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4월부터 도봉구, 강서구, 구로구, 동작구 등 4개구의 시간적ㆍ지리적 주민접근성이 좋은 48개 약국을 세이프약국으로 선정하고 오는 9월까지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시는 세이프 약국을 통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금연프로그램 ▲약력관리를 제공함으로써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의 건강을 챙긴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시범사업 시작 후 두 달이 지난 현재 현장에서는 얼마만큼의 상담이 이뤄지고 있을까? 본지는 지난 28일 서울시내 세이프약국을 직접 방문해 실제 상담 건수와 애로사항 등을 듣고 실효성을 진단해봤다.

▲세이프약국 표시(붉은 색 원)가 돼 있는  D 약국
▲세이프약국 표시(붉은 색 원)가 돼 있는  D 약국
기자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세이프약국으로 선정된 D 약국. 기자는 방문에 앞서 약국 앞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약국을 찾는지 지켜봤다.

D 약국 바로 옆에는 지하 1층 포함 9층 규모의 여성전문병원이 들어서 있었으며, 3곳의 치과의원과 요양병원도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고, 지켜보는 동안 약국을 찾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자는 D 약국에 들어가 약사에게 신분을 밝힌 후 세이프약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D 약국 약사는 “자살 상담은 한 적이 없으며, 금연 상담은 한 건 있었다. 약력관리를 위주로 하고 있다.”며, “간혹 금연은 하고 있는지,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대부분 필요성은 느끼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이 약사는 “상담을 해주고 싶은 환자가 있어도 많은 인원이 동시에 몰릴 때는 하기 어렵다.”며, “상담을 위해 기다리게 하거나, 따로 전화로 상담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체계적으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자살 상담과 관련해서는 “살기가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느끼는 비슷한 정도일 뿐이다.”며, “따라서 샘플이 적어 특별히 자살 상담을 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약사는 “세이프약국의 취지는 좋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며, “여유가 있어야 상담도 제대로 이뤄지는데 시간적 문제가 가장 크다. 홍보 부족도 문제다. 대부분 주민은 세이프약국이 뭔지도 모른다.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해 경계하는 분들도 있고, 말을 꺼내고 거부하고 나가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세이프약국으로 선정된 S 약국 약사는 세이프약국 홍보 부족에 따른 주민의 무관심을 문제로 지적했다.
▲세이프약국으로 선정된 S 약국 약사는 세이프약국 홍보 부족에 따른 주민의 무관심을 문제로 지적했다.
다음으로 찾은 약국은 대로변 상가 3층의 S 약국.

S 약국 약사는 세이프약국의 자살 상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S 약국 약사는 “약국을 찾는 환자들에게 우울증이나 자살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다.”며, “혈압약이나 당뇨약을 드시는 분들에게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질문은 뚱딴지같다.”고 설명했다.

S 약국 약사는 “주로 약력관리를 하고 있지만, 약력관리 건수는 말씀드리기 창피할 정도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이프약국에 대한 홍보 부족을 문제로 지적했다.

S 약국 약사는 “세이프약국 사업에 대해 지금은 환자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며, “환자가 먼저 세이프약국이 뭔지 관심을 둬야 하는데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 보니 세이프약국은 한마디로 그저 약국 벽에 약사 면허를 붙여 놓는 것과 다름없다.”고 털어놨다.

S 약국 약사에 따르면 약국을 찾는 이들이 세이프약국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입구 맞은 벽에 세이프약국 포스터를 붙이고, 신용카드 결제기 옆에 홍보물을 비치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S 약국은 방문객이 잘 볼 수 있도록 입구 정면(사진 왼쪽)과 신용카드 결제기 옆(사진 오른쪽)에 세이프약국 홍보물을 비치했다.
▲S 약국은 방문객이 잘 볼 수 있도록 입구 정면(사진 왼쪽)과 신용카드 결제기 옆(사진 오른쪽)에 세이프약국 홍보물을 비치했다.
그는 “세이프약국과 환자 중간의 매개체가 필요하다.”며, “방송이나 신문 광고를 통해 홍보를 해주면 세이프약국에서 상담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지만, 지금은 전국의사총연합과 개원가 등의 반대 등 여러 이유 때문에 홍보를 대놓고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의 명확한 사업방향도 요구했다.

그는 “세이프약국 사업이 대대적으로 갈 것인지 시범사업으로 끝날 것인지 모르겠다.”며, “시에서는 실적이 좋으면 괜찮은 사업이라고 할 테고, 실적이 적으면 시덥지 않다고 생각할 텐데 지금은 약국에 시범사업을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느낌이다.”고 말했다.

▲세이프약국으로 선정된 B 약국. 이곳 약사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 세이프약국에 대해 모르고 있다. (붉은 색 원이 세이프약국 표시)
▲세이프약국으로 선정된 B 약국. 이곳 약사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 세이프약국에 대해 모르고 있다. (붉은 색 원이 세이프약국 표시)
또 다른 세이프약국인 B 약국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B 약국 약사는 “세이프약국 시범사업을 하고 있지만, 기존에 하고 있던 업무와 별다른 차이는 없다.”며, “특히 우리 약국은 시내에 있다 보니 동네주민 위주의 약국이 아니다. 그나마 찾는 주민도 세이프약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B 약국 약사는 “자살 상담과 금연 상담은 반대 때문에 뒤로 물러나 있고, 약력관리를 위주로 하고 있다.”며, “자살 상담은 한 적 없으며, 금연에 관심 있는 분은 두 분 정도 보건소로 연결했는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세이프약국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지자체와 총괄을 맡은 서울시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분위기다.

강서구보건소 의약무팀 관계자는 관내 세이프약국의 실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잠시 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세이프약국은 서울시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총괄은 서울시다.”며, “서울시에 물어보니까 실적은 서울시청으로 문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서울시에서는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어차피 9월 말에 종료되니 나중에 결과를 공개하고 자료로 낼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세이프약국 대부분 방문객이 알아볼 수 있도록 세이프약국 표시를 하고 있으나, 주민의 인식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프약국 대부분 방문객이 알아볼 수 있도록 세이프약국 표시를 하고 있으나, 주민의 인식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서울시는 세이프약국은 지자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약무팀 관계자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모니터링을) 구체적으로 한 적은 없고, 또 몇 달 했다고 해서 (효과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며, “세이프약국 시범사업은 시 전체 사업이 아니라 일부 자치구로 내려보낸 사업이기 때문에 해당 자치구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범사업 결과는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범사업 종료 후 석 달 정도가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시 약무팀 관계자는 “세이프약국에 대한 최종 결과를 연말에 몰아서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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