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국내 의대 최초로 지난 2014년 절대평가를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학생들을 무한 경쟁시켜 ABCDF로 나누는 상대평가에서 P(Pass)와 NP(Non-Pass)로만  평가하는 절대평가로 바꿨는데 우려와 달리 오히려 학업성취도는 높아졌으며, 학습동기와 협동심까지 상승했다. 이를 주도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우택 의학교육학과장을 만나 의대생 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정신의학 전문의인 전우택 교수는 탈북자문제, 북한문제와 집단 트라우마에도 관심이 많으며,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한반도 평화연구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 소장 등을 맡고 있다.

최미라 기자: 안녕하세요.

전우택 교수: 반갑습니다.

최미라 기자: 연세의대가 국내 의대 최초로 학생 학습평가 시스템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pass and non-pass)로 변경했죠?

전우택 교수: 지난 2014년 본과 1학년생부터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의 명칭은 ‘모든 학생 A급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누군가에게 B, C, D, F를 줌으로써 만들어지는 A가 아니라, 모두를 A로 만드는 일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었죠.

최미라 기자: 절대평가 체제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우택 교수: 상대평가를 통해 의학교육의 문제점을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일단 의미 없는 경쟁이 의미 있는 경쟁을 막아섰죠. 의대에는 전국 성적 상위 0.5%에 해당하는 ‘공부의 신’이라는 학생들만 입학하는데, 상대평가는 이들을 무한경쟁시켜 등수를 매겼죠. 첫 시험에서 120명 중 10등 안에 못 드는 학생들은 자신이 지진아, 저능아이고 좋은 의사와 의학자가 되지 못 할 것이라는 자기비하, 자신감 상실, 자포자기를 경험합니다.

최미라 기자: 학창시절 1등만 해오던 학생들이 의대에 와서 첫 성적표를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는 거군요.

전우택 교수: 그렇죠. 사실 의대생들 모두 앞으로 세부영역에서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 되는게 당연한 사람들인데, 처음부터 자신의 수준을 최악으로 평가하는 거에요. 교수들이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등수를 받는 순간 스스로 수준을 규정합니다. 초ㆍ중ㆍ고 때 태도를 그대로 적용해 버리는 거죠. 그 이후부터는 자기개발을 할 리가 없고, 억지로 의대를 다니고 가까스로 국시에 합격해 마지못해 의사를 합니다.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어요. 또한 상대평가 체제는 동급생들을 동료가 아닌 경쟁 대상자로 인식하게 해 의사로서 중요한 협력 능력도 낮추게 했죠.

최미라 기자: 상대평가로 바꾼 이후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요구했나요?

전우택 교수: 무엇보다 연구하는 능력을 극대화시켜 달라고 했죠. 단순히 등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에 가서 밤을 새우라는 거에요. 외국 의대생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우리나라 의대생들만 유별나게 족보를 밤새 외우며 시험을 준비하니 논문 쓰느라 밤 새는 외국 의대생들과 졸업 후 경쟁이 안 되는 거죠. 성적 적당히 받아도 되니 논문 쓰라고 해도 등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절대 그렇게 안 하길래 아예 성적을 없애버리고, P(pass)와 NP(non-pass)로만 나누기로 했죠.

최미라 기자: 의사나 의학자로서 열심히 논문을 쓰는 길 외에 다른 분야로도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거죠?

전우택 교수: 맞습니다. 모든 학생이 생물학적 논문을 쓰는데 목숨을 걸 이유는 없어요. 한국사회와 세계가 안고있는 보건의료 문제를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적 역할자도 되기를 원합니다. 과거에도 국회와 언론사, 보건의료 관련 연구소 등에 가서 활동하라고 요청해도 아주 열정있는 학생이 아니고는 학교 성적 때문에 그렇게 못했는데, 상대평가 체제로 바꾸며 논문을 써오든지 뚜렷한 경험을 요청하니 관심 있던 학생들은 WHO, 국제 NGO, 언론사, 복지부, 국회 등에 가서 활동할 수 있게 됐죠.

최미라 기자: 그렇군요.

전우택 교수: 학교가 원하는 세 번째 인재상은 어려움 속에 있는 가난한 환자들 옆에 가서 봉사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에요. 봉사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지원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기독교 대학이다 보니 해외 의료선교하는 현장에 학생들이 많이 나가 과거보다 훨씬 활발하게 지원하고 많은 걸 배워오고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아직 절대평가 체제 도입 초기이지만, 성과가 좀 보이나요?

