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이 자신의 불신임안 발의에 나선 의사들과 일부 시도의사회장을 겨냥해 의료 현안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지목하며 개혁을 언급하고 나섰다. 노 회장은 불신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전임 회장의 퇴진도 주장한 이들이라고 지적하며, 관행처럼 계속된 집행부 흔들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 회장이 주장하는 내부 개혁은 가능할까.

노환규 회장은 시도의사회장들이 의료 현안에는 무관심하면서 정치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노 회장은 지난 7월 25일 집행부와 시도의사회장들이 가진 서울역 회동에서도 시도회장들의 현안에 대한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자 전원에게 개인 발언 시간이 주어졌으나 의료 현안에 대한 시도회장들의 의견 개진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당시 자리가 시도의사회장들과 대립으로 치닫던 중 마련된 것이어서,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터라 실망이 컸다고 한다.

노 회장은 시도의사회장의 정치적인 행보의 사례로 올해 상반기를 강타한 진주의료원 사태 당시 경상남도의사회가 경남도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꼽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양동 경남의사회장은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해 회생할 수 없는 단계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진주의료원을 “고비용 저효율 경영으로 도민의 혈세를 깎아 먹는 부실 공공의료기관으로 전락했다.”라고 평가하며, “공공의료사업에 민간의료기관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의협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경상남도의사회의 행보에 국회가 발칵 뒤집혔고, 의협 집행부는 지부에 대한 통제력 부재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일부에서는 중앙회의 의사에 반하는 산하단체의 행동을 믿을 수 없다며 의사협회가 경상남도의사회의 기자회견을 용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고 한다.

당시 의사협회의 의견에 귀 기울이던 몇몇 의원실에서 의사협회가 수습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의사협회는 진주의료원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노 회장은 시도회장의 이러한 독자적인 행보도 지역의사회장과 중앙대의원을 겸직할 수 있는 시스템에 기인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 산하단체장이라는 소속감보다 대의원으로서 집행부를 감시하는 위치라는 인식으로 인해 독자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 회장이 내부 개혁의 초점을 대의원 개혁에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정관에는 대의원 겸직조항이 명시돼 있다. 제30조(겸직 제한)는 ‘협회 임원에서 회장, 부회장, 상임이사는 대의원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새조항을 신설하기 보다 기존 30조에서 ‘협회’에 국한된 문구를 ‘협회 및 협회 지부’로 변경하는 안을 고려할 만 하다.

하지만 정관개정은 재적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개선이 쉽지 않다.

한편, 일반 회원들은 대의원제의 고질적인 병폐로 종신 대의원을 지목한다. 노 회장의 발언으로 시도 회장의 대의원 겸직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대의원의 연임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 정관에는 현재 연임에 대한 규정이 없다. 다만, 제26조(대의원의 임기와 권리 의무)제1항 ‘대의원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 역시 정관개정 사항이므로 재적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관개정에 앞서 의사사회의 정서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0년 경만호 집행부 당시 정기대의원회총회를 돌아보자. 당시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한 50여명의 젊은 회원들은 한 원로 대의원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원로 대의원은 “내 나이가 곧 70인데 22년 동안 대의원을 하면서 한 번도 불참을 한 적이 없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발언했다.

그의 발언은 개인적인 소신과 자부심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총회를 참관하던 젊은 의사들에게 반감을 일으켰다.

현재도 이 원로 대의원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10여년 이상 대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대의원이 적지 않다.

선배 의사의 연륜과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 피 수혈이 더디어서는 조직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보건의료를 둘러싼 환경은 쉴새 없이 변화한다. 정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은 끊임없이 젊은 피를 수혈한다. 의료계도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젊은 피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원로 대의원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젊은 회원의 대의원회 참여는 요원하다.

현재 대부분의 대의원은 지역이나 직역에서 일반 회원들의 투표 등을 통해 지지를 얻어 대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행부의 선출에 의해 뽑힌다.

지역의사회의 정서상 임원을 지낸 현직 대의원이 연임을 원하면 교체가 쉽지 않다. 따라서 대의원 연임에 제한을 두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다.

대의원의 임기에 제한을 두기 위해서는 대의원회에서 정관을 개정해야 하고, 따라서 현직 대의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물론 정관 개정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정관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 정지태)에서도 대의원 연임 횟수 제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당시 정관개정특별위원회는 정관 제26조(대의원의 임기와 권리 의무)제1항 ‘대의원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는 규정을 ‘대의원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 단, 5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로 변경했다.

즉, 명확한 규정이 없어 무제한 연임이 가능했던 대의원의 임기를 최대 15년으로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관개정 특위가 마련한 연임 횟수 제한은 정관개정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공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의협회관서 열린 정관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정지태 위원장은 “사실 정관개정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대의원의 연임 횟수 제한이다. 많은 젊은 의사들이 (원로 의사가) 대의원을 연속적으로 해오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 위원장은 “대의원의 연임 문제로 인해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말해 대의원 연임 횟수 조항에 대한 공론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의 우려 때문인지 정작 정관개정특위에서 마련한 대의원의 연임 횟수 제한은 이날 공청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면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다만 의료계 현장에서는 일부 시ㆍ군ㆍ구 등 지역의사회에서 대의원 중 일부를 젊은 의사에게 할당하거나, 직접 선거를 통해 대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을 도입해 개별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한 지역의사회의 경우 암묵적으로 세대별 대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이 의사회는 40대 한 명, 50대 한 명, 60대 한 명 식으로 연령별로 대의원을 선출한다. 이미 50대 대의원이 선출된 경우, 50대 후보는 타 세대를 위해 입후보하지 않는다.

다수 지역의사회의 회칙에는 이미 대의원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직선제로 대의원을 선출하는 비율도 소폭이나마 늘고 있다.

의사협회 집행부의 개선 의지 만으로 대의원제 개선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젊은 의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요구가 확대돼야 한다.

다행히 젊은 의사들에게 의사회 참여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환규 회장이 대의원제 개선을 공식화한 만큼 결실을 맺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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