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사회 최대 화두인 ‘법인약국’의 향방이 모호하다. 일단 정부도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당장 6월 지방선거 후에는 또 다시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법인약국은 의료기관 자법인, 원격의료 등에 비해 국민적 관심과 이해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 여론 몰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약사회는 정부를 대상으로 투쟁과 대화 등 투트랙 작전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민초약사들은 슈퍼판매 당시의 ‘전향적 협의’를 떠올리며 불안해 하고 있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법인약국의 실체와 쟁점, 앞으로 전망에 대해 살펴본다.

▽정부 “헌법불합치 해소 위한 것…민영화와 무관”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13일 의료기관 자법인 설립 및 법인약국 설립 허용 등을 담은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지난 2002년 헌법재판소가 직업선택의 자유ㆍ결사의 자유ㆍ헌법상 평등권 침해 등을 들어 법인약국이 필요하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반영, 2014년 상반기까지 법인약국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약사법에 의거, 약사 또는 한약사 자연인만이 약국개설이 가능하고 법인 형태의 약국은 설립이 불가능하다. 복지부는 법인약국 설립ㆍ운영은 약사면허 소지자들만 사원으로서 참여가능하고 사원들이 유한책임을 지는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허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약사사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법인약국 허용은 의료민영화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복지부는 지난달 7일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법인약국이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이며,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하다.”라고 밝혔다.

법인약국은 지난 2002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복지부는 “법인약국의 형태로 주식회사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아 대형자본에 의한 독과점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법인당 개설할 수 있는 약국 수도 약사 수 등에 따라 제한되므로 동네약국의 도산 우려는 없으며, 약사회가 언급한 노르웨이나 헝가리의 사례는 모두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약국을 허용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법인약국에서 약사 이외의 자가 대표를 맡는 것을 금지하고 유한책임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불가능하도록 약사법에 규정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복지부는 법인약국은 약사만이 참여하고 투자해 만들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규모가 커져서 다양한 형태의 약국이 생겨 주말과 심야에 문을 여는 약국들도 늘고 서비스나 시설도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법인약국이 허용되면 대형약국 간, 대형약국과 제약사 간 담합으로 약값이 올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법인약국에 제약사 등 일반인의 참여를 제한하는 등 담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며, “또, 법인약국이 들어서면 약국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약값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약국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약값이 올라갈 가능성은 낮다.”라고 해명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약사회, 반대논리 개발 분주
복지부의 발표 이후 약사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달 전국 분회장 긴급결의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국회 및 약사회 주도로 토론회 등을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또한 대국민 여론전을 위해 거리에 나서 홍보물을 배포하고, 전국 약국에 법인약국 반대 포스터를 붙이도록 독려하고 있다. 국민을 ‘약사 편’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지난달 5일 약사회가 개최한 전국 분회장 긴급 결의대회 모습
▲지난달 5일 약사회가 개최한 전국 분회장 긴급 결의대회 모습

