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걱정을 뜻하는 ‘기우(杞憂)’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옛날 기(杞)나라에 살던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에 대해 걱정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최근 의료공급자와의 관계에서 기우를 경험했다고 한다. 사정은 이렇다. 김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현행 급여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의료기관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했다.

김 이사장이 제시한 자료들은 지난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 시행 이후 빅5병원, 상급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간 급여구조의 불형평과 불공정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김 이사장은 이 지표들이 비정상적인 보험급여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전체 보험급여비 분담률에 있어 의원급 급여비는 2001년 34.1%에서 2011년 21.6%로 급격히 감소한 데 비해, 소위 빅5 종합병원은 같은 기간 3.5%에서 6.1%로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요양기관당 진료비는 빅5병원 3.3배, 상급종합병원 2.9배, 종합병원 2.65배, 병원 2배 순으로 증가했지만, 의원은 1.3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김 이사장은 이 같은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하며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여구조 개선과 관련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작심하고 글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김 이사장의 고민은 기우였다. 불평등한 급여구조에 대한 증거들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떤 의사단체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건보공단 역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원급 진료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보험자와 공급자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건보공단 이사장이 작심하고 언급한 급여구조 문제는 의료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물론, 공급자의 입장은 보험자의 시선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 이후 10여년간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에 대해서는 공급자도 관심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록 사안에 따라 대립과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건강보험은 결국, 공급자와 보험자가 서로 협력하며 함께 운영해 나가야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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