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안양수 총무이사가 분주하다. 안양수 이사는 5월 회무를 시작하자마자 새 수익사업을 위한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안 이사는 지난 2001년 신상진 집행부에서는 정책이사로, 2007년 주수호 집행부에서는 기획이사로 활약했다. 이번 집행부에서는 살림살이를 관리하는 총무이사를 맡았다. 그는 재정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6년만에 의사협회에 재입성한 안 이사를 지난 2일 협회에서 만나봤다.

 
 

장영식 기자: 안녕하세요? 이사님.

안양수 이사: 반갑습니다.

장영식 기자: 주수호 집행부 이후 오랜만에 협회에 돌아왔는데 적응이 되나요?

안양수 이사: 과거에도 협회일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장영식 기자: 협회와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양수 이사: 지난 1999년 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와 민주의사회 홍보팀을 맡고 있었어요. 당시 김재정 회장은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거부감이 있었어요. 대항마를 찾던중 신상진 성남시의사회장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생활도 했고, 15년 이상 시민운동을 하면서 시민단체 공동대표를 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직접 만나러 갔죠.

장영식 기자: 신상진 성남회장이 의사협회장이 된 계기가 된 만남이군요.

안양수 이사: 신상진 회장을 인터뷰했는데, 의료계 쪽보다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많이 해서인지 의료에 대한 비전이나 철학은 없었어요. 하지만 대단히 정직한 분이더라고요. 그래서 끌어내보자고 판단한 거죠.

장영식 기자: 출마하자마자 당선된 건 아니죠?

안양수 이사: 2000년 초반 유성희 회장이 사퇴하고 회장 선거가 열렸어요. 김재정 회장이 당선되고, 신상진 회장은 10% 득표로 꼴지를 했죠. 당시 정관은 간선제였으니 신상진 회장의 당선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하지만 분위기는 회장보다 의쟁투 위원장에 집중돼 있었어요.

장영식 기자: 신상진 회장이 의쟁투 위원장을 맡게 되죠?

안양수 이사: 네, 애초에 우리 목표는 의쟁투 위원장이었어요. 신상진 회장이 의쟁투 위원장이 되니까 저보고 홍보팀장을 하라는 겁니다. 신 회장을 의료계로 끌어들인 당사자이다보니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다만, 신 위원장으로부터 간섭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일을 시작했죠.

장영식 기자: 의쟁투 홍보팀장은 얼마나 했나요?

안양수 이사: 홍보팀장을 1년 정도 했어요. 의약분업 당시 운영위원들이 수배를 받고 피신 했기 때문에, 주수호 대변인과 둘이 남아 있었죠.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 쯤 퇴근했어요.
날마다 광고를 만들어서 내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장영식 기자: 병원이 말이 아니었겠군요.

안양수 이사: 3주를 계속 매달렸다가 병원에 가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아현동에 개업하고 있었는데 두 장의 종이가 붙어있는 거에요. 하나는 복지부의 업무개시 명령서였고, 다른 하나는 옆집 원장이 붙인 거였어요.

장영식 기자: 어떤 내용이었나요?

안양수 이사: 우리 병원은 파업을 하지 않고, 토요일, 일요일도 진료합니다. 진료를 원하는 분들은 이리로 와 달라며 약도를 그려놨더라고요.

장영식 기자: 많이 서운했겠네요?

안양수 이사: 당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을텐데 어떻게 내 병원에 그런 문서를 붙여놓을 수 있는지 용납이 안되더라고요. 젊은 사람이었는데 사람이 미워질까봐 이름을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장영식 기자: 그분이 지금도 기억나겠는데요?

안양수 이사: 아직도 그 자리에 개원하고 있습니다(웃음). 전 그때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3월에 의쟁투를 구성하고, 5월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갔어요. 주수호 대변인이 수도권 대학병원에 공문을 돌려서 전공의를 무조건 모아 달라고 요구했고, 모였다는 연락이 오면 병원 문을 닫고 달려 갔죠. 한 달 가량 주수호 대변인과 미친 듯이 돌아다녔어요.

장영식 기자: 전공의 의식화군요?

