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는 영상의학과 의사의 예술작품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꽃, 해골, 강아지 등 갖가지 대상을 엑스레이로 찍어 그 내면까지 표현하는 일명 ‘엑스레이 아트’ 작품들이다. 엑스레이 아트의 선두주자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무미건조했던 삶이 예술을 통해 즐거워졌다며, 후배의사들에게도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태섭 교수를 만나 엑스레이 아트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들에 대해 들어봤다.

최미라 기자: 안녕하세요.

정태섭 교수: 반갑습니다.

최미라 기자: 먼저 엑스레이 아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정태섭 교수: 말 그대로 엑스레이로 사람 뿐 아니라 동물, 식물, 사물 등을 찍는 겁니다. 과학과 의학, 미술을 융합시킨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죠.

최미라 기자: 교수님이 엑스레이 아트의 창시자 격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정태섭 교수: 사실 뢴트겐도 1895년 11월 8일 엑스레이를 발견할 당시에 꽃도 찍고 했습니다. 다만 그걸 아트로 만드는 건 쉽지가 않았겠죠. 제가 엑스레이 아트를 창시했다기보다는 리뉴얼한 개념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외국에도 저와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은 사진작가 출신이고 저는 의사 출신이라 하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죠.

최미라 기자: 엑스레이 아트가 일반 사진이나 미술작품과 차별화되는 장점은 뭔가요?

정태섭 교수: 일반 사진을 통해서는 외형밖에 볼 수 없지만, 엑스레이 사진은 물체 내부의 아름다움까지 볼 수 있죠. 건물도 외형이 아름다우면 골조가 아름답고 잘 짜져있는 것처럼 어떤 대상의 내면까지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아요.

최미라 기자: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교수님의 엑스레이 아트 작품이 소품으로 등장해 화제가 됐어요. 그 이후 관심이 더 많아졌나요?

정태섭 교수: 여주인공의 극중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제 작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나봐요. 제작진이 지난해 8월쯤 찾아와서 요청하더라구요. 드라마에 나온 후 제가 유명해졌다기보다는 ‘태양의 후예’ 자체가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그 중 하나로 그냥 섞여들어간 것 같아요.

최미라 기자: 엑스레이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정태섭 교수: 초ㆍ중ㆍ고 시절에는 미술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의대 다닐때는 시간이 없어서 별로 못 했어요. 의대 졸업 후 미국에 교환교수로 다녀오다 보니 생활이 굉장히 드라이해지고 사람이 피폐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가족들도 외로워 했구요. 그 때 예술이라는 존재가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원래 아마추어 스타일로 엑스레이 아트를 하고 있었는데, 2006년 방송에서 우연히 작품이 소개됐고 이후에 주목을 받게 됐죠.

최미가 기자: 엑스레이로 손과 꽃, 고양이, 강아지, 휴대폰 등 다양한 사물을 찍는데요, 그중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소재는 꽃인것 같아요. 이유는요?

정태섭 교수: 꽃이 제일 아름답고 우리가 궁금해하는 내부 구조도 예쁘기 때문이에요. 일부러 월요일마다 양재 꽃시장을 찾아 꽃을 사오죠. 또 사람은 아무래도 찍다보면 방사선 노출이 걱정되기도 하고, 사이즈도 커서 작은 걸 찾다보니 꽃이 제일 알맞더라구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풍경 사진은 엑스레이로는 표현이 불가능하구요.

최미라 기자: 영감을 얻는 예술가나 존경하는 분이 있나요?

정태섭 교수: 미술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저를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타일로 키우려고 노력하셨어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죠. 일각에서는 한 우물을 깊게 파라는 식으로 하라는 식으로 씨줄 교육을 주장하지만, 저는 여러 분야를 골고루 관심을 가지라는 날줄교육을 받았어요. 그 중에 관심을 갖게 되는 알맞은 일을 하면 된다는 거죠.

최미라 기자: 초ㆍ중ㆍ고 교과서에 엑스레이 아트 작품이 등재되기도 했죠?

정태섭 교수: 맞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 예로 미술교과서, 과학교과서 10종에 수록된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저작권료는 매우 적지만, 기분은 좋더라구요. 생존 작가 중 이 정도의 규모로 교과서에 소개되는 예가 거의 없다고 하고, 더구나 의사로서 소개된 것은 더욱 영광이잖아요.

최미라 기자: 엑스레이 아트는 과학과 예술 뿐 아니라 의학과의 조화라는 점에서도 요새 많이 강조하는 융복합의 좋은 예가 되겠어요.

정태섭 교수: 그렇죠. 제가 교육할 때도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자기 안에 어떤 새로운 재능이 숨어있을지 모르니 자꾸 보여보라 말이죠. 요새 의대생들은 교수가 커리큘럼을 다 제공해주기 때문에 너무 편하게 주는것만 공부하는 버릇이 있고, 창의적으로 공부를 안해요. 그걸 바꿔보라고 자꾸 얘기합니다. 전국 의대를 다니면서 강의도 많이 하고 있고요.

최미라 기자: 검색엔진에서 교수님을 찾아보면 ‘대한민국의 영상의학과 전문의 겸 과학평론가이자 TV 진행자이며 저술가 겸 엑스레이 미술가 및 사회기관단체인’이라고 소개돼 있어요. 정말 다양한 이력인데요. 지폐에 장영실 사진 넣기 운동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태섭 교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MBC ‘즐거운 문화읽기’라는 프로그램에서 패널을 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어린이 과학프로그램도 진행했죠. 또, 학창시절부터 화폐수집을 했는데, 의대에 들어간 이후 외국에 나가보니 지폐에 과학자 얼굴이 많이 들어가있더라구요. 유럽의 지폐 중 24%에 과학자 얼굴이 들어간다는데, 한국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서 무슨 과학선진국이 되겠다고 합니까. 5만원권이 발행될 때 장영실 사진을 넣자고 주장했고 국회까지 가서 발언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나중에 2만원권이나 10만원권이 나오면 또 같은 운동을 할 생각입니다.

최미라 기자: 의사라는 직업 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후배의사들에게 조언 좀 해주세요.

정태섭 교수: 어느 전문영역이든지 50살 정도 되면 생활이 무미건조해지는 것 같아요.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나름 전문가 영역에는 올라갔는데, 새로 습득할건 없고 일이 편해지니 드라이해지는 거죠. 그때 삶을 윤택하게 만들 소양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문화예술이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의사들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분명히 조금씩 시간은 나거든요. 그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좀 유별나면 어떻습니까. 사회에 피해만 안 준다면 즐겁고 다양하게 사는게 좋지 않나요.

최미라 기자: 엑스레이 뿐 아니라 MRI나 초음파 등 다른 의료장비를 활용한 작품도 시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태섭 교수: 시도는 계속 하고 있습니다만, 엑스레이는 아날로그 영상이 기반인 것에 반해 MRI와 CT, 초음파는 기본이 디지털이라 앞으로 좀 더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최미라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요?

정태섭 교수: 올해 11월에 부산국립과학관에서 300평 규모로 단독전시회를 엽니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곳인데, 과학을 배경으로 하는 예술을 컨셉으로 진행됩니다. 제가 5월부터 10월까지 안식년이라 여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될 것 같네요. 세 달 넘어 전시회를 할 건데 상당히 의미가 커요. 뢴트겐이 엑스레이를 발견한 것도 11월이고, 과학관이 위치한 부산 기장면은 과학자 장영실의 고향이기도 하죠.

최미라 기자: 성공적인 전시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정태섭 교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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