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노”

주 100시간씩 일하는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처지가 노예와 다를 바 없다며 ‘전공의’ 대신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환경 문제와 이에 대한 개선 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전공의들의 자살 사건 등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수련환경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전언이다.

복지부가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한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에 따라 전공의들은 주당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게 됐지만, 병원들이 수련환경표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편법으로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복지부에 보고할 수련현황표를 조작했고, 그 사이에서 전공의들은 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게 됐다.

수련규칙 표준안만 개정하고, 이를 감시할 독립기구나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김용익 의원의 전공의특별법 추진은 고무적이다. 대전협이 작성한 초안은 전공의 처우 및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지원과 제도 개선과 독립적인 수련환경평가기구 설립 등을 담고 있다.

전공의특별법의 수혜자는 전공의 뿐 아니라 환자들도 포함된다. 잠 잘 시간도 없는 빨간 눈의 전공의들이 돌보는 대상은 다름 아닌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환자보다 더 아픈 의사가 어떻게 제대로 환자를 돌볼 수 있겠나. 전공의들이 무리하게 근무하는 경우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전공의들의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엄격히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환자안전법 못지 않게 환자 안전관리를 위한 일이다.

의료인폭행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진료현장에서 의료인이 안전해야 환자도 안전할 수 있다.

최근 창원서 발생한 소아과 환자 보호자의 의사 폭행사건으로 의료계가 충격에 빠진 바 있다. 공교롭게 보호자가 치과의사여서 더 화제가 됐던 사건이다.

당시 병원 복도에서 폭행을 당한 의사도 전공의였다. 이 전공의는 고막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고, 심각한 정신적 충격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협은 이처럼 응급실 뿐 아니라 병원 곳곳에서 전공의 폭행 사태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보호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인폭행방지법’이 지난 국회부터 추진돼 왔지만, 번번이 환자시민단체의 반대에 막혀 무산됐다.

다행히 환자단체연합의 태도변화가 눈에 띈다. 최근 “진료중인 장소에서 의료인과 환자 모두가 보호받는 ‘진료실 안전법’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수정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 동안 법안 자체를 강하게 반대한 것을 떠올리면 긍정적인 변화다. 법률의 세부적인 사항은 국회에서 논의하며 다듬어 나가면 될 일이다.

환자단체연합 대표는 의료계를 향해 안전한 진료실 환경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함께 하자고도 제안했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정부, 국회는 진료실 안전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전공의특별법과 의료인폭행방지법 제정을 서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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