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전문가들은 국가방역체계 개편과, 병원내 감염 문제, 간병 및 병문안 문화 등 다양한 문제들을 지적했다. 특히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은 국회 메르스특위와 수 차례의 관련 토론회에서 위기관리 소통전문가 부재를 꾸준히 지적해 와 눈길을 끌었다. 최재욱 소장을 만나 메르스와 의료정책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미라 기자: 안녕하세요, 소장님.
최재욱 소장: 반갑습니다.
최미라 기자: 메르스 당시 잦은 언론 인터뷰 및 국회 출석 등으로 정신 없으셨을텐데요, 아직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은 안됐지만 돌아보면 어땠나요?
최재욱 소장: 워낙 그쪽 분야가 공백이었으니 이런 일이 벌이질 줄 알긴 알았죠. 하지만 아는 것과 막상 겪는 것은 다르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걸 보고 참담했어요. 눈물도 많아졌죠. 국회에서 메르스 피해자들을 이야기하며 울기도 했잖아요.
최미라 기자: 참담한 심경이었군요.
최재욱 소장: 이미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터질게 터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망자가 나온 걸 보니 참담하더라구요. 20년 전 노동부가 산업안전을 하며 겪었던 구태의연을 보건복지부가 반복하고, 환경부 문제를 복지부가 반복하고, 국민안전처가 또 반복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어요.
최미라 기자: 정부가 9월 1일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이후에도 많은 문제가 제기됐는데요, 개편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재욱 소장: 복지부 담당자들이 직무에서 정한 역할과 책임의 범위 내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걸 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전체 공무원 중 한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더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줘야 하고, 수가 문제는 건정심을 통과해야 하니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국가 공무원 입장에서 바람직한지 의견을 밝힐 수는 있잖아요? 공식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건정심, 인사혁신처 등 다른 부처와 협조관계를 만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국민의 입장에서 소회를 밝히는 등의 부분에서는 좀 아쉬웠어요.
최미라 기자: 특히 의료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던 보건부 독립이나 질병관리본부 승격 등은 이뤄지지 않았죠?
최재욱 소장: 보건부 독립이나 질병관리본부 독립 등은 정책적, 정치적으로 결정될 문제인데 복지부가 명확하게 합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 부분이 아쉬워요. 전체 집단지성 측면에서 보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최미라 기자: 많이들 아쉬워 하더라고요.
최재욱 소장: 당시 의사협회와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등이 모인 민관협력체가 이 같은 주장을 했었잖아요. 그렇게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데, 그 좋은 기회를 왜 놓쳤는지 모르겠어요.
최미라 기자: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도 복지부와 야당의 의견 대립으로 국회에 계류중인 상황이죠.
최재욱 소장: 예산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관리주체를 두고 이견이 있는 것 같아요. 감염병 전문병원은 평소에는 일반병원으로 전환해 쓰는 방법과, 환자가 없으면 아예 비워놓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경제성과 효과성을 위해 우리도 유사시 전환하는 방식으로 가자고 제안했어요. 다만 감염병 발생시 기존 환자들을 바로 내보내려면 공공병원 형태가 돼야 하죠. 그러니 전국 시ㆍ도 의료원 중 몇 개를 권역별로 지정해서 시설과 장비를 갖춰 평상시에는 일반환자를 보다가 필요시 전환하자고 주장했어요.
최미라 기자: 인력은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최재욱 소장: 인력 역시 전국 감염내과 전문의가 200여 명에 불과하니 감염병 전문병원에 채용하는 대신, 각 시ㆍ도에 있는 대학병원과 연계해 유사시에 전문가들이 와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제안했죠. 또, 중앙에는 감염병관리 전문연구병원을 만들어 연구도 계속 하구요.
최미라 기자: 하지만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문제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네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내년도 역학조사관 확충 예산 미반영 문제를 지적하며 ‘크로스 커팅 이슈(Cross-cutting Issue)’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재욱 소장: 환경안전, 노동안전, 사회안전, 선박안전 등, ‘안전’이 붙으면 다 같아요. 안전 문제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관통하므로 이런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고려되고 각자의 전문성이 필요한 이슈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 다른 부서도 다 걸치는 수평적인 문제는 복지부도, 국민안전처도 해결하지 못해요. 정부조직법에 걸리기 때문이에요.
최미라 기자: 그렇죠.
최재욱 소장: 일반공무원들은 법에서 정한 업무범위와 평가기제 등에 따라 일하는 것이고, 너무 범위를 벗어나면 감사시에 문제가 돼요. 월권하고, 남용하지 말라는 뜻이죠. 그런데 안전 관련 부서는 사전예방대응원칙에 의거해 일을 해야 해요. WHO와 국제기구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강조한 것인데, 안전 쪽은 정해진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죠. 예측이 불허하고 신종사고도 계속 나오니 업무범위에서만 정해놓은 걸로는 감당이 안되니 원칙만 정해놓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이 사전예방대응원칙에 맞는 거에요. 하지만 기존 업무규칙으로 보면 다 월권으로 보일 수 있는 거죠.
최미라 기자: 안전 관련 부서들이 사전예방대응원칙에 맞게 일하려면 환경과 체계가 바뀌어야 겠네요?
