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한 ‘법곤충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추정시간을 밝혀낸 의사가 있다. 곤충의 종류와 발육 상태를 통해 사망 시간과 원인, 장소를 추정하는 학문을 ‘법곤충학’이라 하는데, 법곤충학으로 단서를 찾아내 범인을 검거하는 등 범죄해결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박성환 교수팀은 최근 치안과학기술사업단에서 추진하는 연구개발사업에 ‘법곤충학을 활용한 사후경과시간 추정 프로그램 개발’ 연구기관으로 선정됐다. 박성환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법곤충학자 수가 많지 않지만, 시신 부검과 곤충 연구 사이에서 의사의 가교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미라 기자: 안녕하세요.

박성환 교수: 반갑습니다.

최미라 기자: 법곤충학이란 어떤 학문인가요?

박성환 교수: 법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곤충학적 증거를 활용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죠.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부분은 시신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일이에요. 또,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서식하기 어려운 곤충이 있다면 시신이 다른 곳에서 옮겨졌는지도 유추할 수 있죠. 사실 그 동안 공식적인 감정의뢰는 거의 없고 알음알음 경찰들이 증거물을 가져오면 비공식적으로 회신해줬는데, 재작년 유병언 사건 때 사망시간을 감정해서 주목을 받았어요.

최미라 기자: 구체적으로 곤충학적 증거로 어떻게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하나요?

박성환 교수: 곤충은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대사속도가 대기온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은 36.5도의 체온이 유지되기 때문에 주위 온도를 다르게 한다고 해서 자라는 속도가 달라지지 않지만, 곤충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온도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다르죠. 너무 춥거나 하는 극단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항상 시신에 곤충은 옵니다. 파리는 알을 낳고 부화해 구더기와 번데기, 파리가 되는데, 유충의 나이를 알면 산란시기를 알 수 있고 그걸 통해 시신이 언제 그 장소에 놓여졌는지 알 수 있죠.

최미라 기자: 그렇군요.

박성환 교수: 법곤충학으로 정확히 언제 사망했다고 나오지는 않고, 최소한 언제보다는 이전이라는 식으로 결론이 도출됩니다. 시신의 마지막 행적과 법곤충학에서 보는 최소한의 사후시간 사이의 기간 안에 언젠가 죽었다로 판단하는 거죠. 거기서 벗어난 알리바이가 있으면 범인일 가능성이 줄고, 그 기간에 매칭되면 수사선상에 오르는 식이에요. 유병언 전 회장의 경우 사망시간을 일주일로 좁혔어요. 더 좁힐수도 있었는데, 처음에 중요한 사건인지 몰라서 40일이 지나서야 현장조사를 해서 어려웠죠. 결국 마지막 목격 시점과 사이를 고려해 일주일 정도로 사망시간을 추정했습니다.

최미라 기자: 타살사건 등의 현장에서는 시신의 사망시각 추정이 매우 중요할텐데, 경찰의 의뢰가 많나요?

박성환 교수: 사실 그 동안은 알음알음 아는 경찰관들이 증거물을 갖고오면 비공식적으로 회신하는 수준이었어요. 체계적으로 사후경과시간까지 추정한건 공식적인 사건 중에는 유병언 변사사건 정도죠. 경찰도 유병언 사건처럼 중요한 사건이나 판단하기 아주 어려운 정도가 아니면 잘 의뢰하지 않아요. 곤충증거까지 분석할 사건은 사실 별로 없거든요. 번거롭고 시스템 안 돼있고요. 수사기관에 자체 감정파트가 생겨 법곤충학자들이 채용되고, 증거물을 바로 분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최미라 기자: 우리나라의 법곤충학 현황은 어떤가요?

