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회장이 제기한 ‘대의원총회 불신임결의 효력정지 등 가처분’이 기각되면서 제38대 의사협회장 선거가 본격적인 선거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선거는 회장이 대의원들로부터 불신임됨에 따라 예고에 없던 보궐선거로 치러지는 상황이어서 후보자들이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합동설명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후보들은 회장이 되면 어떤 방향으로 회무를 운영해 나갈 계획인 지, 경쟁 후보보다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회장에 더 적합한 지를 알려야 한다.

유권자들이 선거 자체에 관심이 적고, 현장에 방청객이 몰리지 않는다고 해서 합동설명회의 의미를 낮춰 볼 이유는 없다. 후보들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행된 합동설명회를 접하면서 흑묘백묘(黑猫白猫)가 떠오른다.

흑묘백묘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말로 흔히 ‘흑묘백묘론’이라고 부른다.

즉,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이후 중국식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잡았고,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거듭한다.

노 전 회장은 ‘잘못된 의료제도를 알리고 바꾸기 위해서’라는 전제 하에 여야를 가리지 않았고, 과거 의사단체가 꺼려하던 보건의료노조와도 접촉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이 한창일 때는 현장에 직접 내려가기도 했고, 지난해 말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는 원격의료 저지와 의료영리화 반대를 내세웠다. 이를 두고 좌편향 투쟁 아젠다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의사들은 지지와 반대로 의견이 나뉘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유태욱 후보와 박종훈 후보는 노 전 회장의 투쟁 아젠다에 대해 좌편향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태욱 후보는 “노환규 전 회장이 저질러 놓은 많은 문제들을 바로잡아 나가겠다.”라며, 바로잡을 문제들로 ‘좌편향 투쟁 아젠다’와 ‘의료민영화 반대’를 예로 들었다.

박종훈 후보는 더 나아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좌파적 이슈를 주장하고 있다.”라고 비판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른 의료환경은 중도적인 합리적인 의료환경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안 된 좌편향적인 주장들이 등장했다.”라고 지적했다.

유 후보와 박 후보가 좌편향이라며 비판하는 노 전 회장의 투쟁 아젠다는 ‘원격의료 반대와 의료영리화 저지’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반대하고 있다. 의료영리화로 이름붙인 투자활성화 정책도 정부가 저수가는 외면한 채 편법으로 진료수입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하니 의사들이 반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좌편향인지 우편향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사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한 번 쯤 ‘흑묘백묘’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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