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지난 22일 노인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민간위탁사업을 수용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협회는 의료전문가 단체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를 감안해 낮은 접종수가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의 건강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독감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의사협회는 공정성 있는 연구용역을 진행해 내년도 접종수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의사협회가 어르신의 건강을 위해 사업참여를 결정한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의사협회가 이번 사업에 대처해 온 과정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9월 18일 국무회의에서 2015년 복지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이 의결될 당시, 노인 독감 예방접종 보건소 약품비 및 민간의료기관 접종비 지원 사업 예산으로 514억원이 책정됐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3월 18일 2015년 제1차 예방접종심의위원회를 열고, 노인 1인 당 접종비를 1만 2,150원으로 결정했다.

이날 의사협회는 소아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접종비인 1만 8,000원 수준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노인 독감 접종비는 표결 끝에 8대2로 의결됐다.

이후 의사협회는 4월 1일 질병관리본부의 예방접종비 산정방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접종비의 합리적인 산정을 위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재논의 시기와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재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지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의사협회가 입장을 표명하기 3일 전 서울시의사회가 헐값 독감 위탁사업 추진을 중단하고, 의료계와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의사회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의사협회가 입장을 표명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의사협회가 공식 입장을 발표한 4월 1일은 예방접종심의의원회에서 접종비가 결정된 지 무려 14일이나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의사협회는 다시 50여일이 지난 5월 21일 노인 독감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입장을 내고, 정부가 예산을 이유로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합리적인 비용 산정을 위한 연구용역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때, 의사협회는 정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노인 독감 사업 참여를 거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후 의사협회는 60일이 지난 7월 22일 대승적 차원에서 노인 인플루엔자 민간위탁 사업에 참여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의사협회가 4개월 동안 입장표명만 반복하는 동안 회원들은 혼란을 겪었다. 주위 동료들이 하나, 둘 사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다수 의사들이 사업참여로 돌아섰고, 결국 의사협회도 참여를 선언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과연 의사협회가 참여 선언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까지 몰릴 사안이었을까?

노인 독감 접종비가 합리적인지 소아 NIP 접종비와 비교해 보자.

소아와 노인에 대한 독감 접종에 들어가는 행위량, 위험도, 약품 관리료, 주사 행위료 등은 동일한 수준이다.

오히려 노인 접종은 만성질환 등으로 인한 정밀한 진찰과 평가, 그리고 접종 후 관리도 필요해 영유아보다 위험도가 높다.

그런데 소아 독감 접종비는 1만 8,000원인데 반해, 노인 독감 접종비는 1만 2,000원이다.

이번 사안은 앞으로 의료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

정부가 국가예방접종사업을 확대할 때, 노인 독감 접종비를 기준으로 삼을 우려가 있다.

또, 기준 소아 독감 접종비인 1만 8,000원도 낮추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의사협회는 대승적 차원에서 노인 독감 위탁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승적’이란 표현은 ‘사사로운 이익이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판단한다’는 뜻이다.

과연 노인 독감 접종비 1만 2,150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사로운 이익이고, 작은 일일까?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