 
 

안양수 이사: 네, 의식화죠. 수도권은 다 돌고 천안까지 돌았어요. 결국 전공의들이 파업에 동참했죠. 하지만 전 11월경 병원을 닫았어요. 환자가 오지를 않더라고요.

장영식 기자: 병원은 오래 쉬었나요?

안양수 이사: 한동안 쉬고 있다가 다시 병원을 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김재정 회장이 사표를 던지는 겁니다. 신 위원장에게서 도와 달라는 연락이 왔고, 선거만 도와주려했는데 당선되는 통에 집행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장영식 기자: 병원 개원 계획은 포기했겠군요.

안양수 이사: 상근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병원은 포기해야 했어요. 계약을 끝내고 인테리어 중이었는데 중단하고 후배에게 넘겼죠. 성남에 있는 분을 데려다 의쟁투 위원장을 하게 하고 회장까지 만들었는데 나만 내 할일을 다했다며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이때가 협회에서 최초로 상근이사를 둔 시점이에요.

장영식 기자: 첫 상근이사라..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네요. 협회로 돌아온 감회를 물었는데 예전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요. 신상진 집행부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안양수 이사: 의료정책연구소를 만들었어요. 선거 전에 민주의사회를 중심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당선됐으니까 협회 내에 만들었죠. 기존 세력과 신진 세력의 갈등이 심한 상황이라 쉽지 않았지만 시도의사회장들을 추진위원회에 포함시켜 논의를 하다보니 진행이 되더군요.

장영식 기자: 쉽지 않았다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나요?

안양수 이사: 당시 신상진 회장에 대한 견제가 심했어요. 신상진 회장이 10월에 당선됐는데, 이듬해 4월 정기총회에서 일괄적으로 예산안을 30% 삭감했어요. 어느 항목에서 어떤 내역을 줄이라는 것도 없이 그냥 모든 항목에서 30%를 줄이라고 하니 답답한 상황이었죠. 인건비를 줄일 수 없으니 활동비를 줄일 수 밖에 없어요. 이는 아무 활동도 하지 말라는 거죠.

장영식 기자: 당시 의료정책 최고위자과정도 기획했다고 들었습니다.

안양수 이사: 네. 제가 최고위자과정 기획자입니다. 의료정책연구소를 만들고 몇 개월 정도 뒤였죠. 의식화를 위해서는 많은 의사들이 의료현안을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들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서 연대 김한중 교수와 이대 이선희 교수를 따라다니면서 프로그램을 짰어요. 특히 이선희 교수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해서 많은 도움을 줬죠. 이때가 아마 2002년 중반쯤일 겁니다.

장영식 기자: 사무국 직제 개편도 이때 한 건가요?

안양수 이사: 직제 개편은 아니고 단일 호봉제를 구축했죠. 당시 사무총장에게 인사파일을 요구했더니 자료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처 조직을 살펴보니 엉망진창이더라고요. 또, 내부적으로 직원 평가의 틀도 없었고요. 인사파일도 없는 조직에 무슨 평가가 있겠습니까? 호봉제를 단일 호봉제로 바꿔놔야겠다고 생각하고, 1년 동안 작업을 했어요. 회장에게 허가를 받고, 각 부서에서 가장 일잘하는 사람을 지원받아 TF를 구성했어요. 단일 호봉으로 가야겠다는 목표를 전달하고, 구체적인 안은 직원들에게 만들라고 지시했죠.

장영식 기자: 결론이 궁금하네요.

안양수 이사: TF에서 논의된 내용은 비밀로 하지 말고 각 부서에 다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매주 회의를 했고, 그렇게 8~9개월을 했더니 안이 나왔죠. 노조위원장을 불러 그 안을 제시했고, 직원들이 제시한 안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받아들이더라고요.

장영식 기자: 그래서 단일 호봉제를 바로 적용했나요?

안양수 이사: 통과시키자마자 집행부 임기가 끝났습니다. 2007년에 협회로 돌아와보니 단일 호봉제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단일호봉제였을 뿐 평가틀이 없더라고요.

장영식 기자: 자연스럽게 주수호 집행부로 넘어왔네요. 이번에는 평가틀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겠군요.

