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을 꿈꾸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한 청년은 아내의 백혈병 진단을 계기로 환자들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 됐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연) 대표는 지난 2005년 백혈병환우회 간사직을 시작으로 10년째 환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환연은 일명 ‘종현이법’으로 불리는 환자안전법 제정에 기여했으며, ‘의료인폭행 가중처벌법’이 ‘진료실안전법’으로 수정 통과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환자 샤우팅카페,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 넥시아 검증위원회 구성 등을 진행 중이다.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환연 사무실에서 안기종 대표를 만나 환연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최미라 기자: 안녕하세요.

안기종 대표: 어서 오세요.

최미라 기자: 국회 상임위에서 환연의 의견이 대폭 반영돼 ‘의료인폭행 가중처벌법’이 ‘진료실안전법’으로 수정 의결됐어요. 그 동안 환자단체 및 시민단체가 ‘의사특권법’이자 과잉입법이며, 환자 권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해 오다가 수정의견을 제시한 이유는 뭔가요?

안기종 대표: 환연은 원래 진료실안전법을 주장해 왔지만, 당초 법안의 내용은 ‘의사특권법’에 가까워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의사 혼자 근무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흔들렸어요.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전화를 걸어와 ‘고등학생에게 멱살 당한적도 있다’며, 법안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호소하더라구요. 사실 병원급 의료기관은 보안요원이 다 배치돼 있어서 환자가 조금만 난동을 피워도 다 끌려나오지만, 의원급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환자들도 안전한 진료현장을 만들기 위한다는 법안의 목적에는 공감하니, 그 대상을 의사 뿐 아니라 진료현장에 있는 사람 모두로 확대해 통과하는 수정안을 제시한 거에요.

최미라 기자: 환연이 지난 3월 11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그러한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폭행ㆍ협박 없는 안전한 진료실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계획도 함께 발표했잖아요. 구체적으로 진전된 내용이 있나요?

안기종 대표: 최근에는 메르스 사태로 못했는데, 환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샤우팅 카페’에서 착안해 의료진을 칭찬하는 ‘프레이징 카페’도 진행할 생각입니다. 또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개선모델도 만들어놨어요. 병원만 협조해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3~6개월 동안 연구를 진행한 후 당뇨병, 백혈병 등 질환별로 어떻게 질문하고, 3분진료 안에도 환자와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높이는 방안 등을 고민하는 거죠.

최미라 기자: 그 동안 환연은 ‘샤우팅 카페’라는 행사를 통해 환자들의 억울한 사연과 이에 따른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들을 지적해 왔죠. 특히 첫 번째 샤우팅 카페에서 종현이 사건이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가시적인 성과를 소개해주세요.

안기종 대표: 2012년 6월 27일에 첫 샤우팅 카페가 열렸고, 여기서 종현이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그리고 2년 6개월만에 국회에서 환자안전법이 제정됐죠. 3회 행사에서는 스티브존슨증후군 환자가 ‘의약품부작용 피해구제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샤우팅했고, 20여 년간 표류된 법안도 만들어졌습니다. 또, 서울검찰청에 의료사고수사전담반도 신설됐구요. 젤코리를 복용하던 한 환자는 입원환자가 퇴원할 경우 경구용약제는 실손보험을 안 주겠다고 해서 지난해 샤우팅을 하고 1인시위와 소송까지 진행했고, 공정위에서 모두 지급해 주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최미라 기자: 환연은 종현이 사건을 계기로 환자안전법 제정에 많은 힘을 쏟았죠. 특히 ‘환자’라는 단어가 법안에 들어간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를 평가해 주세요.

안기종 대표: 찾아보니 고엽제환자와 관련한 특별법은 있는데, 환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반법 제정은 정말 처음이더라구요. 소비자기본법 같은 경우 큰 의미가 있는게 그 법을 근거로 관련 위원회 구성에 소비자단체가 항상 참여하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환자안전법이 만들어 졌으니 환자단체도 독립적으로 모든 논의기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법안에 아쉬운 점도 있나요?

