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건국대병원이 전문지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관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 호흡기질환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양정현 의료원장, 한설희 병원장, 유광하 호흡기알레르기내과장, 기현균 감염관리실장이 참석했다. 회견장에 미리 나와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고, 어깨는 처져 있었다. 이들의 굳은 얼굴은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움츠러들게 했을까? 첫 환자 발견 후 신속하게 대응했지만 돌아온 건 ‘건대 괴질’이라는 언론보도와 이로 인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었다고 한다.

유광하 과장은 첫 환자를 발견하고 이틀 만에 질병관리본부와 관할 보건소에 동물인플루엔자 의심환자로 신고했다고 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로부터 과거 어느 때보다 건대병원의 대처가 빨랐다는 말을 들었다는 게 유 과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 19일 첫환자가 발생했는데도 건대병원이 이를 일주일동안 숨겼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유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유 과장은 학생 한 명이 보건소에서 증상이 발견돼, 보건소 의사가 건국대병원에 보내도 되느냐고 문의전화를 했왔고, 이때 국가 지정병원에 보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한 것이 와전됐다며 억울해 했다.

양정현 의료원장도 메르스 사태가 기억나 서둘러 신고했고, 주위에서 굉장히 칭찬받을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양 의료원장은 신속하게 보고한 결과는 환자가 줄어들어 손해를 보는 병원이 된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예약을 취소하려는 사람에게 환자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안내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폐렴에 걸리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막말이었다고 한다.

기현균 실장도 신고를 재빨리 했지만 돌아온 것은 병원 경영 악화였다며, 앞으로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병원에 따르면, 폐질환 사태 전 23명이던 호흡기 입원환자는 3명으로 줄었고, 150여명이던 건강검진 예약자는 80명으로 감소했으며, 외래진료도 반토막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질환 의심환자 52명은 7개 의료기관에 분산 격리돼 있지만 건대병원에는 격리된 환자가 없다. 

양정현 의료원장은 이날 전문지 기자들을 향해 “하소연 할 곳이 없더라. 여러분들이 도와 달라.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송재훈 전 삼성서울병원장은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메르스 의심환자를 보건당국에 늦게 신고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신고를 해도 공무원들의 늑장대처가 메르스를 키웠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나와는데도 당국은 이을 외면하기에 급급했다.

게다가 건국대병원의 사례를 보자. 신고를 신속히 해도 손해를 본다면 신고를 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신종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부가 신종감염병 대처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도 시원찮을 판에 애꿎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에만 짐을 지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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