안양수 이사: 의료정책연구소에 연구용역으로 발주했고 컨설팅 회사에도 의뢰해 평가틀을 만들었어요. 성과급제를 그때 집어넣었죠.

 
 

장영식 기자: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보죠? 오랜만에 협회에 돌아온 소감은 어떤가요?

안양수 이사: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달라진 게 느껴집니다. 예전엔 사무처가 마리오네트(막대 인형극) 같았어요. 회장 연설문을 써오라고 하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준으로 가져왔죠. 지금은 그런 것은 기본이고 정책적인 부분도 잘 돼가고 있어서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과거보다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장영식 기자: 추무진 집행부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양수 이사: 선거가 끝나고 임수흠 의장이 추무진 회장과 만났을 때 추천했다고 들었어요. 추 회장이 선거 때 마주치면 협회 경험을 언급하며 호감을 표시했어요. 그런데 제게 총무이사를 맡길 줄은 몰랐습니다.

장영식 기자: 총무이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안양수 이사: 전체적인 살림살이를 하죠. 다른 이사들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는 건 전부 제 일입니다(웃음).

장영식 기자: 의사협회가 재정적으로 어렵죠? 얼마 전 임원 급여 유예라는 비상조치도 단행했는데 재정건전화 방안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안양수 이사: 지난주 각 시도의사회 총무이사들이 모이는 총무위원회에서 이 방안에 대해서 논의했어요. 미국의사회를 보니 회원을 위한 수익사업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회비를 내는 회원에게 혜택을 주는 방법도 고려할 겁니다.

장영식 기자: 대의원회에서 면허신고와 회비납부를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안양수 이사: 회비와 면허신고를 연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다시 말하지만, 회비를 내는 분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회비납부율을 끌어 올릴 생각입니다.

장영식 기자: 의사장터를 활성화하겠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안양수 이사: 지난 2008년 의사장터를 시작했어요. 의사협회가 소모품 쇼핑몰을 운영해 단가를 낮추면 회원에게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단, 제휴가 아니라 협회 사업으로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의사장터는 협회 이름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장영식 기자: 최근 의사장터 운영현황은 어떤가요?

안양수 이사: 한 해 약 4,000만원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구상한 금액에 많이 못미치는 액수죠. 지난주 총무위원회 회의에서 의사장터에 대해 안내했어요. 아직은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적응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 지역을 쫓아다니면서 회원들에게 홍보할 계획입니다.

장영식 기자: 안 이사님은 기획통으로 불리는데요, 구상하고 있는 수익사업의 방향과 아이템을 귀띔해 주세요.

안양수 이사: 물론,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구체적으로 언급할 단계는 아닙니다. 아직 시장조사 단계이기 때문에 여기서 오픈이 되면 엎어질 수 있어요. 사업성이 있겠다 싶은 확신이 들면 처음부터 오픈을 할 겁니다.

장영식 기자: 수익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면 종류만이라도 알려주시죠.

안양수 이사: 2개 사업의 시장조사를 진행중인데,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올해 말 까지는 어떻게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은 곤란해요.

장영식 기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주장으로 인해 추무진 회장이 회원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도 될까요?

안양수 이사: 장기적으로 볼 때 면허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치료하는 사람의 면허가 2개 있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선 거의 없는 일입니다.

장영식 기자:  자신의 단점을 하나 꼽는다면요?

안양수 이사: 제가 좀 차가운 편입니다. 처음 본 사람들이 젊었을 때부터 많이 차갑다고 했어요. 한참 후배에게도 말을 잘 안 놓습니다. 그런 부분을 단점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업무적인 관계를 가져도 그걸 사적인 관계로 안가져가는 스타일입니다. 장점도 될 수 있지만 단점이기도 하죠.

장영식 기자: 즐기는 취미생활이 있나요?

안양수 이사: 농구를 즐겨해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갑니다. 농구는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나가려고 합니다.

장영식 기자: 마지막으로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양수 이사: 조직은 하루 아침에 정비하기 어렵습니다. 집행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하지 않다가 상임이사로 들어오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진득하게 지켜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장영식 기자: 말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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