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4일 전공의 근로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8개항의 수련환경 개선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과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한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평가단’에서 합의된 내용으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이와 관련,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사항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 봤다.

▽응당법 문제로 불거진 전공의 수련환경

2012년 6월 응당법 결의대회에 참석한 전공의들. 이날을 기점으로 전공의들은 본격적으로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2년 6월 응당법 결의대회에 참석한 전공의들. 이날을 기점으로 전공의들은 본격적으로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ㆍ회장 경문배)는 주당 100시간에 이르는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환경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으나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응급실 당직 대상에 3년차 이상 전공의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은 응급실당직법(이하 응당법)을 저지하기 위해 의료 현안에 무관심했던 전공의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불씨를 지폈다.

지난 2011년 6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응급실당직법에는 ‘수련병원인 경우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를 전문의로 갈음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담고 있어 대전협은 이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당시 대전협은 여러 차례 성명서를 배포하며,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를 전문의로 갈음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인해 전공의들의 ‘근무 시간 부담 증가’, ‘경제적ㆍ시간적 보상의 어려움’, ‘전공의 기본권 보장 요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의 이 같은 주장을 외면하고, 2012년 5월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를 전문의로 갈음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응급실당직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했고,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러자 전공의들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관련 공청회에서 ‘응급실 강제 당직은 근무시간을 증가시키고, 의료사고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한편, 6월 28일 ‘전공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전공의 결의대회’를 열고 응급실당직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의대회 전날인 6월 27일 복지부는 레지던트 3년차 이상 당직 근무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6월 28일 결의대회에서는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과 전국에서 모인 300여명의 전공의들은 보건의료 현안과 대안들을 토론하며 다양한 의견들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이 주요 화두로 논의됐고, 노환규 회장은 전공의 노조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전공의 수련환경 시스템 개선에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의사협회는 전공의 근로시간 60시간 상한제를 주장했고, 대전협은 지난해 7월 14일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전공의 노조 TF를 구성하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복지부,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평가단 구성
복지부는 응급실당직법 시행 과정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지난해 7월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평가단을 구성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모니터링 평가단에는 대전협ㆍ의학회ㆍ의사협회ㆍ병원협회 등이 참여해 수련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11월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4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진행된 회의에서는 전공의 근로시간 상한제 등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해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협회와 복지부는 전공의 근로시간 상한제 도입 시 인력 공백이 우려된다며 대체 인력으로 PA 합법화를 제안했고, 대전협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PA제도 합법화는 별개의 문제라며, PA 합법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공의 수련시간 최대 80시간 제한 등 수련환경 개선 조치 추진
6회에 걸쳐 진행된 모니터링 평가단은 전공의 수련시간 최대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수련환경 개선 조치를 추진하기로 협의했다.

다만, 세부사항과 명문화 여부는 하반기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지난 4월 2014년 신규 전공의부터 ▲주 80시간 근무 초과 금지 ▲연속수련 36시간(1.5일) 초과 금지 ▲응급실 12시간 교대 ▲당직 주 3일 초과 금지 ▲당직일수를 고려한 당직수당 지급 ▲수련 간 최소 휴식 10시간 ▲연가 14일 보장 등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개선 조치 8개 항목과 수련시간 계측 방법을 수련병원별 수련규칙에 규정하도록 하고, 이를 복지부(병원협회 위탁)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병원협회는 수련규칙 표준안을 개정해 이를 반영하고, 제출된 병원 수련규칙과 수련규칙표준안을 비교ㆍ평가하고, 수련병원에 대한 정기 신임평가과정에서 준수여부를 확인해 수련병원별 전공의 정원 배정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평가단은 최대 수련시간에 대해서는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이 접근 가능한 방법으로 공표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개선 조치 8개 항목 강제화 두고 갈등 예고
이번 조치로 살인적인 근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에게 숨통을 터줄 수 있는 길은 마련됐으나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우선 이번 개선 사항은 수련병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014년 전공의 1년차에게만 적용돼 2, 3, 4년차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더욱이 이번 개선조치가 복지부에서 규정한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이 아닌 병원협회의 수련규칙 표준안에 반영돼 개선조치 8개 항목이 유명무실 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현재 병원협회 수련규칙 표준안에는 전공의 근로시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대다수의 병원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대전협은 개선 조치가 강제화될 수 있도록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고, 복지부는 병원협회의 의견에 따라 수련규칙 표준안에 반영하도록 했다.

병원협회는 수련규칙 표준안이 강제화를 띨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오는 하반기에 열리는 회의에서 개선 조치된 8개 항목에 대한 강제화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반기 회의에서 주요 쟁점은 PA 합법화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협회가 전공의 근로 시간 제한에 따른 의료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체인력으로 PA를 합법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하반기 회의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주당 100시간이 넘는 시간을 근무했던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할 경우, 수련병원의 진료 공백은 불가피하다.

그런 만큼 병원협회 측은 전공의 대체인력으로 PA 양성화를 주장했지만, 대전협은 PA 양성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근로시간 상한제와 연계해서 논의 할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PA 양성화는 대전협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별도 협의하기로 일단락 됐지만, 하반기에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여 병원협회와 대전협의 갈등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