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이라는 말이 있다. 믿는대로 된다는 말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태도가 희망찬 미래를 열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목사로 통하는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이 펴낸 ‘긍정의 힘’ 시리즈가 수백만권이 팔릴 정도로 파급력이 큰 표현이기도 하다.

요즘 의사협회를 보고 있노라면 막연하게 ‘긍정의 힘’에 기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결국 다 잘될거야’라고 자기 주문을 외우듯이 말이다.

지난달 4일 청와대가 정진엽 서울의대 교수를 보건복지부장관에 내정했을 때 의사들은 정 내정자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가 보유한 원격의료 관련 특허와 의료기기상생포럼에 참여한 이력 등 말이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17년 만에 의사 출신 복지부장관 탄생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원격의료 추진용 인사라는 비판과 회원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정 내정자는 지난달 24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고 발언했고,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직역간 갈등 문제이므로 자율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 의사들의 바람인 보건부 독립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틀 뒤인 26일 정 내정자의 취임식이 예고되자 의사협회는 의사 출신으로 의료 현실에 대해 잘 알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첫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정 장관은 9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열린 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한의사의 X-ray 사용에 대한 질의를 받고 개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치매 진단에 대해 일반 한의사들의 참여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루 만에 의사협회가 내놓은 논평의 제목은 ‘정진엽 장관의의료전달체계 개편의지를 지지한다’였다. 물론 논평 말미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유감을 밝히긴 했지만 말이다.

의사협회의 긍정의 힘은 계속 이어진다.

지난 16일 김주현 대변인은 협회 내에 의정합의 이행추진단을 구성 및 운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 대변인은 복지부와의 교감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사전 협의가 없었지만 정 장관이 10일 국감에서 의정합의를 재개하겠다고 발언한 만큼 조만간 양측의 협의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또, 9월중으로 복지부장관과 면담이 예정돼 있어서 의정합의 이행 재개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의협뿐만 아니라 보건의료계 5개 단체가 함께하는 자리여서 의정합의와 관련한 요구를 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이 외에도, 11월 개최 여부를 논의하던 전국의사궐기대회도 효과와 예산 문제로 좌초됐다. 정진엽 장관의 취임으로 올 연말 규제기요틴 정책과 원격의료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인데도 의사협회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의사협회가 존재감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오래다.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긍정의 힘’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발빠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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