앞서 조찬휘 휘장은 지난달 5일 대한약사회관에서 개최한 ‘영리법인약국 저지 전국분회장 긴급 결의대회’에서 단계별 투쟁방향을 제안하며, 국민에게 법인약국이 무엇인가에 대해 실체를 이해시키는 것으로 시작하자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약사회는 정부가 법인약국 도입의 가장 큰 근거로 내세우는 ‘헌법 불합치 해소’에 대한 반박논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약사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은 법인약국 도입의 필요조건이긴 하나, 긴급히 도입해야 할 충분한 명분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음에도 개정되지 않은 법이 13개에 이르며, 개정 시한을 넘긴 법도 3개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 불합치 해소는 입법부인 국회 차원에서 논의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주도할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약사회는 아울러 영리법인약국이 도입되면 ▲의료비 증가 ▲약료서비스 질 저하 ▲약국 접근성 악화 ▲사회 양극화 심화 등을 초래해 결국 국민 삶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 입장, 야당 반대ㆍ여당 신중한 태도
법인약국 도입을 위해서는 약사법 개정이 필수적인 만큼, 약사회는 국회의 도움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법인약국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힌 야당에 이어, 최근에는 새누리당과 복지부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 약사사회에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의 이 같은 변화와 이에 따른 복지부의 유예적 태도는 오는 6월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둔 한시적인 입장일 뿐, 결국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에 발 맞춰 법인약국 도입에 앞장 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분위기 변화는 지난 1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감지됐다. 이날 회의에서 정우택 최고위원은 “약사회는 약국의 법인화가 허용되면 대규모 재벌 자본이 몇몇 약사들의 이름만 빌려 동네 약국시장에 침투해 동네 약국상권을 싹쓸이 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 위원은 이어 “영리법인 약국도입 시 동네약국 생존권이 위협받고 이는 국민의 약국 접근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사실 이러한 동네약국의 걱정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라며, “이미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슈퍼를, 대기업의 유명빵집이 영세한 동네빵집을 몰아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위원은 “법인약국 허용 문제는 당장 급하게 처리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약사 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국회차원에서 국민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점진적으로 논의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열린 지역약사회 정기총회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은 지난 15일 열린 부산시약사회 정기총회에서 “기획재정부가 처음 법인약국에 대해 보고할 때 분명히 안 된다고 했다. 복지부 장관이 저에게 법인약국 안 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서병수 의원 역시 “약사들이 법인약국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의료법인 이야기를 하니, 관성에 의해 법인약국을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전했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기초연금, 의료기관 자법인, 원격의료 등 보건복지 분야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법인약국까지 서둘러 추진하며 약사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약사회 집행부는 지난달 23일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에서 황우여 대표최고위원과 간담회를 갖고 법인약국도입과 관련한 약사회 입장을 전달했다.
▲약사회 집행부는 지난달 23일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에서 황우여 대표최고위원과 간담회를 갖고 법인약국도입과 관련한 약사회 입장을 전달했다.

복지부도 법인약국 도입에는 일단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약사사회의 입장을 충분히 청취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업무보고에서 민주당 최동익 의원은 “법인약국 추진 안 할 거죠? 질문 안 해도 되겠죠?”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문형표 장관은 “네. 당장 질문 안 해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의 질의에도 “저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당장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며, 유예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정부 역시 약사회와 협의는 계속 하되, 당장 법인약국 도입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는 다시금 속력이 붙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슈퍼판매 ‘전향적 협의’ 뼈 아픈 기억 또?
법인약국 이슈 대두 초기에 약사 회원들의 불만은 약사회의 대응이 너무 약하고 느리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국의사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의사협회와 비교하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조찬휘 회장은 전국 분회장 결의대회에서 “의사협회는 자법인, 원격의료 등 현안과 관련한 입법이 코 앞에 닥쳐 급한 상황이지만 법인약국은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서서히 투쟁 분위기를 만들고, 반대 논리도 좀 더 치밀하게 개발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슈퍼판매 당시 복지부와 ‘전향적 협의’를 한 집행부에 대해 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약사 회원들은 이번에도 그런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조찬휘 회장은 지난 12일 열린 최종이사회에서 “회원들이 갖고 있는 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전향적 협의에 대한 트라우마를 잘 알고 있다.”라며, “법인약국 문제에 대해 회원 몰래 이면합의나 밀실합의 한 적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는 23일 개최되는 대의원총회에서 복지부 관계자가 참석해 법인약국에 대한 설명을 하기로 했던 내용도 취소하기로 했다면서, 회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였다.

한편, 법인약국 이슈가 의료계의 현안에 비해 국민적 관심과 이해도가 높지 않은 것도 약사회의 고민이다.

이와 관련, 약사회는 이번 설 명절 기차역에서 귀성객들을 만나 대국민 홍보에 나섰으며, 지역약사회도 거리로 나서 홍보물을 배포하는 등 여론전에 힘을 쏟고 있다.

결국 슈퍼판매 이후 약사사회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법인약국 향방은 여야 입장과 지방선거에 따른 정치적 역학관계, 약사회와 복지부의 합의 진행, 대국민 여론전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만큼 쉽게 예측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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