전우택 교수: 도입 전후를 비교하면 시험문제가 비슷하게 출제되는데, 평균 성적이 더 높아졌어요. 절대평가 도입 당시 일각에서 공부를 안 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기우였던 거죠. 실제로 2014년 절대평가를 처음 도입한 본과 1학년 학생 121명이 배운 12과목의 과목별 평균점수를 상대평가 체제(2011∼2013년) 380명의 평균점수와 비교했더니 72.01점에서 77.43점으로 평균 5.42점(7.53%) 높아졌어요. 학생들은 성적을 P나 NP로만 받았지만 절대평가의 학업성취도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교수가 채점한 원점수를 비교한 결과에요.

최미라 기자: 절대평가를 도입한 이후 평균 성적이 오히려 높아졌군요?

전우택 교수: 성적이 원래 좋았던 아이들은 비슷한데, 과거 공부를 포기했던 학생들의 점수가 올라가니 평균이 높아진 거죠. 아직까지는 조심스럽지만, 절대평가를 첫 도입한 현재 본과 3학년생들을 보면 성공적인 것 같아요. 물론 학생들 모두 논문을 쓰게 하고 지원해야 하니 교수들 입장에서는 대형강의보다 훨씬 힘들지만, 학생들을 위해 잘 해주고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성적 뿐만 아니라 협업능력과 협동심도 올라갔을 것 같은데요?

전우택 교수: 그렇습니다.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할 때 ‘학습공동체(Learning Community)’를 만들어 교수 1명이 학년별 학생 8명과 함께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했어요. 이 공동체는 학습 상담 뿐만 아니라 연극, 오페라, 야구도 함께 보러 다니면서 그 동안 삭막했던 의대의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죠. 교수와 학생이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동기들과 팀으로 같이 움직이는 체험을 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거대한 교육실험이었는데, 교수와 학생들이 헌신적으로 뛰어줬고, 이제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학년이 누적되기 시작하니 선배가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수하는,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시스템도 훨씬 발전했어요.

최미라 기자: 이렇게 성과가 뚜렷하면 다른 의대도 도입을 고려할 것 같네요.

전우택 교수: 미국 의대나 일본의 상위권 의대들은 모두 절대평가를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만 죽어라고 상대평가를 해온 것인데, 다른 의대들은 절대평가가 꿈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다가 연대가 하니까 많은 부분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절대평가를 도입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보고하는 것이 한국 의학교육의 틀을 바꾸기 위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하고 있어요. 올해 인제의대가 처음으로 의예과 1학년부터 도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더 많은 의대들이 바꿀 것으로 생각해요. 

최미라 기자: 북한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 직책도 많이 맡고 있는데,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과 지원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전우택 교수: 그 동안 대북 보건의료 지원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이론적 논리나 합리적 시스템을 갖고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약과 의료 기자재 등을 지원하다 보니 부작용이 일어난 거죠.

최미라 기자: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전우택 교수: 한 동안은 엄청난 양의 기생충약이 들어가다 보니 북에 지원했던 기생충약이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팔리는 현상까지 나타났어요. 북한 인구는 2,500만명인데, 우리가 보낸 양은 5,000만명분이라서 일어난 일이죠. 북한에서 기생충약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하니 여러 기관에서 다 기생충약만 보냈어요. 어떤 종류의 약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중앙에서 체크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또, 결핵약을 보내달라고 하니 남한에서 쓰는 것을 보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동안 결핵약을 거의 안썼기 때문에 1차 결핵약만 보냈어야 하는데, 2ㆍ3차까지 마구 들어가 뒤섞여 사용되며 엄청난 내성을 만들어버려 치료하기 아주 힘든 결핵환자를 양산해 놓은 꼴이 됐죠. 

최미라 기자: 지원해준 의료기자재도 문제가 됐나요?

전우택 교수: 그렇습니다. 북한의 의료수준이나 전기시설 등 여러 여건에 맞춰 지원을 해야 하는데, 북한은 무조건 최신식, 최고급을 달라고 하고 돕는 사람들도 어떻게 헌 걸 주냐며 제일 좋은 새 걸 주겠다고 했죠. 결국 한 번도 뜯지 않은 채 5~10년 지나 폐기해야 할 시점이 된 기자재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최미라 기자: 좋은 뜻으로 지원했는데 의도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발견됐군요.

