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성분을 알 수 없는 의약품 원료와 사용기한이 최대 3년 이상 지난 한약재, 식품 재료로도 사용이 금지된 숯가루를 섞어 불법의약품을 만들고 이를 순수 한약재로 만든 당뇨치료제로 속여 고가에 판매한 한의사들이 적발됐다.

한약 성분표시를 꾸준히 주장해 온 의사들은 또 다시 불거진 한약 문제를 비판하며, 보건당국의 철저한 실태조사와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불법 한방 당뇨치료제(청혈익기환, 청혈환)
불법 한방 당뇨치료제(청혈익기환, 청혈환)

앞서 서울시 특별사법경찰단(이하 특사경)은 적발된 한의사 3명 중 2명에 대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이들의 의뢰를 받고 제분소에서 불법 당뇨치료제를 대량으로 제조한 식품제조업자 2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번에 적발된 한의사들은 지난 2005년부터 2016년 1월까지 불법 당뇨치료제 3,399㎏를 제조해 시중 약국에서 판매하는 당뇨치료제보다 최고 24배 비싼 가격에 팔아 38억원 상당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약을 구매한 환자들은 1만 3,000여 명에 달했다.

시중에 판매 중인 대표적인 당뇨치료제인 그린페지정은 1만 4,500원(1개월분, 90정)이고, 피의자들이 판매한 당뇨치료제의 가격대는 23만원~35만원(1개월 분, 300g)이었다.

피의자들이 사용한 의약품 원료는 당뇨치료제 성분(메트포르민, 글리벤클라미드)이 일부 함유된 성분불상의 원료였다.

메트포르민(상품명 그린페지정)과 글리벤클라미드(상품명 다오닐정)는 경구용 당뇨치료제의 주성분으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당뇨 관련 전문의는 당뇨병은 장기 치료가 필요하고 합병증의 위험이 높은 질병인 만큼, 성분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복용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쳤을 경우 심혈관 질환, 중풍, 망막질환 같은 만성 합병증 증가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의약품으로서 갖춰야할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불법 의약품은 정확한 용량 투여가 되지 않아 기존 치료약 성분의 부작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적발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A 한의원 원장 B 씨는 의약품 원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제조자를 만나 계약하고, 당국의 수입허가 없이 7년간 15번에 걸쳐 총 1,050㎏을 불법 반입했다.

B 원장은 이렇게 불법 반입한 의약품 원료를 가지고 환자별 처방전도 없이 경동시장 내 제분소에 의뢰해 당뇨치료제를 대량 제조했다.

특사경의 압수영장 집행 과정에서 한의원 내 탕전실에서 최고 3년이나 지난 ‘목통’을 비롯해 사용기한이 지난 한약재 42종류가 발견됐고, 약에 색을 내기 위해 의약품은 물론 식품 원료로도 사용할 수 없는 숯가루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B 원장은 이렇게 만든 당뇨치료제를 서울 서대문구 소재 C 한의원 원장 D 씨에게도 공급했다. D 원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한의원 환자들에게 이 제품을 고가(15만원~35만원)에 판매했다.

D 원장은 또한 순수 한약으로 만든 당뇨치료제라고 속이기 위해 화학성분 분석보고서의 날짜와 내용을 위조해 환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대구시에 소재한 E 한의원 원장 F 씨는 2005년경부터 평소 알고 지내던 한의사 G 씨(2007년 10월 사망)가 불법으로 만든 당뇨치료제를 공급받아 판매하다가 2008년부터는 자신이 직접 제조하고 유통시켜오다 적발됐다.

이들은 ‘약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적용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권해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장은 “시민의 건강권 보호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있는 한의사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당뇨치료제를 불법으로 제조하고 고가에 판매한 것은 시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라며, “유사 사례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펼쳐 시민 건강을 위협하는 부정 식ㆍ의약품사범을 끝까지 추적, 수사해 뿌리뽑겠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의사들은 믿지 못할 한약 성분을 또 다시 꼬집으며, 엄격한 검증과 성분 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문광고 등을 통해 한약의 안전성 검증을 대대적으로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의사는 “이번이 좋은 기회인 것 같다.”라며, “한약이 양약과 다른 약일 것이라고 믿고 먹는 환자들이 대부분인데, 사실은 당뇨약을 섞은 것이고 그게 당뇨약 뿐이겠느냐며 다른 한약들도 조사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사도 “이런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의사들이 설립한 모 제약사에서 자신들이 처방하지도 못 하는 일반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의약품 원료를 사용하는 데는 특별한 제약이 없으니 원료를 한약재처럼 한의원에 공급하고, 한의사들은 그걸 한약에 섞어서 판매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도 의약품 완제품이 아닌 원료를 사다가 갈아 넣은 것처럼, 의약품 원료 공급에 관한 문제제기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사는 “한의원에 공급되는 의약품들의 원료를 전수조사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스테로이드, 리도케인 원료 등을 공급 받고 있을 수도 있다.”면서, “트리암 원료를 공급받아 약침에 섞어 쓰면 한의사들 말대로 그냥 약침이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의사 역시 “보건당국은 제발 한약 성분 조사좀 해라. 달나라 가려고 추진중인 나라가 한약은 성분조사도 안 하느냐.”라며, 허술한 관리 실태를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성 검사를 소홀히 해 문제가 됐는데, 한약은 안전성 검증도 안하고 인체에 투여한다는 것은 위험하며, 성분명과 원산지, HACCP, 유통기한 등이 표기 안 된 한약을 먹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국민 역시 한약의 약효 및 안전성 검증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3월 30~31일 이틀간 국민 1,01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모든 한약의 약효 및 안전성 검증을 위해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응답이 76.4%에 달했다.

의사협회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모든 한약은 임상시험을 거쳐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얼마나 공감하는냐’는 질문에 ▲매우 공감한다(39%) ▲ 어느 정도 공감한다(37.5%)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15.3%)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4.9%) ▲무응답(3.3%) 순이었다.

또, 현재 조제 및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한약의 경우에도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 비율은 72.5%로 조사됐다.

의협은 “특히 동의보감과 같은 한의학 고서에 기재돼 있으면 임상시험을 받지 않아도 조제 및 처방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국민은 86.5%였다.”라며, “한약에 대해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여론인 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가 한약에 대한 임상시험 의무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의협은 가짜 당뇨약 사건에 연루된 한의사 회원들을 ‘일벌백계’ 결단할 것이라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김필건)는 지난 30일 “중국에서 들여온 불법의약품을 원료로 가짜 당뇨약을 제조한 한의사들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보건복지부에 면허정지를 비롯한 최대 수위의 징계를 요청하겠다.”라고 밝혔다.

한의협은 “이번 사안은 환자들을 상대로 의료인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중차대한 잘못이다.”라고 지적하며, “한의사 회원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건강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협회 차원에서 엄벌에 처하는 강도 높은 자정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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