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지난 30일 보험이사 3인이 일괄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보험이사들이 하루 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차등수가제 폐지안이 표결 끝에 무산된 데 따른 책임을 통감해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사협회는 자료를 배포하면서 정식 보도자료가 아니라, 비공식으로 작성한 자료라는 점을 강조했다.

의사협회는 보험이사들의 거취는 하루 뒤 오전에 열리는 상임이사회에서 심각하게 논의할 예정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상임이사회가 끝난 후 보험이사들의 거취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 늦게서야 추무진 회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추 회장은 차등수가제 폐지 무산은 건정심의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의사협회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은 것이므로, 실무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추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상임이사들이 각오를 더 다졌다면서 회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보험이사들의 집단 사퇴는 차등수가제 폐지 무산에 따른 회원들의 반발을 일시적으로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볼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추무진 집행부에 득보다는 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복지부는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건정심에서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되 보완방안으로, 진찰 관련 정보 공개라는 부대조건이 제시됐다.

의사협회는 진찰 정보 공개를 받아들이면서까지 차등수가제 폐지를 통과시키려 했으나, 진찰 정보 공개 방식과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며 반대한 가입자의 반대에 가로 막혔다.

부대조건을 살펴보자. 복지부는 적정 외래진료 유도 차원에서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 대해 진찰횟수 구간 정보 공개를 추진하고, 의료기관별ㆍ진료과목별 의사 1인당 평균 진찰횟수가 일정 범위를 초과하는 의료기관 ㆍ진료과목을 구간별로 공개토록했다.

공개 기준, 자료 수집 및 산출방법, 공개시점, 방식 등은 추후 전문가 및 관계 단체의 의견수렴을 통해 결정토록 했다.

의사협회가 까다로운 부대조건을 받아들이려 했던 이유는 공개 기준과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등수가제 폐지는 무산됐고, 의사협회가 부대조건을 받아들인 기록만 남게 됐다.

앞으로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가 재개된다면 진찰 정보 공개 기준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논의도 함께 진행해야 할 것이다.

차등수가제의 불합리성이 알려지고, 복지부도 차등수가제 폐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마당에 의사협회는 더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였어야 했다.

추무진 회장이 일괄 사퇴한 보험이사들의 사표를 수리하고 진찰 정보 공개는 있을 수 없다며 원칙론을 들고 나오는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더 나은 위치에서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를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