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협회장이 대의원들로부터 불신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회원들은 익숙하지 않은 사건에 혼란에 빠졌다. 불신임 안에 찬성표를 던진 대의원 중 일부도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변영우 대의원회 의장은 임시대의원총회 직후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의사협회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다며, 총회를 진행한 의장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괴롭다는 말로 심정을 밝혔다.

이어 노환규 회장의 불신임 투표 결과를 공개하고, 상임이사회가 회장직무대행을 선출할 때까지 협회장 직인을 봉인하겠다고 말했다.

변 의장의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변 의장은 ‘질문이 없으면 마치고 싶다’는 말로 자신의 설명이 끝난 것을 알렸다.

예기치 않은 짧은 설명에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이내 보궐 선거 일정, 불신임 이유, 비공개 회의 이유, 임총 의결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대처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브리핑은 약 15분간 진행됐다.

이날 총회는 취재진과 일반 회원의 출입을 막고,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됐다. 때문에 총회 진행 상황을 외부에서 파악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날 안건인 회장 불신임 안에 대한 제안 이유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자 마지못해 변영우 의장은 노환규 회장을 불신임한 이유를 의사협회 정관 위반과 명예 훼손 때문이라고 답했다.

의사협회 정관 제20조의2, 제1항1호는 임원에 대한 불신임 조건으로 ‘정관 및 대의원총회의 의결을 위반하여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위반한 때’와 ‘협회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한 때’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환규 회장의 어떤 행동이 정관 위반과 명예 훼손에 해당하는지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의료계에 따르면 노환규 회장이 임시총회 의결사항인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부정하고, 정관에도 없는 사원총회를 개최하려 한 점이 정관 위반 사항으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노환규 회장은 일관되게 정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협회 감사단의 의뢰를 받은 법무법인 두 곳도 비대위에 투쟁에 관한 권한을 위임하도록 한 임시총회의 결정은 적법하지 않으며, 사원총회 개최는 적법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대의원회는 노환규 회장에게 해명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변영우 의장은 이날 총회를 비공개로 진행한 이유에 대해 국회법과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규정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장 불신임은 의사협회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변영우 의장이 ‘회장 불신임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고 한 말이 진심이었다면 노 회장에게 충분한 해명 기회를 줬어야 했다.

변 의장은 기자브리핑 말미에 ‘회장 불신임은 절대 권력 투쟁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가 있을까?

대의원들은 대의원회를 국회로, 의협회장을 대통령에 비유하곤 한다. 노환규 회장이 추진하는 사원총회를 두고, 대통령이 국회가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국민들을 소집해서 국회를 해산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현행 헌법 제65조제2항에 따르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사협회 정관 제20조의2, 제2항에 따르면 회장에 대한 불신임은 선거권이 있는 회원 4분의 1이상 또는 재적대의원 3분의 1이상의 발의로 성립하고, 재적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한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기준은 재적대의원인데 반해, 의협회장의 불신임 기준은 출석대의원이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조건을 의사협회에 대입해 보면 협회장을 불신임하기 위해서는 242명의 대의원 중 122명의 발의와, 162명의 찬성이 필요한 것을 의미한다.

지난 임시대의원총회는 대의원 95명이 발의했고, 136명이 불신임에 찬성했다. 대통령 탄핵소추 조건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이다. 이는 의사협회 대의원회의 권한이 막강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의원회 운영위원회가 이 같은 권한을 더 강화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지난 2007년 3월 10일 열린 정관개정 토론회에서, 회장 불신임 요건 완화를 주장했다.

당시 변영우 부의장은 협회장 불신임 가결요건을 ‘재적대의원 3분의 2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에서 ‘재적대의원 3분의 2 출석과 출석대의원 2분의 1 이상 찬성’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변영우 부의장 주장을 대의원수가 242명인 현재 상황에 대입하면, 162명 출석에 82명 찬성이면 회장을 불신임할 수 있는 요건이 된다.

다시 말하면 덩치가 큰 지역이나 직역 두 세 곳의 대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면 회장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변영우 부의장의 주장이 그해 4월 22일 열린 제58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통과됐다면, 노환규 회장이 의협 역사에서 최초로 불신임을 받은 회장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회장 불신임 가결 요건 완화 안은 법령 및 정관개정 심의분과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의원회는 노환규 회장의 독선으로 대의원회의 권위가 손상됐다고 주장한다.

노환규 회장이 대의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과도한 SNS 이용과 돌출 발언으로 의사협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한 시도의사회장은 임총 직전 회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노환규 회장의 독재를 끝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독선과 독재로 회무를 이끈(?) 노환규 회장을 불신임한 대의원회가 앞으로 회원들의 민의를 어떻게 수렴하는 지 지켜보자.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