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한의계가 오랜 시간 대립해 온 한의사의 의료기기 활용문제가 최근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한의사협회가 이 주제와 관련한 한 방송사의 ‘끝장토론’에 불참을 통보하자 대한한의사협회가 이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의협은 지난달 27일 성명을 통해 “평소 한의학과 한의사를 폄훼하는데 열을 올리던 양의사들이 막상 자신들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마련되자 무엇이 두려운지 꽁무니를 빼고 있다. 정작 국민들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하는 양의사들의 행태는 자신들의 주장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국민을 위해 의료인인 한의사가 진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한의학 현대화를 이룰 목적으로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의학정책연구원이 올해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8.2%가 한의사의 의료기기 활용에 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의협 주관의 편파적 문항으로 이뤄진 여론조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한의협은 또, 현행 한의약육성법에도 한의약에 대한 정의를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약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해 과학적으로 응용ㆍ개발한 한방의료행위’로 명시함으로써 한의사가 현대과학의 산물인 의료기기를 진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다. 한의약육성법 개정안 통과에 진통을 겪을 당시 김정곤 한의협 회장이 법 개정은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다가, 이제 와서 개정된 법을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정곤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한의계가 한의약육성법을 통과시키려는 이유는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행법에서 새로운 한방진료를 할 때마다 유권해석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함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더군다나 한의사들이 주장하는 의료기기 사용은 토론을 통해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미 양 쪽은 자신들의주장을 수없이 반복해, 서로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법적인 문제이자 의료인의 면허에 따라 허용된 의료행위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단순히 허용 유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해석하는 일까지 포함돼 있으므로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면 한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 의료기기를 만들어 사용하면 될 일이다. 토론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의사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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