최재욱 소장: 그렇죠. 근무평가, 감사평가 기준을 바꿔 안전 관련 부서 공무원들은 기존 공무원과 다르게 평가하는 거죠. 열심히 해도 표가 안 나니 안전 관련 부서는 패배의식이 많아요. 열심히 해도 표는 안 나고, 감사에서는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어? 돈 안써도 되는거 아냐?’ 하며 유착관계나 월권 등을 의심할 수 있으니까요. 평소에는 일을 해도 티도 안 나다가, 사고가 나면 바로 박살나는 거죠. 그래서 사고가 나면 덮기 급급했던 것이 지난 몇 십년간 우리나라 모든 안전 분야의 관행이었어요.
최미라 기자: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죠.
최재욱 소장: 기업은 그나마 좀 바뀌었지만, 공공조직은 진짜 안 바뀌네요. 인사혁신처가 나서서 사전예방대응원칙에 의한 인사고과 시스템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안전 관련 공무원들은 업무평가, 근무평가 기준, 역할 규정 등을 사전예방대응원칙에 맞춰 별도로 만들어줘야 소신을 갖고 일하지 않겠어요?
최미라 기자: 메르스 사태 당시 위기관리 소통전문가 역할도 자주 강조하셨죠. 우리나라는 그 분야가 많이 부족한 편인가요?
최재욱 소장: 광우병, 천안함, 구제역 파동 등 많은 사건을 겪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건의 과학적 팩트를 다루는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이 어긋나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져 경제적, 정치적 손실이 생기고 국가 분열까지 초래됐잖아요.
최미라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최재욱 소장: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지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언론이 가장 커요. 일단 뉴스를 생산하고 브리핑하는 정부가 역할을 잘해야 의혹이 생기지 않을텐데, 내부에 홍보 전문가나 미디어 전문가 등 소통전문가가 없으니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선진국은 메르스 같은 이슈가 생기면 관련부처 내 상시 커뮤니케이션팀이 분석해 외부 배포 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용어를 사용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어떤 프레임을 사용해 어떤 임팩트를 줄지 등을 모두 분석해 소통전문가가 발표를 해요. 전문가는 뒤에 배석만 하고, 보충 설명을 하는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감염관리 전문가인 교수 한 사람 데려다 놓고 모든 걸 의지했죠. 그 분이 처음에 2차 감염자가 없을 거라고 말한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학자로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학회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되지만, 사회적으로 발표될 때는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 표현방법이 달랐어야 했어요.
최미라 기자: 그렇군요.
최재욱 소장: 그나마 다행인 것은 WHO가 메르스 관련으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위기관리 소통 부족을 계속 지적했고, 방역체계 개편안에 그런 부분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거에요. 얼마나 잘 지켜질지는 더 두고봐야겠죠.
최미라 기자: 의료정책연구소 얘기를 해 볼게요. 2012년 5월 소장으로 임명된 이후 3년 넘게 여러 연구들을 진행했는데요, 최근 발표한 원격의료 정책현황 분석 연구 보고서가 눈길을 끕니다.
최재욱 소장: 지금 프레임이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를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처럼 짜여졌는데, 전혀 아니에요. 우리는 원격의료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원격의료를 졸속으로 시행할 경우 예측 가능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이고, 해결방안을 고려해 같이 가자고 하는 겁니다. 그런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한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지, 원격의료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시대적인 흐름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술의 발전과 의료를 접목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에요. 의사들이 시대발전에 역행하고 과거에 안주해서 환자나 보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첨단기술을 응용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환자를 잘 보고싶어요. 먼저 그 점은 명확하게 프레임이 잡혀야 합니다.
최미라 기자: 그럼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정확한 이유는 뭔가요?
최재욱 소장: 이유는 딱 하나에요. 지금 원격의료 관련 이해관계자로 의료제공자인 의사와 정부, 환자만 거론되는데 사실 산업계도 중요한 관계자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논쟁 과정에서는 산업계가 하나도 안 보이는게 이상하다고 분석해야 해요.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진단과 처방을 받고 치료, 시술까지 받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원격의료와 관련된 기반을 통해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건기식 회사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회사도 돈을 벌게 될 것이고, 통신업체는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행복한 계획을 세우고 있겠죠. 하지만 양보할 게 있고 못할 게 있어요. 건강문제 만큼은 양보하면 안 되죠. 환자 안전과 임상적 유효성을 얘기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사람은 의사 뿐입니다. 의사들이 의견을 일치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할 부분은 환자 안정성과 임상적 유효성이에요. 이걸 훼손하고 타협한다면 역사에 두고두고 죄를 짓는 겁니다.
최미라 기자: 광우병 파동이나, 최근 가공육 논란까지 의사협회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한 것 같은데 제대로 해 왔다고 평가하나요?
최재욱 소장: 솔직히 그 동안 열심히 해 왔다고 해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의사협회가 사회적으로 그런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입니다. 가공육 논란 간담회도 그 산하 위원회가 한 거죠. 과거 집행부에도 ‘국민건강지식향상위원회’가 있었는데, 2~3년 정도 활동하다가 조직이 없어졌어요. 노환규 집행부에서 제가 작게 하지 말고 크게 하자고 해서 다른 부서가 하던걸 연구소로 끌고 와서 ‘국민건강보호위원회’를 만들었죠. 지금도 모든 행정과 관리는 정책연구소 예산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재욱 소장: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