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한의계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국회 공청회장에서 격돌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김춘진)는 지난 6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의료계는 국민건강 위해와 의료비 증가 등을 이유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했다. 반면, 한의계는 오히려 국민건강은 증진되고 의료비는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자 보건복지위원들은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고, 보건복지부는 이미 협의체 구성이 진행 중이며, 오는 6월까지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의료일원화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 6일 개최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확대 공청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 6일 개최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확대 공청회

▽의료계 “한의사 현대의료기기는 위험…일원화 해야”
이날 의료계 측 진술인들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면허범위를 벗어난 무면허 의료행위로,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치고 의료비도 상승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윤현 대한영상의학회 의무이사(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학문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비전문가인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확대에 따른 치료시기 및 진단 지연 등으로 국민건강 위해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윤현 의무이사는 또, “한의학은 광의의 의학의 일부이고, 한방의료도 의료행위 수단의 일부다.”라며, “의료와 한방의료가 동시에 활용될 경우 진료와 비용 측면에서 상승효과를 발휘할 것이므로 일원화 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준성 가톨릭대학교 재활의학과 교수는 “이미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불가는 법적 판단이 종결된 사안이며, 지난 2011년 국회에서 김정곤 전 한의협회장도 한의사들은 현대의료기기 사용 의사가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면서, “한의사들은 한방원리에 맞게 한방의료기기를 개발해 사용하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 역시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의료일원화가 돼야 가능한 일이며, 그 방법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의계 “정확한 진단과 국민 편익 위해 필요”
한의계 측 진술인들은 한의사도 한의과대학에서 관련 교육을 충분히 받는다며, 국민의 편익과 정확한 진단, 의료비 절감 등을 위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호 대한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을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엑스레이를 이용한 진단은 한의학적 진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알기 위해 객관적인 지표를 측정하는 것,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는 양ㆍ한방의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태호 기획이사는 이어 “골절의 경우 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측정하고 객관적으로 진단한 후 한의학적 치료와 양의학적인 치료로 나눠지는 것이다.”라며,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은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개발된 도구를 활용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진단을 내려 한의학적인 치료를 행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또, 한의과대학에서 이미 충분한 교육을 통해 임상적 판단 능력이 준비돼 있다면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엑스레이, 초음파 등 기본적인 진단기기 활용을 허용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진욱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불가로 양ㆍ한방 의료기관 중복방문에 따른 비용이 중복으로 지출된다.”면서, 의료비 감소를 위해 한의사가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욱 부회장은 또, 사용하고자 하는 현대의료기기 범위에 대해서는 “의료법 상 영상의학과 전문의들만 가능한 CT나 MRI를 사용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영상의학 전문의들의 영역은 존중하며, 일반의에게 허용된 엑스레이, 초음파, 혈액분석기, 소변분석기 등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 달라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의료 일원화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의 이원화 체계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원화 돼야겠지만, 양방 치료로 충분하니 일원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적절하다.”라고 일침했다.

▽야당 의원들, 엑스레이 사용 두고 이견
이날 야당 보건복지위원들은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두고 상반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의사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한의학과에서 양의학 부분을 많이 배우니 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김용익 의원은 “저도 의대를 나왔지만, 그 때 교육받은 걸로 방사선과 사진을 판독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며, “물론 방사선과 해부학, 병리, 약리 모두 배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절 유무 등, 엑스레이 판독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의사들에게도 별도의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인데, 이런걸 배웠으니 할 수 있다고 한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지난 1994년 한약분쟁 당시 약사들이 한약 처방을 주장하며 내세운 근거 중 하나가 약용식물학을 배웠다는 것이다.”라며, “한방 쪽에서는 그건 본초학 개념에 의해 배운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라고 전했다.

