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호한다며 개정된 법안으로 의료계가 들썩이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된 지는 2년이 다 돼가고, 시행된 지는 1년도 지났는데 왜 지금에서야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걸까. 이는 개정 당시 우려했던 억울한 사례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10년간 면허를 정지하는 것은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항변한다. 의료계는 성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법안이 갖는 문제점은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의견은 법조계, 시민단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개정안 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아청법 개정안, 어떤 내용 담고 있나
‘아청법’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 예방을 위해 시행 중이던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아동도 이 법의 보호대상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아동을 포함시켜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바꾸는 개정안이 2009년 4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아청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011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2012년 2월 1일 공포된 후, 같은 해 8월 2일부터 시행됐다.

이때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범위가 확대됐고, 13세 미만 여자 및 장애인 여성 대상 강간ㆍ준강간죄의 경우 공소시효 적용이 배제됐으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은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변경됐다.

특히,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대상 직군에 의료인 및 학습지 교사가 추가했다. 이로 인해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는 10년 동안 의원을 개설하거나 취업이 제한된다.

당시 의사들은 아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게 항의의 뜻으 담은 후원금 18원을 입금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아청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에는 의사 6,305명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며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아청법,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해 1월 당시 전의총 노환규 대표가 도가니법 대통령 탄원서를 권익위에 제출하는 모습
▲지난해 1월 당시 전의총 노환규 대표가 도가니법 대통령 탄원서를 권익위에 제출하는 모습

의사들은 아동ㆍ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는 법안의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성인 대상의 가벼운 성추행까지 10년 간 취업 및 개설 제한의 근거로 삼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또한, 아청법 적용 기준이 형 확정 판결일로 규정되면서 개정안 시행 이전의 성범죄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되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의료인의 직업의 특성상 환자와의 신체적 접촉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의료인에게 과도한 처벌을 가하는 이 법이 의료인을 상대로 금품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죄질의 경중을 감안해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제한 대상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은 “마취한 환자를 강제로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비열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의료인을 보호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라고 전제한 후, “의료행위 시 심각한 강제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경우는 의협에서 영구적으로 의사면허를 박탈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주관적인 기준의 성추행 주장과 판결로 의료인에 대해 10년간 의업을 중지시키는 것은 억울한 의료인 피해자만 양산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전의총은 “성범죄와의 관련성에 따라 처벌을 나눠야 한다.”면서, “의료행위와 관련된 성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의료인은 형 집행 종료나 면제 후 10년간 의료기관의 취업과 개설을 할 수 없도록 하되, 의료행위와 무관한 성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의료인은 형 집행 종료나 면제 후 10년간 아동, 청소년 관련 의료기관의 취업과 개설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지난달 26일 개최된 국회 토론회에서 임병석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역시 의료인의 취업제한 범위와 대상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임 법제이사는 촉진으로도 성범죄자로 오인될 수 있는 만큼 성추행은 성범죄 범위에서 제외하고, 아청법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만 취업 제한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인의 경우 의사면허에만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는 의사의 특성을 반영해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에 한정해 취업을 제한하고, 벌금형부터 일괄적으로 취업제한을 하는 것은 비례원칙에 어긋나므로 형벌을 벌금형에서 금고형 이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청법에 따르면, 유치원, 학교 등 아동ㆍ청소년 대상 기관에 취업을 제한하고 있는데 의료기관의 경우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의료기관에 국한한 것이 아닌 만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직업환경의학과, 핵의학과 등과 같은 비진료 의료기관에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한병원협회 법제이사도 “형의 종류를 묻지 않고 성범죄로 인해 형이 확정된 경우만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라며, “형의 종류 등을 감안해 취업제한의 기준이 되는 형의 종류를 조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의료계 뿐 아니라 법조계ㆍ시민단체도 문제 ‘공감’
국회 토론회에서는 의료계 뿐 아니라 법조계와 시민단체 측 패널도 아청법이 지닌 문제점을 인식하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상훈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청법은 도가니 사건, 고대의대 성추행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들 이후 여론에 편승해 과도하게 만들어진 측면이 분명히 있다.”라며, “특히 형사법과 관련한 부분은 학회 등의 입장도 경청해 달라.”라고 강조했다.

장성환 법무법인 청파 변호사 역시 아청법이 ▲체계정당성 원리▲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에 반하며, 소급적용의 문제 등이 있다며, 체계정당성의 원리를 고려할 때 의료인의 취업제한 조치는 의료법에 별도로 규정해야 하며, 대상 범죄를 아동ㆍ청소년에 국한하는 것이 입법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는 또, 성인대상 성범죄로 확대하더라도 의료인 직무와 관련해 발생하는 성범죄로 제한하고, 취업제한 조치의 내용도 일률적으로 10년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측 패널 역시 성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를 구분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진료 중이나 병실 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아동ㆍ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 대상도 중하게 규율해야 한다.”라면서도, “성범죄 경중에 따라 처벌수준을 달리 해야 한다는 데는 일부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또, 박 위원은 취업제한 기관에 차등을 두는 것도 합리적으로 고려 가능한 제안이라고 공감했다. 병리과 등 비진료과까지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시민단체 측에서도 과도하게 본다는 의견이다.

그는 이어 “진료실 외에서 벌어진 성범죄에 대한 취업제한 문제는 자연인으로서 의료인도 동일한 법 적용 대상이 돼야 하므로 일상생활 성범죄까지 취업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라고 꼬집었다.