전우택 교수: 많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죠. 특히 대북지원이 활성화 돼 있던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10년 간의 경험을 통해 보건의료 지원은 매우 중요한데, 다른 분야와 달리 반드시 의료 분야 지원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대북 보건의료 지원업무는 매우 발전했고 노하우가 축적돼 전문가들도 많이 생겼어요. 문제는 활동가들 수는 늘었지만, 북한 보건의료 연구자 수는 늘지 않았다는 거에요. 시스템을 갖춰 지원하기 위해서는 활동가와 전문적 연구자가 모두 필요합니다.

최미라 기자: 이런 경험을 통해 전문 연구자들이 모인 학회도 만들어졌죠?

전우택 교수: 네. 대북지원 활동가들이 양성되는 것만큼 남북 보건의료 전문 연구자들의 공동 활동이 필요성이 강조돼서 지난 2014년 ‘통일보건의료학회’가 설립됐습니다. 이 학회는 대북 보건의료 지원을 하는 곳이 아니라, 통일을 연구하는 보건의료 연구자들의 모임이에요. 통일의 가장 핵심적 영역 중 하나인 보건의료 분야에서 통일준비를 위해 발족된 학회죠. 의학, 치의학, 한의학, 간호학, 약학 등 각 직능분야와 보건학, 의사학, 의료인류학, 의료사회학, 의료행정학 등 관련 학문 분야의 정보, 교류, 네트워크 형성, 공동 활동과 연구의 마당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 학회에서는 그동안 이뤄진 ‘통일보건의료연구목록’을 만들었죠. 처음으로 이런 것이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이 관심을 갖고 훨씬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어요.

최미라 기자: 사회정신의학 전문의로서 집단 트라우마에도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요, 정신과의사로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 해결방안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전우택 교수: 사실 일제 치하에서 살았다는 것부터가 한국인들의 엄청난 집단 트라우마입니다. 해방 후에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이냐를 두고 이념충돌이 있었고, 6.25 이후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극도의 가난 속에서 많은 부정부패 고리를 벗어나지 못한채 북한은 독재정권이 세워지고 남한도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었죠. 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집단트라우마도 컸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반복돼 왔는데 발달된 국가, 발전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갈등을 정확히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어요. 상처는 그대로 있고 덧나는데 새 상처가 반복되며 병적인 집단병리 상태를 갖게된 거죠.

최미라 기자: 많은 경제적 발전을 이뤘지만 상처는 그대로 갖고 있는 상태인 건가요?

전우택 교수: 나라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나아지면 호전된 부분 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매우 폭력적이고 건강성에서 멀어져 있어요. 6.25 당시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수 천배 잘 살게 됐지만, 자살률은 엄청나게 커진 걸 봐도 알 수 있죠. 가난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국민소득이 3만불이 됐는데도 자살률이 폭등했어요. 한국은 사회적 갈등상황만 벌어지면 합리적 토론으로 못가고 극한적 대립에 의한 최악의 결과만 만들어 놓는데, 이 많은 것들이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와 관련이 깊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질 수가 없는 거죠.

최미라 기자: 건강한 해결 능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해결돼야 할까요?

전우택 교수: 일단 남북 분단 문제가 풀려야 해결될 일이 많습니다. 북한이 주고 있는 여러 트라우마는 단순한 핵무기에 대한 위협 뿐만이 아닌, 근본적 불신과 증오가 더 크죠. 과거 소련과 중국도 핵무기는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죠. 북한도 마찬가지일테구요. 분단 문제가 극복돼야만 우리나라는 정신적인, 집단적인 건강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또 해결돼야 하는 점은요?

전우택 교수: 두 번째는 한국사회가 부정한 방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만 치유가 되고 건강해진다는 겁니다. 가난한 시절에는 나쁜 짓인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할 수 없이 도둑질 했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요새 부정부패는 이미 돈이 많으면서도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그런 것이 대부분이에요. 여전히 부정부패가 통하는 사회라는게 문제입니다. 뉴스에는 부정부패에 의해 수감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주인공만 바뀌고 형식은 그대로 반복되는 이유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정직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죠. 분단과 정직하지 않은게 통한다고 믿는 사회가 해결돼야 한국은 건강한 사회 될 수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전우택 교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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