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이 지난 18일 임원 인선을 발표했다. 상근부회장에 김록권 전 의무사령관을 내정하고, 의료정책연구소장에 이용민 전 의협 정책이사를, 기획이사에 김봉천 대전시의사회 기획수석이사를 임명했다. 이번 인선은 시도의사회장단의 인적 쇄신 요구를 받아들여 진행했다. 추 회장은 회무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인사를 상근부회장으로 기용하고, 개원의를 의료정책연구소장에 앉히는 등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무엇을 위한 인선인가?

“김록권 전 의무사령관을 상근부회장으로 발탁한 배경은 무엇인가?”

“3성 장군 출신이다. 행정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대국회 업무에 많이 관여했다. (김록권 사령관 발탁으로) 상근부회장의 역할에 변화가 있나?”

“임원 보강이 곧 있을 예정이다.”

“김록권 사령관은 오랫동안 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답변해 달라.”

“노코멘트하겠다.”

추무진 회장은 김록권 상근부회장 내정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 같이 답했다.

앞서 추 회장은 이번 인선에 대해 “인사가 만사인 만큼 인선에 신중을 기하겠다.”라며, “집행부 임원 한 명 한 명이 오로지 의협과 회원만을 위해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도록 재정비해 더 힘차게 도약하겠다.”라고 밝혔다.

인사는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는 일을 말하고, 만사는 만 가지의 일, 즉 모든 일을 가리킨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사람을 뽑아서 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인사가 만사라며 중요성을 강조한 추 회장은 불과 수 분 뒤, 자신이 결정한 인사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임원 보강이 더 있을 예정이다. 답변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이번 인사가 쇄신 요구를 받아들여 진행한 만큼, 추 회장은 회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쇄신 요구에 부합한 인사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추 회장은 불친절했다.

그가 신중을 기해 기용한 김록권 내정자의 프로필은 1980년 가톨릭의대 졸업으로 시작해, 의무사령관 취임, 소장 진급, 중장 진급, 의무병과 출신 대한민국 최초 3성 장군, 의무사령관 예편으로 끝난다.

그가 상근부회장 역할을 소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력사항은 전무하다. 게다가 2007년 예편 후 10여년 가까이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본지 확인 결과, 그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헤리티지너싱홈이라는 노인요양원의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경력사항을 보면 2006년 병원협회 김철수 집행부에서 홍보섭외이사로 활동했다.

2009년 4월에는 제36대 의협 경만호 집행부 출범 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준비위원회는 집행부가 바뀌어도 회무에 차질이 없도록 재정회계 및 회무의 인수인계를 비롯해, 부서별 업무 파악 및 집행부 인선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위원장은 당선자와 신뢰가 두터운 인물이 맡는다.

김록권 내정자는 가톨릭의대 21회 졸업생으로 19회 졸업생인 경만호 회장의 2년 후배다.

김 내정자는 약 한 달 동안 출범 준비위원장을 맡은 뒤, 곧바로 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2010년, 2012년, 2013년, 2014년 등 모두 다섯 차례 의료광고심의위원장을 역임했다.

김 내정자는 의사 단체에서 행정업무를 총괄한 이력이 없다. 추 회장은 군에서 요직을 거쳤다는 이유로 행정에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회원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이어, 의료정책연구소장 인선도 납득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용민 연구소장은 미소퀸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개원의로, 2000년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상근운영위원과 2012년 37대 의협 집행부에서 정책이사를 역임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정부 주도의 소극적 의료정책 환경에서 의료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능동적인 대안제시와 생산적 정책 형성을 위해 2002년 7월 6일 개소했다.

국내 보건의료정책의 장단기 발전 과제 및 현안 과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해 보건의료를 선도하는 정책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이를 통해 의료계의 발전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증진 기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개소 당시 지제근 초대 소장을 비롯해, 김건상 소장, 정연태 소장, 박은철 소장, 박윤형 소장, 최재욱 소장 등 현직 대학교수가 이끌어 왔다.

이용민 소장은 연구소 개소 14년 만에 기용된 첫 개원의 소장이다.

추무진 회장은 첫 개원의 소장 기용에 대해 “연구소가 회원 입장에서 바라보길 원했다.”라며, “회원의 뜻에 맞는 정책 연구를 반영하고, 선제적으로 현안에 대한 안을 만들기 위해 개원의 중에서 기용하는 게 어떻겠나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소는 개원의 회원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내 보건의료정책의 장ㆍ단기 발전 과제 및 현안 과제를 연구해 궁극적으로 국민건강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서 설립됐다.