박성환 교수: 거의 시작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외국에서도 워낙 소외된 분야인데, 우리나라는 더 합니다. 곤충학자 중에 법곤충학을 전공하는 분은 거의 없거든요. 저는 법의학 전공이에요. 4년 동안 병리학 레지던트 생활을 한 후에 부산 국과수에서 3년 동안 공보의 생활을 했죠. 국과수 근무 후 고대에 왔더니 스승님이 법곤충학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안한다고 해서 나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이후 스승님은 퇴임했고, 이대로 접어버리기에는 기존에 연구했던 기반이 아쉬워서 데이터 축적을 위해 계속 하기로 했어요. 내가 그만두면 없어져 버리거든요. 사실 전망있는 연구라고 해서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죠.

최미라 기자: 국내에는 법곤충학 감정에 활용할 기초적인 곤충상이나 주요 곤충에 대한 유충 성장속도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던데요?

박성환 교수: 네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수집 중이에요. 파리 종 하나에 대해서는 유충 성장속도 분석을 마쳤고, 다른 종도 많이 진척된 상황입니다. 곤충상은 전국적으로는 여력이 안돼서 못했고, 근처에서는 수 년 동안 해왔어요. 시체에 오는 곤충도 3년 넘게 조사해서 발표했고, 국과수와 함께 지역을 넓혀 실제 사람시신에서 발견되는 곤충을 지난해부터 분석중입니다.

최미라 기자: 치안과학기술사업단에서 추진하는 ‘법곤충학을 활용한 사후경과시간 추정 프로그램 개발’ 연구기관으로 선정됐죠.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나요?

박성환 교수: 그 동안 하던 일을 규모를 넓혀 정부지원 R&D 사업으로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거죠. 고신대 생물학과 문태영 교수, 고려대 통계학과 이재원 교수, 고려대 법의학교실 손기훈 교수, 생물정보학 전문기업 인실리코젠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행할 예정이에요. 구체적으로는 ‘실제 수사에 사용할 수 있는 법곤충학 감정 보조프로그램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곤충학적 증거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파리, 딱정발레 중심의 전국적 시식성 곤충생태조사 ▲기후자료확보 ▲주요 시식성 곤충 유충의 성장속도 측정 ▲ 관련 자료의 통계 개발 및 프로그램 개발 등에 대한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최미라 기자: 이번 연구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박성환 교수: 현재 국내에는 법곤충학 감정에 활용할 기초적인 곤충상이나 주요 곤충에 대한 유충 성장속도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이번 연구로 기초자료가 수집되고, 그 자료를 활용한 감정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법곤충학 기법이 국내에서도 일상적인 수사기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경찰도 이 정도 큰 연구사업을 기획해 진행했으면 결과를 이용하고 싶을테고, 그러려면 인력이 필요할테니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을 채용해 감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최미라 기자: 법곤충학을 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박성환 교수: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에요. 사실 연구자들이 청소하고 정리까지 하기는 너무 힘들어서 허드렛일을 할 파트타임 보조원을 뽑았었어요. 그런데 이 분이 냄새나서 싫다며 하루 나오고 안 나오더라구요. 유충을 사육할 때 돼지 간을 쓰는데, 돼지간 썩는 냄새나 파리 냄새 같은게 좀 심하거든요. 겨울이 지나고 파리채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래도 좀 괜찮은데, 여름되면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하지만 다들 하루 나오고 안 나와서 지금은 없어요. 저도 포기했죠.

최미라 기자: 고충이 많군요. 향후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박성환 교수: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잘해서 경찰 등 수사기관에 법곤충학 전문가나 지식 있는 수사인력이 배치되고, 실제로 법곤충학이 감정에 쓸 수 있게 하는게 목표에요. 사실 그 단계까지 된다면 의사는 할 일이 없을 수도 있어요. 법곤충학 자체에서는 의학의 활용이 거의 없어요. 다만, 부검하다 보면 곤충이 나오니 부검과 법곤충학 사이에 가교가 필요하고, 의사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따라서 의사들도 관심을 갖도록 계속 환기시키는 역할은 필요해요. 하지만 지금처럼 제가 사업 전체의 총책임자 역할을 하는것은 과도기적 단계이니 그런 것이고, 앞으로 이런 일은 궁극적으로 곤충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이끄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최미라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성환 교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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