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온라인 커뮤니티 닥플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해 의료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전국의사총연합이 창립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열린 제6차 정기회원총회에서 약 석 달 후 일본으로 거주지를 옮길 예정인 인물을 단독 대표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정성일 후보는 경쟁후보의 사퇴로 홀로 후보가 되는 바람에 찬반 투표를 통해 대표로 선출됐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조직력과 행동력을 앞세워 성과를 내던 전의총의 역할이 감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행동력 앞세워 급성장…의협회장과 각세우며 혼란
전의총은 창립 이후 의료 현안마다 쉬지 않고 목소리를 내면서 회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그러다가 전의총은 지난 2012년 노환규 대표를 37대 의사협회장으로 배출하면서 의료계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이후에도 전의총은 의료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고, 한의사ㆍ약사 등 타 직역과의 고소ㆍ고발전을 전개하면서 상당 기간 회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전국의사총연합은 2014년 10월 2일 오전 8시 30분 LIG손해보험 본사 앞에서 소속 직원들이 경찰을 사칭해 병원을 불법 압수수색했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2014년 10월 2일 오전 8시 30분 LIG손해보험 본사 앞에서 소속 직원들이 경찰을 사칭해 병원을 불법 압수수색했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전의총은 ‘조직력을 갖춘 행동하는 단체’였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 전의총을 지탱하는 힘이자 자랑이었다.

하지만 전의총은 2013년 10월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정부에 맞서 대정부 투쟁에 나선 노환규 회장의 투쟁방식을 놓고 지지파와 반대파가 갈리면서 내부에서 혼란을 겪는다.

이후 전의총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2014년 3월 10일 집단휴진을 일주일 앞두고 전의총은 노환규 회장이 진행하는 투쟁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선언과 함께, ‘투쟁 불참 회원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하지만 정작 투쟁 당일 운영위원 상당수가 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인다.

또, 전의총은 3월 21일 대회원 사과문을 발표한다. 이 사과문은 ‘노환규 회장을 37대 의협회장선거에서 적극 지지해 회장에 당선시킨 것과 이후 일련의 과정에서 전의총이 노 회장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던 점, 회원들에게 지지 받는 성공한 집행부로 이끌지 못한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과문은 앞서 2월 23일 열린 전의총 4차 회원총회의 결의사항에 의거해 발표했는데, 이때 총회 참석자는 40여명에 불과했다.

당시 전의총의 행보를 시간 순으로 다시 정리해 보면, 2월 23일 회원총회에서 대정부 투쟁이 실패하면 노환규 회장 지지를 사과하기로 결정해 놓고, 3월 3일 노환규 회장의 투쟁방식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 3월 10일 집단 휴진에는 적극 참여하지 않고, 3월 21일 노환규 회장의 투쟁은 실패했다고 대회원 사과를 한 것이다. 이는 도저히 한 단체의 움직임이라고 믿긴 힘든 행보다.

하지만 2013년 말부터 2014년 4월까지 이어진 대정부 투쟁 및 노환규 회장 불신임 정국은 의료계에서 의약분업 이후 14년 만에 찾아 온 최대 혼란기였다.

누구도 무엇이 최선인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최선과 차선, 최악의 경계도 모호했기에 당시 전의총의 판단이 그르다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외국 거주 대표 선출…회원들 분위기 싸늘
이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전의총은 지난 21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강당에서 제6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임기 2년인 신임대표를 선출하는 총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는 회원 30명, 법제이사 1명, 의장 1명 등 총 32명이었다.

한때 150여명에 이르는 회원이 참석했던 전의총 정기총회 모습은 이제 흘러간 과거가 됐다. 참고로 2014년 4차 총회 참석자는 40여명, 2015년 5차 총회 참석자는 77명이다.

올해 공동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는 정성균 후보(의료혁신투쟁위원회 공동대표)와 정성일 후보(전의총 사무국장) 두 명이었다.

정성균 후보는 부산의 C 운영위원과 공동 출마를 전제로 후보자로 등록했으나, 공동대표 출마자가 정성일 후보인 것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후보를 사퇴했다.

정성일 후보는 회원 30명 중 23명의 찬성을 얻어 대표로 선출된다.

정성균 후보는 2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의료계 개혁 세력의 화합과 전의총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동 대표간 의견 조율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정성일 후보와는 의견 조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사퇴배경을 밝혔다.

