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일괄 약가인하라는 태풍이 제약계를 강타한 후 안정세에 접어드나 싶더니, 복지부가 다시 한 번 칼을 빼 들었다.
복지부는 지난달 2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약제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상한금액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복지부는 총 1만 1,019품목에 대해 가중평균가를 생성했으며, 제약사의 열람 및 이의신청을 거쳐 2016년 1월 약가인하를 고시한다는 계획이다.
약가인하의 규모는 2,077억원이며, 상위사 기준으로 연평균 매출감소액은 1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 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사가 입을 손해는 매출감소뿐만이 아니다. 제약사들의 의약품 생산의지 저하, 글로벌 시장 진출 장벽, R&D 투자 위축 등의 제약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우선 복지부가 생성한 가중평균가가 원가보다 낮은 경우다.
투입되는 비용보다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더 적다면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해당 의약품의 생산을 중단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대다수 기업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는 것이 예견된 상황에서 굳이 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생산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약가가 낮으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 있어 장벽이 생긴다. 박리다매가 의약품 시장에서는 그리 통용되는 원리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항고혈압제인 A 의약품의 국내 약가가 700원이고, 글로벌 시장에 형성된 항고혈압제의 적정약가가 1,000원이라고 하자. 또 국내 B 제약사는 A 의약품을 수출하기 위해 현지 C사와 코-프로모션 계약을 체결하고자 한다고 가정하자.
B사의 입장에서는 A 의약품의 약가로 1,000원을 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700원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상 1,000원을 받기는 어렵다. 게다가 C사가 다른 항고혈압제와 비교해 마진이 적은 A 의약품을 판매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B사와 C사 간의 코-프로모션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A 의약품의 글로벌 진출이 무산될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그 동안 경제학 전문가 및 약학 전문가들이 “개량신약을 포함한 국산신약의 74%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가격으로 책정돼 있다. 적정 수준의 약가가 산정돼야 한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약가가 인하될 경우, R&D 투자가 감소할 것이다.
원가가 700원인 의약품을 1,000원에 판매했을 때 300원의 차액이 발생한다. 300원이 모두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며, 인건비와 세금 등 제약사를 운영하는 데 드는 유지비를 제외한 후에야 실제로 남는 영업이익이 된다.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영업이익을 R&D에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약가가 1,000원이 아닌 900원으로 인하됐다면 차액은 200원으로 감소한다. 유지비는 거의 고정돼 있기 때문에 결국 제약사의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R&D 투자 역시 감소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약가인하로 인한 보험재정 안정화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제약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인 제약업계의 이야기를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