개소 후 14년 동안 대학 교수를 기용한 것은 그들의 보건의료정책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집행부 인선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개원의를 연구소장에 임명한 것이 첫 사례냐는 질문을 받자, 추무진 회장과 김주현 대변인은 “기존에 개원의 연구소장이 임명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동안 연구소장은 모두 현직 교수가 맡았다. 이는 개원의 연구소장을 기용하는 의미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용민 소장이 개원의사인 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연구소장직에 적합한 인물인지 여부에 의문부호가 찍힌다.

이용민 소장은 지난 2015년 의협회장선거에 출마해 “회장에 당선되면 유능한 부회장과 이사들을 임명해 주요 회무를 맡기고 투쟁에 매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용민 소장은 회장선거 기간 동안 “3년 내내 투쟁위원장 역할을 맡아 한판 뒤엎기를 하겠다. 감옥에 갈 준비가 돼 있다. 정부를 무릎 꿇려야 한다.”라며 자신이 투사임을 강조했다.

의협 회무의 최종 책임자인 회장이 되더라도 타 임원에게 업무를 맡기고 투쟁준비에만 몰두하겠다던 그가 현안 과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인 보건의료정책을 제시하도록 연구소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김봉천 기획이사를 기용한 배경 설명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추무진 회장은 김봉천 기획이사에 대해 “대관업무에 있어서 대전이라는 지역적인 여건을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추무진 회장은 김봉천 기획이사에 대해 1987년 전북의대를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로, 대전시의사회 의무이사를 거쳐, 현재 기획수석이사를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추 회장이 소개할 때 언급하지 않았지만, 김봉천 기획이사는 지난 2월 13일 의협회관에서 열린 ‘원격의료 및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향후 투쟁방안 관련 범의료계 토론회’에서 맹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토론회는 비대위와 집행부가 일반 회원들의 의견을 듣고, 의료계가 다시 뭉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마련했다.

하지만 토론회가 시작할 때부터 추무진 회장의 회무를 지적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회원들이 일방적으로 추 회장의 회무를 질타하며 사퇴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이 계속되던 중, 한 지역의사회 임원의 호소력 있는 발언이 토론회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 지역의사회 임원은 “이 토론회는 개인의 진퇴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과거 파업을 해서 의약분업이 막아진 것 같지 않다. 그냥 우리가 화풀이 한 것 아닌가. 또 파업하면 원격의료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를 막을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어, “지금처럼 자중지란이 일어난 상태에서는 막을수 없다. 우리가 파업을 해서 회원을 분열시키고, 갈등초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의협은 회원의 의견을 모으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토론회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오히려 방향성이 없어진다.”라며 추 회장을 몰아붙이던 인사들을 질타했다.

이 발언을 한 임원이 김봉천 기획이사다. 그는 회원들이 보건의료기요틴 정책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의료일원화를 독불장군식으로 추진했다며 추무진 회장을 성토할 때 옹호발언을 한 것이다.

김봉천 기획이사가 두 달 전부터 임원 자리를 약속받고 추 회장을 옹호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당시 수세에 몰렸던 추 회장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준 김봉천 기획이사를 눈여겨 봤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로부터 집행부 쇄신 요구를 받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추진한 임원 개편이다.

추 회장은 자신이 단행한 인사에 대해 회원이 납득하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날 인선에 대해 “3성 장군을 지내 행정 능력이 있을 것이다.”라거나, “회원의 뜻에 맞는 정책 연구를 개발하기 위해 개원의를 기용했다.”라거나, “대관업무를 하기에 가까워서 기용했다.”라는 단답식 답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거다.

게다가 이날 인선 발표에는 당사자들이 모두 불참했다. 지난 3월 2일 임명된 김해영 법제이사와 조경환 홍보이사가 같은 날 오후 기자회견에 참석해 포부를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추 회장은 인선 발표 후 “의사들의 면허권을 위협하는 불합리한 법안들이 현재 상정 또는 준비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처가 급박한 상황이다.”라며, “이를 막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추 회장이 약 2년간 대국회 업무를 수행한 강청희 상근부회장을 해임한 18일, 여ㆍ야 3당은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회원들은 공소시효법과 의료인 폭행방지법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김록권 상근부회장 내정자의 대국회 업무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추 회장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추무진 회장은 오는 24일 열리는 정기대의원총회 이후 후속 인사도 예고했다. 하지만 추무진 회장이 상근부회장과 의료정책연구소장 임명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후속인사도 의문부호가 찍힐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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