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양유업 대리점 사건과 관련해 ‘갑을관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갑과 을에 대한 논쟁은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존재해왔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상대적으로 환자에 비해 갑의 위치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사에게 갑은 누구일까?

단적으로 본다면 정부나 정치인이 가까울 듯 싶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안건이나 정부가 내놓는 제도 하나에 의료계가 울고 웃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인마저도 눈치를 보는 존재가 바로 국민이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지는 않지만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효자도 그런 효자가 따로 없다.

특히, 국회에 쌓이는 수많은 발의 안건을 보자면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발의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 역시 국민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재정이 소요 또는 추가 투입되는 제도와 관련해서는 국민의 불만에 상당히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의료제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재정이 소요되는 의료제도 추진에 있어 건보료 인상 등을 최대한 자제하며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공급자인 의료계로서는 불만과 불안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계획이다.

복지부는 오는 2017년까지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에 9조원의 재정을 투입할 방침이다.
재원은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에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따른 건보료 인상은 없을 것이다.”고 못을 박았다.

정부 입장에서 건보료 인상 등을 반영하면 아무래도 수월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며 국정과제인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면서 국민에게 재원의 일부를 부담하라고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건보료 인상은 없다는 전제 하에 사업을 추진하다가 재원이 모자라게 될 경우 이에 따르는 희생은 공급자인 의료계의 몫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정부의 의료제도의 추진이나 개선에 있어 국민의 불만은 의료계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민은 정부에게 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슈퍼갑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제도 개선은 국민의 동의없이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국민에게 의사란 직업은 아직까지 ‘배부른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의사가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제도 개선을 외쳐도 정부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은 부족한 것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알게 하고, 의료계의 주장에 공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언제 의료제도의 개선이 이뤄지겠느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참을 만큼 참았고 갈 때까지 갔으니 이제는 실력을 행사해야 할 때라는 주장에도 일부 공감한다.

그러나 짧은 전투에서는 화력을 앞세운 타격전이 효과적이겠지만, 긴 전쟁에서는 전술과 전략없이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저수가를 비롯해 지불체계 등 의료계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 모든 산을 한 번에 넘을 수는 없다.

또한, 그 산들은 의사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가 넘어야 할 산이다.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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