김 의원은 “약용식물학을 배운 것과 본초학적 의미를 배우는 것은 다른 것처럼, 엑스레이를 배운 것과 서양의학적 훈련과 경험을 통해 판독하는 것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당 최동익 의원은 “저용량 엑스레이는 치위생사들도 사용하는데, 한의사들은 사용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 하다.”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치료장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골절인지 염좌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 한의와 양의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김윤현 영상의학회 의무이사, 김준성 가톨릭의대 교수,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김치중 한국일보 기자, 김태호 한의협 기획이사, 이진욱 한의협 부회장
▲(왼쪽부터)김윤현 영상의학회 의무이사, 김준성 가톨릭의대 교수,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김치중 한국일보 기자, 김태호 한의협 기획이사, 이진욱 한의협 부회장

▽김용익 “양 단체가 협의해 결론 내야 바람직”
김용익 의원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여부 판단에 대한 소신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여부를 누가 판단해야 하느냐고 질의했고, 김태호 한의협 기획이사와 김준성 가톨릭의대 교수 모두 “국민, 환자의 입장에서 국민이 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국민의 결정이라면 결국 국회나 정부가 해야 할 텐데, 나는 좀 의견이 다르다.”라며, “의사, 한의사가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느냐에 대한 판단은 정치적이 아닌, 전문가적 판단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국가가 의료인에게 면허를 줄 때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면허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배타성도 보유한 것이다.”라며, “그 속에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의학적 부분에 대해 의사, 한의사가 책임을 지라는 책임성을 부여한 것이고, 동시에 그것 때문에 국가가 의료인들에게 일정한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논란에는 밥그릇 싸움의 성격도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의 핵심적 부분에는 의학적 판단이 있다.”라며, “의학적 판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오로지 의료인만이 판정할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는 갈등만 반복하며 책임성 있는 자율적 결정을 미루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이 결정을 누구에게 해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제일 좋은 방식은 정부나 국회의 개입 없이 양 단체가 스스로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양 단체가 협의안을 갖고 오면 국회의원들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면서, “양 단체는 협의를 시작해야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행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걸림돌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의사와 한의사 스스로 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준성 가톨릭의대 교수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결정돼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공감하며, “이번 논란으로 의협과 한의협 모두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한의사 수 등 왜곡된 구조 등도 같이 정비돼야 그런 논의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다.”라고 답했다.

반면, 김태호 한의협 기획이사는 “이 문제를 각 전문가 그룹에서 결정하는 것이 전문주의라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양 단체가 정 반대의 주장을 펼쳐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객관적인 외부인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해 달라는 측면도 있다.”라고 반박했다.

김태호 기획이사는 이어 “지난 10년간 오랜 논란을 이어왔다. 양 측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다양한 패널들이 참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라며, 양 단체가 결정하는 것보다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복지부, 협의체 구성 중…의료계 참여 미지수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과 남인순 의원은 복지부를 향해 협의체 구성을 촉구했고, 복지부는 구성이 거의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협의체 내용에 따라 불참할 뜻을 전해 난항이 예상된다.

이목희 의원은 “복지부는 의사, 한의사, 소비자, 시민단체, 법률가 등을 모아 협의체나 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고 결정해 국회에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남인순 의원 역시 “지난 2월 복지부장관에게 질의했을 때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했는데 추진 중인가.”라고 질의했고, 강민규 한의약정책과장은 “협의체 구성 마무리 단계에 와 있으며, 당초 규제기요틴에서 6월까지 결론 내리기로 한 계획에 따라 협의체도 그때까지 논의를 마무리 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태호 한의협 기획이사와 이진욱 한의협 부회장은 “협의체에 적극 참여해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라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반면, 김준성 가톨릭의대 교수는 “한정된 시간 내에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논의하는 협의체 구성은 반대한다.”라며,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이원화 체계 등을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김준성 교수는 거듭 “협의체 내용을 조율하면 참여할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범위를 정하는 것만이라면 문제다.”라며, “구체적인 내용도 헌재 판결에 따른 안압기 등이냐, 엑스레이 까지냐 등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복지위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입장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은 “국민들에게 이 문제가 양 쪽의 밥그릇 싸움처럼 보여도 안되고, 경제를 살린다는 쪽으로 몰아가서도 안 된다.”라며, “밥그릇 싸움이 아닌, 국민건강을 담보로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도 “이 문제를 직역간 이해관계 다툼으로 접근하면 답을 얻기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라며, “복지부가 준비 중인 협의체에서 어떻게 하면 의료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갈지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일인지 관점에서 논의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