특히 정성균 후보는 “정성일 후보는 8월경 일본으로 이민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대표직을 맡으려고 하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 C 운영위원과의 공동 출마와 관련해서 정성균 후보는 “부산쪽에서 중재를 해 준 분이 있었다. 지난해 5차 총회에서 대표직에 출마했다가 자리를 욕심낸다는 비난이 많아서 조심스러웠다. C 운영위원이 출마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후보 등록 마감일인 20일에 알았다.”라고 말했다.

정성균 후보는 “C 운영위원의 불출마를 미리 알았다면 후보 등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분이 왜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겠다.”라고 의아해 했다.

이와 관련 C 운영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출마를 계획한 것은 사실이다. 수 년 전 정인석 대표의 등을 떠밀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었다. 하지만 약 2주 전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대표직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운영위원 카톡을 통해 출마 포기 소식을 미리 알렸지만 정성균 후보에게 전달이 늦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정성일 신임대표는 회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정성일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주에 운영하던 병원을 정리했다. 당분간 전의총 사무국에 출근하려 한다. 전의총 일에 매진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이민설에 대해 정성일 대표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이민까지는 너무 나갔다. 이민이 되지도 않는다. 1년 정도 해외에서 안식년 갖지 않나? 그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정성일 대표는 “기러기 생활을 오래해서 가족과 생활하고 싶다. 다만 무엇도 정해진 것은 없다. 겨울에도 들어온다. (해외 거주는) 전의총 일과 크게 관련있지 않다. 다른 대표들보다 기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회원들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A 회원은 “망명정부 수립인가. 해외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면 전의총이 돌아가겠나?”라고 비판했다.

B 회원도 “해외로 떠날 사람을 회장으로 뽑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제 전의총을 포기해야 하나.”라고 아쉬워했다.

C 회원은 “정성일 대표는 노환규 전 회장을 가장 비난한 인물이다.”라며, “그가 대표가 되면 절대 화합과 단결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정성균 후보가 사퇴한 것에 대해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회원은 정성균 후보가 여러 회원의 추천을 받이 입후보 해놓고 사퇴해 아쉽다고 말했고, 다른 회원도 정성균 후보가 공동 대표직을 맡은 후 정성일 후보가 외국으로 떠날 경우 단독 대표직을 수행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사퇴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성일 대표, 행동력 버리고 온라인 단체 지향?
정성일 대표는 8월 일본 이민설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2월에도 들어온다고 표현한 대목을 볼 때, 이민은 아니더라도 8월 출국설에 힘이 실린다.

대표가 해외에 거주하게 되면 전의총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행동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성일 대표가 기존 대표들보다 기동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일 대표는 대표의 외국 거주가 전의총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은 정성일 대표가 전의총 운영계획을 밝히면서 해소됐다.

정 대표는 “전의총은 혼자 살 수 없는 단체이며 온라인 단체다. 반드시 매체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전의총은 전의총 브랜드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이제 갈아타야 될 때가 왔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페이스북에서는 이미 발판을 마련했다. 의원협회에서 준비중인 SNS에 따라 전의총의 운명이 판가름 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정 대표는 “미국에는 의사 50만명이 가입해 있는 사이트가 있다. 미국의사 수가 118만명인데 두 명 중 한명은 가입해 있는 셈이다. 미국의사협회 가입자가 22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이다.”라고 소개했다.

정 대표가 예를 든 의사 커뮤니티는 닥시미티(https://www.doximity.com)이다.

의사들은 스트레스가 큰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동료 의사들과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닥시미티는 의사들만이 실명으로 가입한 비공개 SNS이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전의총은 닥플이라는 비공개 의사사이트에서 자발적으로 탄행한 후 각 지역 지부를 추가하며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확대했다는 사실이다.

정 대표는 “약 2~3년 전부터 SNS가 시대적인 흐름의 주도권을 잡는 양상이다. 전의총도 그쪽으로 가야한다.”라며, “전의총은 기존의 의사단체가 아니라 임의단체이고, 온라인 단체다. 결국은 거기서 승부가 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고려하면 정 대표의 주장은 과거로의 회귀인 셈이다. 놀라운 행동력을 보이며 성장해온 전의총이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소통과 홍보를 내세웠다.

하나 더 주목할 점은 정 대표를 선출한 회원총회에서 헌법소원 성금 9,300여만원을 전의총 운영비(사업비ㆍ법률지원비)로 전용하는 것으로 의결했다는 점이다. 전용방법은 집행부에 일임했다.

이는 전의총 회비납부율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회원총회 참석자는 줄고 있고, 회비 납부자도 감소하는데, 대표는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전의총 회원들이 답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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