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에 대한 의견수렴을 끝냈다. 의견조회 결과는 전화상담을 원격의료로 확대하지 않을 것과 처방 제한을 전제로 한 조건부 찬성이 많았다. 의사협회는 오는 7월말로 예정된 의료정책발전협의체 회의에서 의견조회 결과를 복지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동안 의사협회는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전화상담을 받아들일 경우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의 당위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지난 6주 동안 의협의 행보를 보면 찬성과 반대를 놓고 고민했다기 보다는 어떤 조건을 걸고 찬성하느냐 여부를 고심한 듯 하다. 반대를 표명하고 조건을 협상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조건부 찬성을 내건 모양새가 못미덥다.

▽복지부,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 추진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3일 제8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동네의원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7월부터 참여 사업기관을 모집해 1년간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시범사업 대상은 고혈압과 당뇨 재진환자이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되, 유사 수가를 참조해 각 행위별 특성에 따라 적정한 수가를 지급하기로 했다.

관리 절차는 ▲계획수립 및 교육(월 1회, 행위별) ▲지속적 관찰(주 1회, 월정액) ▲전화 상담(월 2회, 행위별)으로 정했다. 수가는 횟수에 따라 1만원에서 3만 4,000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만성질환 관리 단계
만성질환 관리 단계

시범사업 기간 동안 환자의 본인부담은 없으며, 고혈압 및 당뇨병을 가진 국민은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가까운 동네의원을 방문해 신청하면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편, 시범사업 7월 시행 계획은 일정기간 미뤄졌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6월 29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범사업 방향은 기존 방향으로 확정됐지만 7월부터 시행하기는 힘들다.”라며, “의협과 협의해야 할 실무사항도 있고, 시범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할 사항도 있어서 부득이 시범사업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시범사업 개시일은 정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의견조회 회신 소수, 조건부 찬성 우세
대한의사협회는 ‘동네의원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 계획이 발표되고 한 달이 지나도록 내부 의견수렴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하지만 산하단체에 공식 문서를 내려보내 의견수렴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의협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뭉개고 있다는 지적과 내부에서 이미 찬성을 결정해놓고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의협은 7월 6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간 각시도의사회 및 각 학회, 각 개협,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산하단체를 대상으로 의견조회를 실시했다.

의견조회 결과, 7개 시도의사회, 2개 전문학회, 2개 개원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12곳이 의견을 제출했다.

대상 기관이 60곳이 넘는 것을 고려하면, 회신율이 2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의견조회 결과는 조건부 찬성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사회는 전화상담이 원격의료의 주춧돌이 될 수 있으므로 시범사업에 반대하지만 당뇨병, 고혈압을 주로 진료ㆍ관리하는 개원가의 의견이 중요하므로 입장 변화가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시범사업이 진행될 경우, 추가보조금으로 인해 참여의원이 급증할 것이므로 의협에서 선정권을 가지고 지역 배분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건부 찬성으로 읽힌다.

인천시의사회는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에 찬성하며, 시행하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의사회는 일차의료기관을 이용하기에 접근성과 편리성이 높고, 전화상담은 표준화하기 어렵다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부산시의사회는 원격으로 처방전을 발행하는 행위를 금지할 것과 원격진료 도입차단을 계획안에 명문화 하지 않으면 시범사업 시행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충남의사회는 주기적으로 혈압 및 혈당을 체크하고 관찰하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고, 전화상담은 문진을 통한 진료행위로 의사와 환자간의 원격진료의 또 다른 형태라고 판단한다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전남의사회는 복지부가 아닌 의협 주도의 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며 조건부 찬성의견을 회선했다. 또, 올해 안에 노인정액제 개선이 안 되면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전북의사회도 의협 주관 하에 사업을 시행해야 하며, 향후 원격진료 시행을 위한 전초전 성격의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대한예방의학회는 참여 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모니터링, 평가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제로 찬성입장을 밝혔고,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의견이 없다고 회신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번 사업을 받아들이면 전화상담 진료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처방전 발행만 없을 뿐인 엄연한 원격진료라고 지적하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특히, 전화상담 수가는 당근책이며 의약분업에서 보듯 정착 후에는 수가의 대폭 하락 예상되고, 적용범위도 점차 병원급 기관으로 확대되며, 처방전 발행도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원내과의사회는 내부의견수렴 중으로, 최종 결정은 보류라고 회신했다. 다만, 원격의료 관련 시범사업은 의료계가 주축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원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건정심 시범사업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전협은 제도의 졸속 도입으로 인해 참여 의사들에게 실익이 없고, 오히려 신규 개원의들의 진입을 막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전화 상담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의 일부로써 의료의 본질과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밖에 상임이사회에서는 시범사업에 비대면 진료개념을 넣었다는 것만 보면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의견과, 원격의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일 수 있으나 무조건적 반대보다는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됐다.

▽대면진료 가치 하락 우려…의협은 조건부 찬성 의견 제출 예정
동네의원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은 비대면관리 단계에서 전화상담이 포함된 게 핵심이다.

복지부는 전화상담에는 처방이 제외돼 원격의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의료계는 원격의료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얼굴을 보고(대면)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 전화로 상담을 하니 원격이고, 상담에 수가를 반영하니 진료행위라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전화상담이 원격진료의 당위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처방 제한과 원격의료 확대 금지를 명문화할 경우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처방 제한과 원격의료 확대 금지만으로 전화상담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부담이 크다.

의료계는 지난 수년간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전화상담을 허용하게 되면 환자들이 편한 전화상담을 선호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고, 이는 대면진료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또, 처방 제한과 원격의료 확대 금지가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환자들이 시민단체를 앞세워 처방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복지부가 이를 막아낼 방법이 있을까? 전화상담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안전성과 유효성을 방어논리로 내세울 수 없게 되므로, 처방 제한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때문에 전화상담이 원격의료로 가는 미끼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끼라고 생각하는 회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회원들이 힘들고 지쳐있어서 의협이 어떤 대안이나 지침을 제시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의협은 오는 7월말로 예정된 의료정책발전협의체 회의에서 의견조회 결과를 제출할 예정이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
김주현 의협 대변인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지난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의견조회 결과, 조건부 찬성 의견이 많았다. 조건은 ‘복지부가 전화상담은 원격의료가 아니다’고 명확히 할 것과 ‘의협주도로 시범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오는 7월 말로 예정된 의료정책발전협의체 회의에서 의견조회 결과를 복지부에 건넬 계획이다. 이 때는 의견조회 결과만 제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복지부는 이미 전화상담이 원격의료가 아니라고 밝혔다고 하지만 의협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듣겠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우리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공식 선언하면 시범사업 수정안을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복지부가 우리 제안을 거부하면, 만성질환자 수가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어떤 선택이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지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가 사드 문제로 복잡해 회의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편집자 주>
인천시의사회가 ‘의료사각지역 외의 대도시 지역의 원격진료 반대를 전제로, 시범사업에 참여하되, 시범사업 결과에 따라 만성질환관리 찬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해왔기에 이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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