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의협회관에서 노환규 의협회장이 의사대표자회의의 결과를 설명하던 날, 서울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이영찬 복지부차관이 의사대표자회의에 대한 복지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영찬 차관은 모두 발언에서 의사협회가 총 파업을 유보하고 협의체를 통해 대화에 임하기로 한 결정을 존중하며 정부도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영찬 차관은 원격의료는 의료접근성을 제고하고 국민 편의를 증진하고자 도입하려는 것이고,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은 의료서비스 분야의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차관은 의사협회가 이를 왜곡해 파업을 거론했다며 유감을 표하고,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하는 불법 파업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의사협회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힌 셈이다.

양측의 대화는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날 이어진 이 차관의 발언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차관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원격진료도 초진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감기하고 수준이 비슷한 정도의 경증질환이 52개 정도 나오는데, 상식적으로 감기인지 여부를 확증받기 위해서 병ㆍ의원에 가는 분이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 차관은 “현재도 연간 500만 건 이상의 처방전은 의사와 환자의 대면진료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도움없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집에서 지내는 A급 중증장애인 중 38만명의 경우, 아프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의사에게 가서 처방전을 끊어 달라고 이야기한다.”라며, “이런 처방전 규모가 500만 건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를 책임지는 주무부서 차관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급성상기도감염으로 불리는 감기는 감염성비염, 부ㆍ비 동의 급성감염, 급성 편도염 등 7개 상병을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국내 감기환자는 3,257만여명이었고, 이들의 진료비는 무려 9,850억원이었다.

일반인이 의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상식’ 수준에서 진단 가능한 단순 질환에 1조원에 가까운 진료비가 투입되고 있는 점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원격진료 허용은 환자가 자가 진료를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기로 보이지만 더 중한 질환이 숨어 있는 경우에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 의사와 대면진료없이 발급된 처방전이 500만건에 이른다며 A급 중증장애인을 예로 든 것도 이해할 수 없다.

A급 중증장애인에게 원격진료를 받기 위해 방안을 이동하고, 컴퓨터에 앉고, 모니터를 통해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일이 쉬울까?

중증장애인에게 원격의료를 제공하기 보다는 의사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게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할 일이다.

일반인이 의사의 도움없이 홀로 감기를 확진하는 게 상식인가, 아니면 중증장애인일수록 의사의 대면진료가 필요한 게 상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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