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 2만여명의 의사들이 집결했다. 그들은 관치의료 타파를 주장하며 의료제도를 바로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치(官治)는 국가 기관이 직접 맡아 하는 행정을 말한다. 관치의료는 정부에서 주도하는 의료로 읽힌다. 결국, 의사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의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관치의료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괴로워해, 뇌출혈 가능성을 의심하고 CT를 찍었다. 그러나 CT상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 CT 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 경우 단순 두통으로 처리되며, CT 수가는 인정받지 못한다.

일반 X-ray 상 폐암이 의심돼 CT를 찍었다. CT상 이상소견이 없으면 CT 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 경우도 역시 수가를 인정받지 못한다.

노인환자가 어깨와 무릎, 발목이 아파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 노인환자는 세부위 모두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물리치료는 한부위만 받을 수 있다. 물리치료 급여기준에 따르면 한 부위 이외의 부위에 대한 물리치료는 급여를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환자본인 부담도 인정하지 않는다.

올해 2월부터 미용성형 부가가치세 부과 항목에 여드름치료술이 포함됐다. 이는 여드름치료를 질병이 아니라 미용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인 피부과 전문의들도 여드름의 상태에 따라 병적 상황인지, 일반적인 신체 상황인지 의견이 갈리는 점을 고려하면 일률적으로 미용으로 구분지은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진찰과 검사가 선행돼야 한다. 문진에서부터 시진, 청진, 촉진, 타진 등의 방법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X-ray, CT, MRI, 혈액검사, 초음파 등 다양한 검사를 통해 추가적인 정보를 얻게 된다.

의사는 이렇게 얻어진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진단을 내린다. 이는 질병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질병의 유무와 정도를 파악하게 된다.

진찰과 검사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뇌출혈이 의심돼 CT를 찍었는데 그 비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의사들은 CT 사용을 주저할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질병 확인이 늦어져 환자가 화를 당한다면 그 책임은 관료에게 주어질까, 의사에게 전가될까?

의사들이 관치의료 타파를 외친 것은 정부에 대항해 의료의 주도권을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의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의료정책과 제도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현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의사를 전문가로, 그리고 동반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아울러 비전문가인 정부 관료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을,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바로 잡자는 것이다.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의료제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 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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