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지난 5일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대표자회의는 메르스 사태 이후 후속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 후 대표자들은 7건의 요구사항이 담긴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에는 방역 실패에 따른 진상규명 요구, 보건부 독립개편 요구, 의료전달체계 확립 요구, 보건소 및 공공의료기관 기능재정립 요구, 국가감염병예방관리선진화위원회 구성 제안, 메르스 특별법제정과 피해보상 논의를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요구 등이 담겼다.

결의문 말미에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국민과 함께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선언을 덧붙였다.

그것이 끝이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단지, 오래 전부터 의료계가 주장해 온 의료현안에다, 메르스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위원회 요구를 추가한 것에 불과했다.

투쟁을 하겠다는 문구는 결의문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마지 못해 넣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날 회의는 정부에 요구할 사항을 정리하는 자리로 마무리돼서는 안되는 자리였다.

의료계 대표자들이 모여 앉아 네시간 가까이 토론한 후 내린 결론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보건소 기능재정립 요구란 말인가?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보건소 기능재정립은 이미 정부에 셀수 없을 만큼 건의한 사항이다.

의사라면 누구나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 요구사항을 어떻게 실현시킬 지가 언제나 관건이었을 뿐이다.

혹시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할 지 모르는 대표자가 있다면 노환규 전 회장이 회장선거 출마 당시 발표한 ‘time to change’라는 공약집을 보거나, 지난해 의정합의사항을 정리한 문서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정부가 의사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다.

물론 운이 좋으면 이날 대표자들이 제시한 요구사항 중 한 두 건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의사협회의 요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입맛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대표자회의는 추무진 집행부가 메르스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됐다. 대표자들의 총의를 모아 추무진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자며 모인 자리다.

하지만 이날 회의를 통해 추무진 집행부에 힘이 실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추후 대표자회의를 또 개최한다면 요구조건만 제시하지 말고,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관철시킬 것인지도 결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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