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이 해외 보건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중인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 현장에서 개원의사들이 집단시위를 벌여 의료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개원의사 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 소속 회원 20여명은 9일 이 프로그램을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지난 8일 이 단체 대표가 1인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이틀 연속 반대 시위에 나선 것이다.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은 해외 의료전문가 교육프로그램으로 지난 2004년 처음 개최돼 올해로 7회째 실시되고 있다.

건보공단과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소, UN 아시아ㆍ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 등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올해는 23개국 보건의료 전문가 45명을 대상으로 실시중이다.

올해 프로그램은 ▲향후 건강보험 정책방향 ▲한국 의료전달체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 14개 강의와 참가국의 건강보험제도 소개, 그 외 공단 일산병원을 포함한 현장견학과 한국 문화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의사단체가 시위를 벌이면서까지 연수과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보공단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전의총, 반쪽짜리 건보제도 성공 홍보는 사기
전의총은 국내 건강보험제도가 보험자와 의료소비자는 만족시킬지언정, 공급자는 만족시키지 못하는 반쪽 제도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낮은 진료수가를 강제함으로써 의사들의 고혈을 토대로 건보제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진료과목인 흉부외과와 산부인과의 경우 고사 직전에 있는 게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현실이다.


현 제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머지 않은 시기에 건강보험 재정은 파산에 이를 것이고, 이로 인해 의사들의 강경투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의총은 내다보고 있다.

전의총은 반쪽짜리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성공적인 건보제도 모델이라고 홍보하는 것이야말로 ‘사기’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단, 건보제도는 세계가 인정한 모범 사례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연수과정이 세계보건기구에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개도국에 알리자는 취지로 건의 해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해마다 많은 나라에서 국내 건강보험제도를 롤모델로 삼기 위해 방문하고 있으며, 올해도 일본과 대만 등에서 10여 차례 이상 건보공단을 찾았다고 한다.

공단 측은 연수과정 참가자들은 각국의 보건의료 행정가와 대학교수, 의사들로서 국내 건강보험제도를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며, 수가 문제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자국보다 한단계 앞서있는 제도의 장점을 참고해 자국에 적용하려고 참여한 사람들에게 국내 의사들의 피켓시위가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다는 게 공단의 주장이다.

정형근 공단 이사장은 “우리가 좋은 제도라고 떠든다고 해서 20여개국에서 의료전문가를 보내겠느냐”며, “국내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제도이다”고 강조했다.

▽갈등 이유는 건보제도 ‘시각차’
전의총은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유지되기 어려운 제도라고 평가한다.

전의총은 적은 돈으로 많은 혜택을 주는 제도는 있을 수 없다며, 현재와 같은 혜택을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입자의 저항이 두려워 보험료 인상이 어렵다면 보험재정 지출구조 합리화부터 적극 나서라고 주장한다.

임의비급여를 인정비급여로 허락하고, 조제료를 정비하며, 약품비를 현실화하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노환규 대표는 “하나의 예로 2005년 진료수가는 원가의 70% 초반인데 반해 조제료 수가는 120%가 넘었다”며, “보험재정 지출구조가 매우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공단은 정부가 결정한 대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지 정책을 수립하는 곳이 아니다”며 발을 뺏다.

그러면서도 건강보험제도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식 루트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을 찾아야지 외국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서 집단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은 국제적 망신만 부를 것이라는 게 공단의 입장이다.

▽연수 중단해야 vs 국제행사로 키운다
건보공단은 이 연수프로그램을 국제적인 행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 연수과정이 그동안 많은 개도국들의 관심과 기대에 부응해 왔고,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전의총은 이 프로그램의 중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수 국가에서 참여하는 국제행사이기 때문에 의료제도의 허점이 제대로 알려지면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해마다 연수현장에 나와 시위를 통해서라도 국내 건보제도의 실상을 알리겠다는 전의총과 중단해야 할 것은 연수프로그램이 아니라 전의총의 집단시위라고 말하는 공단.

연수프로그램이 국제적 사기라고 주장하는 전의총과 반대로 전의총의 시위가 국제적 망신이라고 주장하는 공단.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화되고, 전료수가가 원가를 상회한다면 자연스레 갈등이 풀어지겠지만 노인인구 확대와 만성질환 증가라는 의료환경 변화로 인해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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