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원격의료 저지를 위해 서명투쟁중이라고 한다.

비대위는 지난달 29일 중앙비대위원과 시도의사회 비대위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서명투쟁의 배경을 설명하고 참여를 당부했다.

이 서신에서 비대위는 먼저, 지난 15년간 의권 쟁취를 위해 파업 투쟁에 힘을 모았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 올해 3월 10일 파업 투쟁에서 남은 것은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5억원과 패배의식뿐이라고도 했다.

비대위는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파업투쟁 만을 목표로 하기에는 회원 피해와 내부 분열이 우려된다면서 몇 달간의 논의 끝에 원격의료를 저지하는 방법으로 전국 의사 서명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11월말 현재까지 약 1만여명이 원격의료 저지 서명에 참여했다고 한다. 비대위는 전공의와 교수, 봉직의사 다수가 참여하면 원격의료를 저지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러한 비대위의 행보는 매우 당혹스럽다. 의사협회 대의원들이 지난 3월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노환규 전 회장을 배제한 비대위를 꾸릴 당시 명분은, 전국적인 투쟁체를 조직해 제대로 된 투쟁을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대위가 첫 회의에서 조직의 명칭을 논의할 때도 이러한 방향성은 분명하게 나타났다. 위원들은 ‘의쟁투 시즌 2’, ‘2기 의쟁투’, ‘의권회복을 위한 비대위’ 등의 명칭을 앞다퉈 제안했다. 당시 투쟁성을 외부에 과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던 비대위는 8개월이 지난 현재 내부 분열없이 의사들의 권리를 지키고 사회를 설득하는 선례를 남기겠다며 서명투쟁 카드를 들고나왔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비대위가 그들의 구성 목적인 투쟁체 조직과 투쟁 로드맵을 마련해 뒀느냐는 것이다.

파업투쟁의 중요성은 비대위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는 서신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수단’이라는 표현에서 비대위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투쟁 방법이 파업투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비대위는 투쟁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뒀지만 전략이 노출되면 투쟁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회원들은 이러한 비대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줄까? 지난 3월 집단휴진 당시, 휴진 계획을 수도없이 예고하고 참여를 독려했는데도 참여율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비대위는 구체적인 투쟁계획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 당장 국회에서 원격의료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가정해 보자. 비대위가 파업투쟁에 돌입하면 회원들은 참여할까? 비대위가 실패한 투쟁이라고 규정한 지난 3월 10일 투쟁보다 많은 사람이 동참할까?

‘서명운동’에 억지로 ‘투쟁’을 붙인다고 ‘서명투쟁’이 되는 건 아니다. 설령 서명투쟁이라고 하더라도 파업투쟁 준비는 해야 한다. 그것이 비대위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의 할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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