잊은 걸까.

▽“거짓말은 그만 합시다”
불신임 안건을 표결하기 전 불신임 발의자를 대표한 이동욱 대의원과 불신임 대상자인 김세헌 감사에게 각각 10분간의 발표시간이 주어졌다.

김세헌 감사가 신상발언중 장내에서 “거짓말을 발표해도 되나요?”, “거짓말은 그만 합시다.”라는 발언이 나왔다.

동료 대의원들로부터 불신임이라는 불명예를 받게 될 상황에 놓인 당사자의 짧은 발언조차 들어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만일, 이동욱 대의원이 불신임 사유를 발표할 때 김세헌 감사를 지지하는 대의원이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불신임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발언했다면 총회가 제대로 진행됐을까?

고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표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의원들은 불신임 사유와 그에 대한 해명을 듣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표결을 할 권리가 있다.

▽“감사 업무 정지 아닌가?”
김세헌 감사는 신상발언에 앞서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와 관련하여’라는 책자를 배포했다.

이 책자는 불신임 사유가 정관에 해당되지 않으며, 자신이 감사로서 지적한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한 대의원이 “무슨 돈으로 책자를 만든 거냐.”라고 지적하자 김세헌 감사는 “사비로 만들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의원은 “왜 의협 마크를 찍었나. 업무정지 상황 아니냐?”라고 재차 지적했고, 김 감사는 “업무정지 상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의협 정관 20조2의제4항에 따르면, 임명된 임원에 대한 불신임 발의가 있으면 당사자의 직무 집행이 정지되고, 불신임 결정이 있는 날부터 그 직위를 상실한다.

하지만 선출직인 감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의협의 법률자문 결과에 따르면, 감사는 불신임 결정이 있는 날 직위를 상실하면서 직무도 정지된다.

대의원이라면 적어도 문제를 제기하기 전, 관련 규정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세부내용은 개별 이견이 있습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 장면은 비단 대의원들에서 그치지 않았다.

특감단의 결과보고 후 임수흠 의장이 특감 소감을 요청하자 추무진 회장은 “여러분께서 보셨지만 회무가 정말 방대하다. 모든 것을 챙겨봐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지적하신 사안은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겠지만 추 회장은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개별 이견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회무 방향은 지적한 내용대로 해나갈 것을 말씀드린다.”라고 덧붙였다.

특감단은 지난 8월 20일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를 초대해 사전브리핑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의가 있으면 보고 내용을 수정해 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집행부가 요청한 사항을 일부 수정해 줬다.

굳이 추 회장이 ‘개별 이견이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여전히 자리 뜬 대의원들
이날 임총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수 대의원이 자리를 떴다.

의사협회 재적대의원은 241명이다. 이날 임총은 재적대의원 241명 중 157명이 참석해 성원됐다.

첫번째 사안인 특감보고서 채택여부를 의결할 당시 161명이 참여했고, 두번째 사안인 불신임 발의안을 처리할 당시 167명이 참여했으나, 마지막 사안인 운영규정 개정안을 의결할 때 자리를 지킨 대의원은 136명에 불과했다.

그동안 대의원들이 회원을 대신해 총회에 참석하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이번 임총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회비 미납자의 대의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임수흠 의장은 올해 정총 직후 “정당한 이유없이 연속 2회 이상 총회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대의원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관 제26조(대의원의 임기와 권리의무)제4항및제5항은 ‘대의원이 임기중 회비를 납부하지 아니하거나 정당한 이유없이 연속해 2회 이상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 대의원의 자격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의원들, 책임감이 필요하다
대의원들은 감사 결과를 보고하는 특감에게 짧게 보고하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신상발언중인 감사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발언을 방해하기도 했다.

일부 인사는 특감이 대의원을 가르치려 한다며 반감을 나타냈다. 이 인사는 회무감사 내용은 상임이사회에 전달하면 될 일이라는 엉뚱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임수흠 의장이 임시총회 개회사를 하는 모습
임수흠 의장이 임시총회 개회사를 하는 모습

또, 이날 임총은 의협 사상 처음으로 대의원 손으로 감사를 불신임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세헌 감사가 의협 규정상 불신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괘씸죄에 걸려 불신임됐다는 의견이 결코 적지 않은데도 말이다.

2년 전 의사협회 106년 역사상 최초로 협회장을 불신임한 대의원들이 이번에는 최초로 감사를 불신임했다.

대의원들은 각 지역의사를 대표해 총회에 참석하는 대리인이다. 이들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회의 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들의 한표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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