안기종 대표: 아무래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항인 처벌규정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좀 아쉽죠. 환자안전기준 미준수나 교육 미이행 시 과태료 기준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의료계에 부담이 되는 부분은 다 빠졌어요. 또, 종합계획을 세우려면 실태조사도 해야 하는데 그 부분도 빠졌고, 자발적 보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증거능력 배제가 삭제된 부분도 아쉬워요. 하지만 나중에 다시 논의해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미라 기자: 지난 4월에는 소비자단체와 함께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만들어 피해신고를 접수 받아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안기종 대표: 환자 한 명이 이미 형사고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50명이 넘게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상다웃가 병원의 보복이 두려워 대응에 나서지 못하더라구요. 또, 재건수술을 해 주겠다는 말에 포기한 사람도 있었구요. 유령수술이 문제가 되니 요새는 성형외과에서 ‘협진’이라는 이름으로 법을 교묘히 피해간다고 합니다.

최미라 기자: 최근 약학정보원 환자정보 유출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어요. 환자단체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요?

안기종 대표: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특히 약정원의 가장 큰 문제는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고 있다는 거에요.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약사들 눈치만 보고 있어 당황스러워요. 소송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미라 기자: 지난해 11월에는 환연이 한방항암제 ‘넥시아’에 대해 직접 효과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고 발표했어요. 언제쯤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죠?

안기종 대표 :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당초 피해자를 모집해 문제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기 암환자 중에서 넥시아 복용 후 5년 이상 장기생존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환자단체 수준의 검증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최원철 교수가 소송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협조하지 않았고, 넥시아 복용 환우회도 아직 협조가 어려운 상황이라 기존의 완치 주장 케이스와 피해 주장 케이스를 종합해 보고서를 작성, 10월에 제출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보고서 결론이 넥시아 효과가 암 치료에 개연성이 있다고 나든, 효과가 없어 환자 피해가 심하다고 나든, 정부에 객관적인 의학적 검증에 나서라고 요구할 생각이에요. 지금 정부는 양한방 싸움이라는 이유로 관여하지 않고 있거든요. 그 사이에 서 환자들만 혼란스러워 하고 있죠.

최미라 기자: 당시 환연은 검증에 나서기로 한 이유에 대해 넥시아의 양방항암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징스’ 임상시험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고 시작된 지도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넥시아나 아징스의 임상적 효과에 대한 공식적 검증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라고 설명했죠?

안기종 대표: 맞습니다. 넥시아의 양방버전인 아징스 임상시험이 2013년 2월 시작됐고, 이미 종료된 걸로 아는데 결과가 안 나오고 있어요. 식약처에 종료날짜를 알려달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임상시험회사의 중요한 영업비밀이라며 알려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실패나 성공 여부가 아니라, 임상시험 종료날짜를 알려달라고 한 건데, 식약처의 그런 태도는 정말 이해가 안 가요. 환자에게 정말 중요한 정보인데 말이죠.

최미라 기자: 환자단체 활동을 하며 보람 있는 일과 힘든 일은 각각 뭔가요?

안기종 대표: 사연의 주인공인 환자들 뿐 아니라 활동가들에 대한 칭찬이나 격려가 있으면 좋습니다. 당사자들도 와서 고맙다며 밥 한끼 사주면 보람 있고, 우리가 목표한게 이뤄지면 매우 뿌듯하죠. 하지만 사실 힘든 일이 훨씬 많아요. 제일 힘든 건 환자단체나 샤우팅 카페를 소송에 이기기 위해, 의료인을 공격하기 위해,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죠. 처음에는 그런 목적으로 접근하고 감언이설로 속였다가 나중에 합의가 끝나면 저희 연락도 안 받아요. 그런 환자들 때문에 상처도 받고 행정력도 낭비돼 힘들죠. 그래도 종현이 어머님이나 예강이 어머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힘을 얻고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된답니다.

최미라 기자: 환연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환자안전법’이 통과되고 ‘진료실안전법’도 상임위에서 가결이 됐죠.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안기종 대표: 최근 샤우팅 카페에서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수기치료를 해준다는 한의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중생이 있어요. 이처럼 진료를 빙자한 성추행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제안할 겁니다. 의사가 진료행위라고 해도, 환자들은 성추행으로 느낄 수가 있으니 의사가 사전에 진료할 신체부위와 이유,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사전 고지하라는 거죠. 지금도 의료인 성범죄 시 자격정지를 하는 법안이 있지만, 이 같은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협과 한의협, 치협도 반대할 수 없을 겁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준비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최미라 기자: 환연이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요?

안기종 대표: 의사중심이 아닌 환자중심의 의료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함께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미라 기자: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안기종 대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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