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병원 비뇨기과 장성구 교수는 시와 수필을 쓰는 의사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 2014년 8월에는 문학시대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늦깎이 등단을 했으며, 같은해 2월에는 장 교수가 쓴 시와 고 김동진 작곡가의 가곡이 만난 앨범 ‘초심’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고교 시절부터 시작된 45년간의 창작에 대한 열정이 담긴 첫 시집을 내 눈길을 끌었다. 창간 6주년을 맞이한 헬스포커스가 장 교수를 만나 의료전문지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해봤다.

최미라 기자: 안녕하세요, 교수님.

장성구 교수: 네, 반갑습니다.

최미라 기자: 시와 수필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됐나요?

장성구 교수: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가장 인기 있는 특별활동반은 문학반, 음악반, 미술반 등이었어요. 문학반 특별활동을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와 수필을 쓰기 시작했죠. 대학교 들어가서는 한참 소설을 썼고, 일간지 신춘문예도 응모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죠.

최미라 기자: 시간이 많이 없었을 것 같은데, 의과대학 재학 시절에도 작품활동을 많이 했나요?

장성구 교수: 예과 때는 소설을 썼지만, 본과 때는 바빠서 글을 많이 못 썼어요. 그런데 이번에 시집을 출간하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을 뒤져봤더니, 곳곳에 시 형식으로 쓴 글들이 있더라구요. 일기장을 보면 글을 썼던 그 날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요. 시도 똑같습니다. 당시 시를 썼을 때의 기억으로 달려가며 감정이 이입되는데 그게 참 재밌더라구요.

최미라 기자: 문학소년이 의과대학에 진학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장성구 교수: 사실 사학과나 국문과를 가고 싶었고 중ㆍ고등학교 공부도 그런 쪽으로 했는데, 당시 도움을 주던 친형님이 의대가 아니면 등록금을 안 준다고 하더라구요. 당시 경희대 의대가 최초로 문과 출신도 입학할 수 있게 바뀌어서 들어갈 수 있었죠. 요즘이야 대학 입학시 문ㆍ이과의 구분이 없고, 의전원은 오히려 미대나 음대, 법대 출신 등을 더 선호하지만 당시만 해도 경희의대가 매우 앞서 나간 것이었어요. 사람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인격적 다양성을 추구한 것이죠.

장성구 교수가 발표한 가곡집과 시집
장성구 교수가 발표한 가곡집과 시집

최미라 기자: 2014년 2월에 교수님의 자작시에 고 김동진 선생의 가곡을 붙인 앨범 ‘초심’을 발표해 화제가 됐어요. 김동진 선생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요?

장성구 교수: 김동진 선생은 경희대 음대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분이에요. 그 분을 포함한 퇴임교수 모임에서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배뇨기능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저에게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나봐요. 2000년에 치료를 위해 처음 인연을 맺게 됐고, 이후 김 선생이 제가 시와 수필을 쓴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나봐요. 저에게 먼저 시를 써 주면 곡을 붙여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감히 제 시가 노래가 될 수 있겠느냐며 드리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역정을 내시는 바람에 시를 드렸고, 5년 동안 12편의 가곡을 작곡해 주셨어요.

최미라 기자: 그런데 김동진 선생이 2009년 작고하시면서 2014년에 나온 앨범은 못 보셨겠네요.

장성구 교수: 김동진 선생에게 곡을 받고 앨범을 발표하려고 했는데, 워낙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고 편곡이나 오케스트라 비용 등 비용도 많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미적거리는 사이 김 선생이 돌아가셨고, 이후 TV를 보는데 그 해가 김동진 선생 탄생 100주년이라고 나왔어요. 그걸 보고 꼭 앨범을 발매해야 겠다는 결심이 섰죠.

최미라 기자: 비용이 많이 들어서 어려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발매가 이뤄졌나요?

장성구 교수: 경희대 음대 학장으로 퇴임한 교수와 발표형식을 상의했어요. 그 분 말로는 개인이 많은 돈을 들여 정식으로 발매하기는 힘드니, 피아노 반주로 성악가를 초빙해 CD를 내라고 하더라구요. 앨범에 참여해준 성악가분들에게 감사해요. 소위 음악계에서 톱 10에 드는 분들인데, 봉사하는 차원으로 불러줬어요. 그분들도 김동진 선생의 유작을 부른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것 같아요. 다만 김 선생 생전에 발매된 음반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최미라 기자: 2014년 8월에는 문학시대의 신인문학상도 수상하셨어요. 늦은 나이에 등단하게된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장성구 교수: 사실 등단이 자격증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나 수필을 써 왔는데, 수필가 한 분이 등단이라는 과정도 경험해 보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솔직히 겁도 좀 났죠. 입학시험 보고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자존심도 상하지 않을까 했구요. 게다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순수문학지가 많지 않아요. 그 중 제일 오래된 순수문학지인 문학시대에서 등단을 했죠. 그 해 4월쯤 신청을 하고 잊고 있었는데 8월에 등단 통지서가 등기우편으로 도착했어요. 그 동안 등단에 신경을 안쓴다고 생각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막상 등단이 되니 기분 참 좋더라구요. 뿌듯했어요.

최미라 기자: 지난해 11월에는 첫 시집 ‘여강의 꿈’도 발표하셨죠?

장성구 교수: 네. 56편의 시와 가곡집 ‘초심’을 통해 발표한 시 12편까지 총 68편을 수록했어요. 남은 시가 50여 편 정도 있는데, 좀 보강해서 2018년 퇴임할 때 시집을 한 권 더 내고 싶어요. 올해에는 수필집도 낼 계획이구요.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최미라 기자: 저희가 이번에 창간 6주년을 맞이하는데요, 의료전문 언론의 역할에 대해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장성구 교수: 의료전문지는 역시 전문성이 생명인 것 같아요. 의료계를 대변하는 역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을 깊숙이 다뤄야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일간지들이 인용할 수 있는 정도가 돼야죠. 일간지에서는 다룰 수 없는 부분인 질병, 의료계, 의학계 내용들을 의료전문지가 파고 들어야 해요. 항상 일간지가 인용할 수 있는 전문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 저의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최미라 기자: 후배 의사들과 후학들에게도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성구 교수: 우리나라 의료환경이 정말 열악합니다. 정도를 걷기 힘든 의료보험 구조와 수가죠.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제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개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도를 꼭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도가 문제이면 제도를 고쳐야지, 잘못된 제도에 영합해 왜곡된 쪽을 선택하면 안 됩니다. 그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에요. 환자를 보는데는 ‘정도’라는 길 하나 뿐이에요. 열악한 상황이라도 그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최미라 기자: 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장성구 교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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