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대통합혁신특별위원회가 제안한 정관개정(안)이 대의원들에 의해 거부됐다.

대의원 직선제가 가결됐지만 이를 받쳐줄 대의원 정수 조정이나 의장 및 대의원 불신임 제도 도입 등은 부결됐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승인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세부내용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의원들이 회원 다수가 바라는 선택을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총회장을 찾아 온 일반회원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전임 박희두 대의원의장은 총회장에서 물리력을 동원해 일반회원을 통제했지만 변영우 현 의장은 전임자보다 단수가 높았다.

변 의장은 피켓을 들고 있는 일반회원에게 발언기회를 주는가 하면, 계속 들고 있으면 힘들테니 앉아서 쉬라고 말해 대의원들의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노련했다.

변 의장은 지난해 4월 19일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의사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협회장을 불신임한 뒤 회원들이 동요하는 것을 감지하고는, 8일 뒤인 27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통합혁신특별위원회 카드를 꺼내들었다.

변 의장은 정기총회 개회사에서 “의사협회의 혁신을 통한 회원들의 대통합이 필요하다.”라며 “대한의사협회 대통합혁신위원회를 구성하자.”라고 제안했다.

변 의장은 “현 정관은 의료계의 다양한 변화와 회원들의 정서를 모두 담을 수 없고, 회원들의 불만도 많다.”라며, “정관 전체를 다루는 전부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변 의장은 “이번 정총의 정관개정 사항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대통합혁신위원회로 미루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총회가 마무리될 무렵 약속이나 한듯 조인성 경기도의사회장이 ‘대한의사협회 대통합 혁신특별위원회 설치 및 운용’ 긴급동의안을 제시했고, 변 의장은 이를 표결하지 않고 박수로 통과시켰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면 변 의장은 “아침에 개회사를 할 때 제가 제안드린 내용이 동의안건으로 나왔다,”라고 반기며, “동의안이 채택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좋다고 생각하면 박수 한 번 달라.”고 말하더니, 박수소리가 나오자 “통과된 걸로 하겠다.”라면서 의사봉을 쳤다. 변영우, 조인성의 투맨쇼에 대통합혁신위원회가 급조된 것이다.

당시 한 대의원이 회의 진행에 대한 절차를 지적하며, “특별위원회를 만들 때 의결이 필요하다. 박수치고 통과시키면 되느냐.”라고 따졌지만 변 의장은 이를 무시했다.

다시 지난 25일 열린 임시대의원총회로 돌아와 보자. 일반회원들은 혁신위의 정관개정(안)이 부결될 때마다 대의원들을 향해 “당신들이 만든 혁신위 아니냐.”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대의원들의 기억엔 혁신위 구성에 표를 행사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혁신위가 제안한 정관 개정안이 차례로 부결되는 동안에도 일부 대의원들은 “정기총회에서 법령정관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거나, “절차에 문제가 있다.”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특히, 한 시도의사회장은 “정관 개정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밖에서 열리고 있는 규제 기요틴 궐기대회에 참석해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정기총회에서 “시도의사회장들은 대의원 겸직을 포기하겠다.”라고 발언한 황인방 대전시의사회장이다.

곧이어 시도의사회장의 대의원 겸직을 금지하는 안이 부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표결 과정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이날 표결은 총 13회 진행됐다. 여덟번째 진행된 ‘대의원 의장 및 대의원 불신임 제도 도입’ 표결에 참여한 대의원은 찬성 71명, 반대 81명, 기권 9명 등 161명으로, 정족수에 한명 부족했다.

일곱번째 진행된 ‘대의원 결원시 특례’ 표결에는 모두 165명이 참여했고, 아홉번째 진행된 ‘불성실 대의원에 대한 자격상실 제도’ 표결에는 168명이 참여했다.

이후 진행된 ‘대의원 겸직금지 범위 확대’ 표결에는 167명이 참여했고, ‘회원 투표 도입’ 표결에도 167명이 참여했다. 유독 대의원 불신임 관련 표결에만 정족수가 미달된 것이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말이 있다. 중에게 있어서 머리를 깎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대의원들은 의사협회 정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일반회원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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