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맞이한 새해는 난데없는 단두대(기요틴, guillotine) 폭탄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다.

정부가  선정한 규제기요틴 과제 114건에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되느냐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과제 선정은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을 경제단체의 건의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그 계기부터가 불순(?)하다.

실제로 이번 규제기요틴 과제 114건은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경영자총연합회, 무역협회, 벤처협회, 중견기업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8개 경제단체가 지난해 11월 건의한 총 153건 중 정부 검토를 거쳐 확정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각 과제마다 예상되는 경제효과까지 나열돼 있다.

이 중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건은 중소기업중앙회가 건의했으며,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검토 의견을 통해 이번 과제 수용으로 한방산업 활성화 및 양ㆍ한방 협진을 통해 의료서비스 품질 제고 등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했다.

정부는 규제기요틴 과제를 발표하며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증대와 내수침체 장기화 우려라는 대내외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범정부적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 경제단체의 건의에 대해 ‘규제기요틴’ 방식을 적용해 전향적으로 검토했다.”라며,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하겠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소관부처가 규제 존치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 규제를 개선하도록 하는 ‘부처 소명회의’를 수차례 개최해 건의과제를 최대한 수용했다고 자평한다.

과연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로 판단할 일인지, ‘규제 존치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인지 의문이다.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고 싶다면 비효율, 시장원리, 규제 등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해 ‘규제를 완화’해 해결될 일이 아니라, 이원화된 면허체계와 의료법을 뜯어 고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법 개정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령여부에도 ‘비법령’으로 표시했다.

게다가 건의과제 중 안경사의 타각적굴절검사기기 사용에 대해 복지부는 “국민건강과 관련된 사항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국민건강과 관련되지 않아 신중한 검토를 하지 않은 것인가?

의료계는 갑자기 떨어진 폭탄에 황당해 하며 의사협회와 지역의사회, 전공의들까지 나서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는 내년 상반기 내 기기별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ㆍ검사기기를 명확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규제개혁으로 얻게 되는 것은 경제적 효과가 아닌 국민건강 저해와 의료비 폭등이며, 쓸데없는 갈등과 혼란만 초래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규제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건강을 단두대 앞에 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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