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에서 추진됐던 원격의료 확대가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새 정부 들어 다시금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 논란이 재현될 전망이다.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의욕적으로 정부가 나서고 있는데다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 현행법에서는 의사 대 의사의 원격진료만 허용하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의사 대 환자의 원격진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원격의료를 둘러싼 논란의 진행상황과 각계 입장을 짚어봤다.

▽MB 정부서 추진, 의료계-복지부 ‘공방’

 
 
지난 2009년 7월 15일 보건복지부가 원격의료를 입법예고하면서 원격의료서비스 소모전이 시작됐다.

복지부는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도서ㆍ산간벽지 지역민의 건강관리를 위해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1월 14일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원격의료가 통과됐고, 4월에는 의료인과 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복지부는 국회에 의사 대 환자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복지부는 개정안이 의료인 및 의료기관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국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보다 안전한 의료서비스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인-환자간 원격의료는 재진환자로서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환자 등을 대상으로 허용되며, 원격의료 시 대리인의 처방전 대리수령도 허용된다.

하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강한 반발로 인해 개정안은 계류를 거듭했고, 18대 국회가 종료됨에 따라 법안도 자동 폐기됐다.

▽새 정부, 경제부처 중심 ‘의욕적’ 추진
박근혜 정부 들어 원격의료 논의가 다시 활발해 지는 모양새다.

먼저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원격의료 등 서비스 분야에 IT기술을 적극적으로 융합해 서비스산업을 창조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국정과제인 창조형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유망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 전체의 성장동력을 견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기재부는 서비스 분야에 IT기술을 융합해 서비스산업을 창조형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기재부는 원격의료 등 서비스 분야에 IT기술을 적극적으로 융합ㆍ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서비스산업 발전 TF(관계부처 합동)’를 구성ㆍ운영하는 등 범정부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업무보고에 원격의료를 포함한 것은 의료법 개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서비스경제과 관계자는 “원격의료가 나온 지 한참 오래됐는데 의료법 개정이 안돼 지지부진했다.”며, “그러나 원격의료 수혜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기재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의료법 개정과 관련)여론을 환기하고 동력을 실어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원격의료 시범사업 추진 방침을 밝히며 논의 활성화에 가담했다.

산자부 김재홍 제1차관은 지난달 22일 열린 ‘경제자유구역 서비스 허브화 추진방안’ 간담회에서 “건강관리서비스와 원격의료 등 의료, IT, 관광 등이 융합된 새로운 헬스케어 서비스마켓이 창출되도록 경자구역을 시범사업 지역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글쎄?”
하지만 또 다른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다. 원격의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추진하는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보건복지부 이태한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4월 의협회관을 찾아 의협 임직원들과 의료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화두를 꺼냈다.

당시 이태한 실장은 “저는 기본적으로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원격진료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우선 원격진료는 진료 이후의 서비스, 즉 처치와 치료가 가능해야 한다.”며, “하지만 주사나 약이 광통신을 통해 갈수 있는 길이 아직 개발 안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료 이후 칼이 가고 약이 가면 의미가 있지만 지금 원격진료는 정확하게 그 의미가 뭔지..”라고 말을 흐렸다.

이 실장은 또, “만성질환관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현재 거의 원격진료를 받고 있다.”며, “자주 오면 한 달, 길면 세 달에 한번 오는 것은 원격진료가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거리상 넘어지면 손에 두 개씩 병원이 걸리는 나라여서 장기처방은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 실장은 또, 의료전달 체계와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등을 이유로 원격진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이태한 실장은 5월 본지와의 통화에서도 “사람들이 말하는 원격의료는 화상을 통한 원격진료다.”라며, “원격진료는 화상을 통해 기초적인 시진을 보완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고, 비용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와 환자가 얼굴만 본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화상진료는 의료정보화의 한 분야로 중요성이 1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는 그저 보완적 편의 제공 수준일 뿐이다.”고 평가했다.