▽의사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개정 당시 법안이 가진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충청 지역 개원의 A 씨는 지난 8월 의원개설 허가를 요청하러 보건소에 갔다가 성추행 이력이 아청법에 저촉돼 의원개설을 거부당했다.

A 씨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방문한 노래방에서 지인과 노래방 주인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벌어졌고, 화가 난 지인이 노래방 주인을 노래방에서 술을 팔았다는 이유로 고소한 게 화근이 돼 A 씨까지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것이다.

A 씨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 어깨가 닿기도 했고, 손목을 잡기도 했다고 시인했다. 나쁜 마음을 먹고 성추행을 한 것은 아니어서 떳떳했기 때문이다.

이후 노래방 주인은 800만원을 내놓으면 합의를 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그는 잘못한 게 없으니 합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거부했고, 결국 약식기소를 통해 벌금 300만원 처분이 내려져 벌금을 낸 후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후 A 씨는 집안 사정으로 한동안 대진을 하거나 응급실에 근무해 왔고, 지난 8월 보건소에 의원개설 허가를 신청했다가 아청법에 저촉돼 개설 허가를 거부당했다.

A 씨는 “가벼운 벌금형에 불과한데 어떻게 면허를 10년 동안 제한할 수 있느냐.”면서, “의사 대부분이 나처럼 모르고 있다.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알아보니 여자가 기분 나쁘다고 느꼈다고 주장하면 성추행이라더라. 이세상 남자들 중 성추행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항변하며,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형사도 성추행은 빼도 박도 못한다고 했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도 여자가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봤다고 고소하면 성추행이 된다.”라고 말했다.

대한검진의학회 이욱용 회장도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청법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데 검진 시 문제가 된다.”라며, “아청법 때문에 의사생활 40년 만에 환자를 진찰할 때 두려움이 생겼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과거 학교에 나가서 신체검사를 할 때는 심장병을 예방하느라 모두 청진을 했고 거부감이 없었지만, 최근 젊은 여성은 병원을 다녀보지 않았거나 어릴 때 청진을 하지 않는 과만 다녀 본 경우, 청진하는 것에 대해 매우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심한 경우 일부 환자는 매우 강하게 비난하기도 해 그때마다 아청법이 생각난다.”라며, “아청법에 의해 한번 잘못 걸리면 10년 동안 진료를 못하게 되기 때문에 검진이나 진찰할 때 두려움이 생겼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자 환자는 하던 대로 진료해도 되지만, 여자 환자의 경우 특별히 불편한 게 없으면 예전처럼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의사들의 방어진료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 개정안 발의 나설까?

박인숙 의원
박인숙 의원

이처럼 의료계의 지적이 이어지고, 실제로 부작용 사례가 현실로 나타나자 국회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 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지난달 국회에서 아청법에 대한 개선ㆍ보완 방안을 모색하고자 의료계,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박인숙 의원실 관계자는 “아청법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지만, 주관부처인 여성가족부와 의료계의 입장 및 국민 여론까지 잘 조율하고 감수해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개정안 발의를 당장 논하기에는 시기상조 같다.”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아동 및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 성인 대상 범죄까지 확대돼 법리적 문제가 있고, 이중처벌 또는 과잉입법 등에 대한 지적에 공감한다.”라며, “의사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 외에도 진료와 연관돼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검토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 역시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아청법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일부 과도한 제한이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라며, 토론회 의견을 수렴해 향후 개정안 발의를 고려해 보겠다고 밝혀 의료계의 환영을 받았다.

이후 박 의원실 관계자는 2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감 중이라 정신 없지만, 의협 쪽과 안전한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 작업하는 중이다”라며, 개정안 발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주무부처 부정적 입장은 ‘난관’
이처럼 박인숙 의원이 아청법을 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주무부처는 다소 강경한 자세로 현행법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라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의수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은 국회 토론회 당시 “범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10년간 취업제한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성추행이 강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성범죄일지라도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인 것은 사실이다.”라며, “의료인이 일반인에 비해 더 가중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고 과장은 또, 성인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도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언제든지 재범 가능성이 있으므로 성인 대상 성범죄자라 할지라도 사전에 아동ㆍ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성인대상 성범죄 경력자도 취업제한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에 한정해 취업제한을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성범죄는 왜곡된 성인식 등으로 인해 일어나는 범죄로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 뿐 아니라 일반적인 성범죄에 대해서도 재범방지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즉, 성범죄자 취업제한제도는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성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라는 설명이다.

환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진료행위가 성추행으로 인정돼 선의의 피해를 보는 의료인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성추행 등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 입장에서도 수치심 및 혐오감을 느낄만한 행위였는지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되며, 최종적으로 법원의 객관적 판단에 따르게 된다.”라고 반박했다.

또, 의료인이 진료를 위해 환자의 신체에 사소한 접촉 등이 이뤄져야 한다면 사전에 고지를 하고 충분히 설명하면 오해의 소지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고 과장은 취업제한에 적용되는 형벌의 범위에서 벌금형을 제외하자는 의견에는 “일반인도 성범죄자로 벌금형을 포함한 형 확정시 취업제한제도의 적용대상이 되고 있다.”라며, “의사의 경우 차등 적용하는 것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오히려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국회에서의 개정 작업은 의료계 뿐 아니라 호의적인 국민 여론까지 어느 정도 확보해야 순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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