▽국회서도 원격의료 논의 활성화 ‘가담’
입법부도 원격의료 활성화 논의에 가담하고 나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심재철 의원(새누리당)은 의료인 간에 이뤄지는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해 지역적으로 고립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인 경우 의료인이 직접 방문해 이동형 전자장비를 통해서 원격지의사가 제공하는 전자처방전이나 의료정보를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심 의원은 의사의 원격진료와 의사 간 원격상담진료는 환자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심 의원은 “원격의료서비스는 고령사회 진입 등 의료환경의 변화에 대비하는 방안으로서 세계 각국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의료혜택을 받기 힘든 도서지역 주민들과 오지에서 근무하는 군 장병 등에게 손쉽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부터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의료기관에서 원격영상진료시스템을 이용, 의료취약지역이나 환자에게 원격진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의료기관 간 및 의료인 간에만 원격의료행위를 하도록 하고 있어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영상시스템을 통해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는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원격의료행위 및 행위자의 범위를 확대해 원격의료를 통한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진료상의 편의를 확보함으로써 국민건강수준을 향상시키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의료계ㆍ시민단체 “국민건강 위해 소지 커”
의료계는 의료전달체계 붕괴 가능성과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불분명 등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상황이며,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연합)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원격진료 허용 법안은 이미 18대 국회에서도 ‘원격진료’의 안정성과 실효성에 대해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돼 이미 폐기된 법안”이라며, “새누리당이 병원-환자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려는 목적은 소외계층의 의료 접근성 때문이 아니라,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의료법의 규제를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은 “이명박 정부 당시 밝힌 바대로 추산하면 원격진료 대상자는 470만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적절하게 의료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이 470만명이라는 것”이라며, “이 숫자가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을 더 신설해 당장 국민 건강권과 치료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원격진료는 그 안전성과 치료의 효율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도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원격진료’는 기본적인 진찰과 필수적인 검사 등이 생략돼, 오진과 누락의 위험성이 큰 문제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원격진료는 제대로 된 의료기관이 없는 제 3세계나 사막이나 북극 등의 일부 오지에서만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선진국에서도 시행된다고 주장하지만, 원격진료가 그나마 시행되고 있는 곳들은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처럼 아주 가난해 무의촌인 섬 등의 지역이 산재한 나라이거나 미국의 알래스카 극지나 네바다 사막지역, 혹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전초기지 등의 특수한 지역에만 해당된다는 것.

연합은 또한 ‘원격진료’는 약품 오남용을 양산할 가능성도 크며, 원격진료를 포함한 유헬스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의료기관들은 대형병원과 재벌기업인만큼 수도권 및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원격진료는 국민들의 개인질병과 신체정보가 유출될 위험성이 있다며, 박근혜 정부는 안전성과 효율성도 검증되지 않은, 재벌들의 배만 불리고 국민들의 의료비 증가만 불러올 원격진료 허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재철 의원실 “의료계 우려는 침소봉대 수준”
심재철 의원실은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의 지적에 “의협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다.”고 못 박았다.

심재철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원격의료 범위를 확대해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며, “의협이 침소봉대 하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산간벽지 및 도서지역 환자, 군 장병, 거동이 불편한 환자 등을 대상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원격의료를 시범적으로 시험해보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무조건 원격의료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의료혜택을 받기 힘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행해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인의 특성상 원격의료를 시행한다고 해도 웬만하면 직접 의사의 얼굴을 보고 진료받고 싶어하지 않겠느냐.”며, “의협은 의료전달이 집중화될 것이다. 1ㆍ2차를 거치지 않고 환자들이 종합병원으로 쏠릴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이는 문제를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안에 원격의료 허용 대상을 제한적으로 명시했기 때문에 원격의료를 시행한다고 해서 전 국민이 종합병원으로 쏠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료사고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에는 “어떤 제도든 처음 시행할 때부터 책임소재나 장비, 규격 등에 대한 기준이 확실히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안이 통과된다면 정부가 시행령 등을 통해 책임소재를 포함한 구체적 규정에 대해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원격의료를 둘러싸고 정부 및 국회와 의료계가 지난 정부의 논란을 그대로 재현할 것으로 보여 관련 법안 통과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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